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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모임에 다녀와서

비솔 5 959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가곡을 찾아 인터넷을 항해하다가 작년에 우연히 이 사이트를 발견 후
말없이 들락이며 노래를 들어왔고,
노래모임이 있다하여 금번에 이원문화센터엘 다녀왔습니다.
처자식과 함께.

정말 제가 그동안 찾던 모임이고 자리였습니다.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문학을 싫어하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치고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저도 가곡과 글 쓰기를 함께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자리는 노래와 문학이 함께 어우러진 참으로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노래끼리 화음이 맞고 노래와 시가 하모니를 이루고,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의
삶의 화음이 이루어진 멋진 자리였습니다.

모임를 준비하고 진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이런 모임과 추진하고 있는 운동이 더욱 더욱 더 발전하고
꽃피어 열매맺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그냥 나갈 수 없어
작년에 쓴 글 한편 놓고 갑니다.
졸작임을 해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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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同心草)

                     

 봄이다. 산과 들에 온갖 꽃들이 피었다. 담장 밑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봄에 온 가인(佳人)인 목련화가 하얀 꽃잎을 벌렸고, 이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핀 꽃은 이내 지고야 만다. 개나리, 목련이 지더니 벚꽃도 그 꽃잎을 날려 봄 눈발인 양 졸린 들판을 하얗게 수놓는다. 그리고 어느새 진달래와 철쭉이 분홍색 산야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렇게 꽃이 피고 지며 또 다른 꽃이 피는 봄 길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웅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동심초(同心草)라는 노래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을 아득타 기약이 없네…'라고 시작되는, 어릴 적에 시골 고향에서 누님이 잘 불러 귀에 익힌 노래다.  누님은 나보다 열세 살이 위였는데, 어머니가 일하러 밭으로 나간 집에서 우리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또 다른 어머니였다. 씻겨 주고, 머리 깎아 주고 밥도 챙겨주며, 그리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도 들려주고 이런 저런 노래도 가르쳐 주었다. 건너 마을에 사는 누님 친구와 함께 산으로 들로 나물 캐고 꽃 따러 다니기도 했다.
 어느 해 봄인가, 고향 마을과 봄처녀 누님들에게서 봄바람이 일었다. 군대에 갔던 동네 잘생긴 총각이 제대를 하여 왔는데, 누님은 그 총각에게 관심이 꽤 있었나 보다. 울타리 너머로 집 앞을 지나는 그 총각을 훔쳐보는 적이 많았다. 건너 마을 누님 친구도 같이 그 총각에게 연심(戀心)을 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 총각은 우리 집 앞을 지나 건너 마을 누님 친구 집 쪽을 향하는 숫자가 더 많았고, 끝내 그 처녀와 결혼을 했다. 바로 그 시절 누님은 나즈막히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하며.
 그러다 누님이 스무 살 되던 해  어느 봄 날, 우리 어린 동생들을 두고 시집을 갔다. 건너 마을 친구 집을 지나 진달래 철쭉 붉게 수놓은 서낭당 고갯길을 너머 연분홍 치마를 입고 사십 리 먼 시집살이의 길을 떠났다. 누님이 떠난 텅 빈 집에서 우리 형제는 누님의 다정한 손길이 그리워 누님이 넘어 간 고갯길을 바라보며 그 노래를 웅얼거리곤 했다.



 동심초(同心草) 노래의 정확한 곡과 가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가곡집을 통해서였다. 이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작시로 되어 있어, 벼슬길에 오른 낭군 아니면 자식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으로 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근년에 인터넷을 통해 그 노래의 원작은 당나라 여류시인인 설도(薛濤, 770-832)라는 것을 알았다. 이 여인은 좋은 집안 출신인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악적(樂籍; 일본의 유흥을 돋구는 '게이샤'와 비슷한 것, 기생과는 다른 개념)에 올랐으며 어릴 적부터 시를 지을 줄 알았고 문장이 뛰어나 당대의 일류 문인들과 교류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리자 평생을 수절하며 떠난 님을 그리워하여 이렇게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佳期猶渺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空結同心草)



 마음을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누님이나 신사임당이나 당나라
설도가 맺으려 했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랑의 마음이었을까?
그렇다면 사람은 사랑의 마음을 맺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인가?
 붓다는 출가하여 성불(成佛)후 왕궁에 일시 복귀하였다가 다시 떠나려 할 때, 울며 매달리는 그의 부인 '아수다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오. 세상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언젠가는 잃고 마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괴로움이 따르는 일이거니 사랑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면 더 평안할 것이오."     
 사랑의 마음을 맺는 것은 고(苦)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人情)에 대한 집착이 더 질긴 고통을 낳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음과 마음을 맺으려 하지 말고 풀잎만 맺는 것이 더 낳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것은 출가한 스님의 생각이자 생활이지 어디 우리 뭇 중생들이야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해탈하고자 인정과 사랑의 맺음을 하지 않으려면 출가를 해야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모두 출가를 할 때 이 세상은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해탈한 사람들로 가득하다가 그 후로 사람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몸과 마음을 맺고, 부딪히며 살 맞대고 살아야 할 '인간(人間)'들이다. 이미 이만큼 살아오며 맺은 인연이 수도 없이 많아 그 인연을 끊고 떠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또 나 혼자 고통의 인연을 끊고자 떠난다면 그건 무책임한 일이다. 그러기에 이미 맺은 사랑과 인정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마저 끌어안은 채….



 그 시절 봄 꽃 만발한 서낭당 고갯길을 넘어 시집간 누님은 이제 환갑이 지난 할머니가 되었다. 그간 덧없는 세월은 수도 없이 꽃을 피웠다가 지웠는데, 이 봄 다시 피고 지는 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때 맺은 마음과 얼굴들이 그리워 그 노래를 또 웅얼거린다.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03. 5월, 가는 봄날을 붙잡고

5 Comments
톰돌이 2004.03.19 11:01  
  참! 진실하고 선하신분을 뵙습니다
일가족 오셨다 가셨으니
즐거움이 몇배가 되셨겠나요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도 뵙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바다 2004.03.19 13:07  
  저는 비록 그 자리에 못갔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날이었음을
여기저기서 읽고 있습니다. 다녀오셔서 그것도 처자식과 함께
 다녀오시고 이렇고 훌륭한 참관 후기를 써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내 마음의 노래>가 벌이는 여러 일들에 서광이 비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까 2004.03.19 21:02  
  비솔님.
아드님 데리고 오셨죠?
저 바로 앞에 앉으셨던 것 같은데요.
참 아름다와서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kangja 2004.03.20 08:17  
  누님을 향한 님의 얘기 잘 들었습니다.
느낌이 있는 세상살이를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장미숙 2004.03.20 11:36  
  비솔님의 글을 대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추억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 감회가 깊습니다.
요즘 이가 아파 오랫동안 치료를 해오다 결국
오늘 이를 뽑아냈거든요.
앓던 이를 뽑은 것 처럼 시원하다는 말과 다르게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이와의 이별이 많이 서운했는데
붓다의 말씀을 새겨 들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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