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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꼬 예?! ---

바람소리 7 1331
-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꼬 예?! -


- 이 글은 1996년 말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

1996년 11월 초순경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아빠, 11월 22일이 무슨날이게~요?"

  막내딸의 질문에 나는 무심코

"그기 무슨말이고. 무슨날은 무슨날"

"에이 아빠도 참. 엄마가 물어보라카는데예"

"내사 마 모른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너거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라"

  이렇게 며칠을 딸아이에게 달달 뽁이면서 아내의 튀어나온 입과 쌍심지 돋은 얼굴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차, 결혼기념일 아이가. 그것도 10주년 결혼기념일. 이거 큰일날 뻔 했제'

  나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먼저 선물이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 어려운 우리 형편에 매달 용돈을 받아쓰던 저로서는 많은 돈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직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이 이봐라. 결혼기념일이 돌아오는데 우리 마누라한테 무슨 선물을 하면 좋겠노. 결혼10주년인데 좀 싸고 좋은 거 없겠나?"

"아 참, 행님도 이제야 결혼10년됐능교. 늦게 장가를 가더니만. 아~ 마, 형수님 그동안 욕봤는데 다이야반지나 목걸이도 괘안코, 팔찌도 좋고, 좀 괜찮은 거 한번 해 주이소."

"아이다. 그보다도 여행을 가는 기 최곱니더. 행님하고 행수님은 아직까지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봤다카데요. 눈 딱 감고 휴가 내 가꼬 신혼여행 간다 생각하고 제주도 한번 갔다 오이소."

"어이 봐라. 그거 다 좋은 소린데, 그 보다도...."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이, 좀 더 싼거 없겠나. 돈이 별로 안드는거 말이다."

듣고만 있다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직원이

"아 행님요. 여자한테는요 꽃이 최곤기라요. 그냥 장미꽃을 한다발 탁 사서 행수님한테 갔다 주이소. 그라몬 행수님 억수로 기뻐할깁니더. 그기 마 헐코 최곱니더. 만원만 하몬 떡을 칩니더"

저는 만원만 들면 된다는 말에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머라꼬? 꽃 말이가? 장미꽃?"

"예. 지는요, 언젠가 당직하고 나서 아침에 퇴근하는데, 집 근처에 가니까 어느집 담벼락에 장미꽃이 예쁜기 하나 넝쿨째 걸려 있더라고요. 그기 보기에 너무 좋아서, 꺽어 가꼬 집에 가져 갔는데 우리 마누라가 나오길래,
'아나, 이거 니 해라 이쁘제.' 하면서 주니까, 우리 마누라가요 갑자기 멍청해지더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당신이 오늘 내 생일인줄 우찌 알고 이렇게 이쁜 꽃을 사 왔능교. 진짜로 달라졌데이' 하면서 꺼뻑 죽을 거 같이 감격을 하더라고요. 아 그 등신같은기, 그 꽃을 보고 쓰레기 통에 넣어삐리스몬 아무일 없었을낀데, 그걸 좋다고 물컵에 꽃아 놓고 며칠을 감격하며 지내다가, 하필이몬 반상회를 우리집에서 했다 아입니꺼. 이웃집 아지매가 우리집에 와서 그 장미꽃을 보고는 '아이고, 우리 장미꽃이 여기에 와 있네. 너무 이뻐서 사람들 보라꼬 담벼락에 올려 놨더니 어느 못된 놈이 꺽어 간 줄 알았는데 우짠일로 요기 와 있노. 참 얄굿네. 봐라 봐라, 아이고 틀림없데이' 라고 말하는 바람에 며칠동안 대우받고 좋던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박살나고 들통이 났다 아입니꺼. 우쨋튼 여자한테는 꽃이 최곤기라예"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결혼10주년인데, 꽃처럼 며칠만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오래 남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근무하던 동네 보석 집에 갔습니다.

  -진실보석-. 그 가게 상호가 진실되게 마음에 들더군요.

“어서 오이소. 경찰관님이 우리 가게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앉으시소”

“아, 예. 선물하나 준비 할라꼬예.”

“무슨 선물을 준비하실려고예.”

“예. 집사람과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내일모레인데, 적당한 선물이 없을까싶어 왔습니다”

“예. 잘 오셨습니다. 결혼10주년이면, 그래도 좀 괜찮은 선물을 해야겠지요. 보통 목걸이도 많이 하시고, 팔찌도 많이 하시고, 반지도 많이 하시지요. 그리고 보통 결혼 기념연수만큼 작은 다이야몬드를 둥글게 박지요”

“그라몬 좀 비싸겠네요”

“네. 가격은 좀 비싸지만, 그래도 결혼 10주년인데 그게 어디 오고 또 오고 하는 겁니까. 한번 뿐이고 10년이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부담이 되어도 모두들 사모님 기분을 맞추어 드리는 거지요.”

“ 그 보다 좀 더 싼 거는 없능교?”

“ 더 싼 것도 있지요. 대충 어느 정도의 가격 대를 원하시는지요? 한 20만원 정도면 그래도 쓸만한 것 할 수 있는데”

“사장님 저는 그보다도 훨씬 더 싸야하는데......”

