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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雅號

鄭宇東 0 1461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성명(姓名)을 갖습니다.
어릴때에는 어른이나 친구들이 쉽게 부르는 바우 등등의 아명(兒名)이 있고
고금에 차이가 있지만 성년이 되면 冠禮나 성년식을 치루고  이때부터는 이름을
휘(諱)하여 함부로 부르지 않고 字(名)으로 부릅니다.
가정을 꾸려 가장이 되면 堂號를 가지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할때
스승이나 인생의 선배가 칭찬이나 축원의 뜻을 담아 아호(雅號)를 내려줍니다.
죽고 난후 생전의 공로를 기리어 영광스럽게 나라에서 주는 시호(諡號)가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별호가 있는데 요즘 컴퓨터시대에 와서는 I D가 등장하고 더 나아가
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세계에서 자신을 대신하게 합니다.

孔(夫)子는 이름이 구(丘)였고 자는 중니(仲尼) 였습니다.
공자는 머리가 생긴 모양이 산언덕 같아서 이름을 丘라 하였고, 어머니 안씨가 니구산
에 기도하여 낳고 그위로 형이 있으므로 仲尼라 字名을 붙였다 합니다. 
애제자 安回는 자가 자연(子淵)인데 이름의 돌回와 연관되게 소용돌이 못淵를 썼습니다.
또 다른 제자 仲由는 자가 子路인데 경유의 뜻이 있는 길路를 써서 字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공자의 시대에는 아직도 아호가 없었고 이름과 자(명)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연관이 있도록 지었다 합니다.

우리가 무심히 이름처럼 알고 있는 
金素月님은 소월이 아호이고 본명은 金廷湜입니다.
홍난파님은 본명은 洪永厚이며 그 아호가 蘭坡입니다.
朴木月님은 본명이 朴泳鍾이며 그 아호가 木月입니다.
고진숙님도 본명이 고봉선=>고경택이고 그 예명이 고진숙입니다.

내가 아는 몇분의 호를 더 적어보면 
이흥렬님은 만향( 巒鄕)이고 조두남님은 석호(夕湖)입니다.
구두회님은 향파(香坡)이고 신귀복님은 성파(星坡)입니다.
최영섭님은 운산(雲山)이고 간혹 높을崔 대신 高雲山으로 필명을 삼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 특유의 해학이 발동하여 태진아가 노래한<사랑은 가고>를 작곡하며
朴仁燮 작곡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최선생님은 유머스럽게도 호의 성으로 높을 高자
를 쓸때 높을 최씨성에 대신하여 쓴것이고 예명 박인섭의 박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하는 사람의 성이고, 인은 젊은 청춘시절 활동한 고향땅 인천이고, 마지막 섭자는
자기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남기는 뜻이라 하였습니다.

난파선생은 작곡이나 작시의 작품내내 모두를 아호로 일관하였고
문학적 재능에도 남달리 뛰어났던 여러 예술가들은, 예를 들면
만향 이흥렬선생은 자작시 <고향 그리워>에 작곡하였으며
석호 조두남선생은 자작시 <뱃 노래>와 <백마강>에 작곡하였으며
향파 구두회 선생은 자작시 <사우월>에 작곡하며 아호로 표기하였습니다.
박목월 선생은 손대업선생이 작곡한 동요곡<얼룩송아지>에 그 원동시를 본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최영섭선생은 가요를 작곡하면서 예명을 써서 당시의 기분을 캄플라쥬한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예술가들의 아호를 살펴보는 중에
우리 선인 예술가들의 아호에 농사農자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가정가족을 칭찬하며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어른들 말의 뜻을 좀 알듯합니다.
오랫동안 정착 농경생활을 해온 농자천하지대본으로 삼고 살아 온 생활과 전통이 베어
들어 유전자처럼 고착된 겨레의 숨길 수 없는 정서일 것입니다.
서농(書農) 김정희 ㅡ 추사외의 아호로 농사 짓듯이 글을 쓰서 먹고 사는 사람
단농(丹農) 이건창 ㅡ 울긋 불긋 丹靑으로 그림을 그려서 생활하는 사람
철농(鐵農) 이기우 ㅡ 쇠칼로 조각 또는 전각하여 생활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쓴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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