  돈이 별로 없는 사정을 진실보석 사장님에게 설명을 하고, 선물을 18K 금반지 반돈 반지 위에 하트형 모양을 새겨 달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 가게 주인이 저를 불쌍히 여겼는지 몇천원 깍아 주어 이만오천원에 결정이 되었습니다.

"반지 속으로 기념글씨도 새겨 줍니다. 무슨 글을 새겨 드릴까요?"

"아, 글씨도 새겨 줍니까? 그러면 에 이거 숙스럽지만 '10주년 사랑하오' 라고 새겨 주이소"

  드디어, 11월 22일 저녁. 아이들을 떼어놓고 저는 아내와 남포동의 어느 정통 양식집의 2층에 들어갔습니다. 1인분에 만팔천원이나 하는 음식을 시키고 칼을 잡고 고기를 썰며 먹었습니다.
  그때까지 저와 아내는 그런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그렇게 비싼 음식을 먹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웨이터가 포도주도 한잔씩 부어 주더군요. 잔을 맞추어 포도주를 곁들여 먹는 식사만으로도 아내는 연방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이었습니다.

"니 참 내하고 산다꼬 욕 봤제. 장남도 아인데 시부모님 병수발로 몇 년을 고생하고, 정말로 미안하데이"

"아입니더. 당신이 고생 많았심니더"

  아내는 계속 감격하는 모습이었고 우리는 정말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에,

"그라고 니 이거 한번 끼 봐라. 좋은거는 아이다마는"

  저는 준비한 반지통을 아내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반지통에 있는 반지를 보고 아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으며 그 반지를 끼어보고 만져보며 계속된 감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반지 안쪽에 글씨도 있다. 읽어 봐레이."

  아내는 반지 빼어 반지 안쪽의 작은 글씨를 읽어보더니 금방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꼬예? 당신이 그리 나를 사랑하는줄 몰랐심니더.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꼬예!"

  저는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그래 맞다' 하면서 반지를 받아 안쪽의 글씨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10주년 사랑하오 -진실-'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주문하지 않은 뒤의 글 -진실-은 '진실보석'의 상호를 적은 모양인데, 아내는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는 글로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나는 진실보석 사장님께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맞다. 내가 니를 진실로 사랑한다 아이가."

  그날의 감격을 아내는 지금까지도 느끼는지 아직도 그 반지를 끼고 다니며, 위로 삐져나온 하트형 모양에 손가락에 계속 상처가 나지만 다이야반지 보다도 더 귀중한 선물로 생각하고 좋아하며 지냈습니다.

  다음 결혼20주년기념일에 나는 아내에게 더 좋은 선물을 계획해야겠습니다. 결혼10주년 보다 더 큰 감동을 줄 선물을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보석에서 반지를 만들었다는 진실과 이 진실이 그 진실이 아니라는 진실은 평생 숨길 생각입니다.
7 Comments
송인자 2006.09.02 14:19  
  ㅋㅋㅋ 오호호 ~ 경상도 사투리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 그 진실보석 사장님 상호가 좋아서 장사가 더 잘되겠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전 신랑에게 꽃 선물 받아 본지가 그 언제인지 기억도 안납니다.... 연애시절엔 잘도 사 안기더니만.ㅠ.ㅠ
장미숙 2006.09.02 22:11  
  반지통^^ 
아주 재미있게 엮어가신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선물은 아니더라도 정신차리고 기념일을 기억해 주는 짝꿍이
항상 고맙더라고요~

수패인 2006.09.02 23:41  
  해가 거듭될 수록 꽃다발 부피가 줄어들지요...이러다 나중엔 이웃집 담벼락에서 꺽은 장미한송이로 때우지...그러다 눈탱이 밤탱이돼서 쫒겨날거구...
덕택에 며칠 안남은 기념일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정우동 2006.09.03 00:37  
  모파상의 < 진주목걸이 > 가 생각납니다.
잃어버린 그 가짜 진주목걸이를 진짜로 알고 물어 내는데 써버린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진상을 몰랐다면 덜 허무했을텐데......
알고보니 자그마한 그 허영의 대가가 너무 뼈 아프고 원통합니다.

보석점의 진실의 진상도
부디 무덤까지 가져 가셔서
사모님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꿈을 제발 깨우지 마소서 !
.
임승천 2006.09.03 06:18  
  그야말로 "사랑과 진실"의 영화를 만들면 되겠습니다. 큰 선물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마음에서 오는 선물이 더 감동적일 수 있지요. 두 분 모두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빕니다.
자 연 2006.09.03 12:28  
  가을이 기웃하니 좋은님 글 들고와

모든 님 입속에서 단 침을 돌게함은

아마도 하늘의 휜구름 구르는 소리맞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세라피나 2006.09.03 13:27  
  ^^*
읽는 내내^^  정겹게 아름다운 글 이었습니다..^^

선생님!  *TV동화, 행복한 세상*
그 곳에  이 사연  한번 응모 해 보시죠?^^

음~~~!  채택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좋은 예감이 스치네요?^^
원고료,  꿀꺽^^하시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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