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작업할 녹음실을 찾아서 (2006. 11. 25. 토요일)
음반 작업할 녹음실을 찾아서 (2006. 11. 25. 토요일)
권선옥(sun)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1 -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2. 테너 문상준님. 반주자 손영경님.-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3. 고진숙 선생님.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 -
11월25일 노는 토요일. 중간중간 눈을 떴지만,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공산>과 <벚꽃 지는 계절>을 녹음하는 날이라 일찍 서울로 가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일찍 올라가서, <문학공간> 사무실에 들른다든가, 불광동의 고향 선배님를 한 번 뵙는다고 하고선, 몇 년째 번번히 실천에 옮기질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밤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 것도 게으른 내가 일찍 일어나지 못 하는 데 한 몫을 한 셈이다.
<팔공산>과 <벚꽃 지는 계절>을 음반 작업할 서울 압구정동의 '국제녹음실'을 찾았다. 문밖에서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잘못 찾았나 해서, 잠시 난감해 하던 차에 고진숙 선생님께서 알고 문을 여셨다.
녹음실에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 있던 반주자 손영경 씨와 눈이 마주쳤다. 여러 차례 통화는 했지만 손영경 씨와 인사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여전히 존함은 들었어도 처음 뵙게 된 작곡가 박영 선생님과 막 인사를 나누고 나자, 연주자인 문상준 씨의 '3시 딱 2분 전이네.'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항상 지각을 일삼는 나는 이런 말 정도는 늘 못 들은 척하는 편이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12시 26분 발 KTX를 타고 올라가서 초행길을 조급하게 겨우 찾아서 녹음실에 들어선 탓이다. 오늘 같은 날이야 연주자가 중심 인물이지, 내가 시간에 맞추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억지 핑계를 대어 보지만, 어쨌든 나의 이런 악습은 언제나 고쳐질런지. 죽기 전에 고쳐질지 사실 의문이다.
예닐곱 곡의 노래가 음반으로 출시되었지만 녹음실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공산>은 테너 박범철 교수님에 의해 음반도 나오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합창으로 공연된 곡이라 관심이 가는 곡이기도 하다. <벚꽃 지는 계절>도 김동진 선생님으로부터 곡을 받아서, 학교 음악선생님과 불러 보면서 무척 마음에 들어한 곡이었다. 그래서 한 번 배워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해 볼까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전에는 노랫말이 될 시만 제출하면 맡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냥 알아서들 하시겠지 하는 생각에 소극적이었다. '녹음 일정'에 관한 연락이 와도 던져 두는 편이었고, 때로는 시간이 안 되어서도 그러했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음반 출시가 된 적도 있지만 때로는 오타가 무지 많이 나와서 속 상한 적도 있었다. 이번부터는 일을 조금씩 배워서, 자켓 인쇄 작업의 정서와 오타 정정같은 아주 작은 일이나마 힘이 되려 한다.
문상준 씨는 가곡 교실 같은 곳에서 노래를 할 때면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이 난다고 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녹음은 처음이라 긴장이 된다고 했다. 녹음실 밖에서 보고 있으려니, 난감해 하는표정들이 잡혀서 밖에서 보고 있으면 더 긴장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와 버렸다. 입구 대기실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그곳에도 화면과 함께 음원이 제공되고 있었다.
고진숙 선생님께서 다른 일을 하시다가는 지나가는 말씀으로 '이제 녹음 끝났어요. 들어가 보세요.' 하신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번 작업을 하시다 보니, 다른 일을 하시면서도 진행 상황을 다 감지하고 계신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손영경 반주자와 사장님 겸 직원이신 엔진니어께서 주도적으로 믹싱(mixing) 중이었다.
문상준 씨께서 작시자님도 검토하시지요 했지만 나야 뭐 음악적 지식도 없고 청취력도 부족하니, 연주자님과 반주자님이 알아서 검토하시라고 했다. 하지만 부분부분 끊어 가면서 들려지는 소리로 말하자면 때로는 맑은 계곡의 물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힘차게 솟는 분수 마냥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잘 부르셨네요."
했다. 그래도 문상준 씨는 뭔가 자꾸만 부족해 하고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학교 다닐 때, 물론 나는 아니지만,
"너 시험 잘 봤던대. 1등이구, 한 개만 틀렸다면서?" 그러면,
"나 이번 시험 때 공부 전혀 못 했어. 잠만 잤어."
꼭 그렇게만 말하는 애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연상 작용이 일어났지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배당되어진 녹음 시간은 한 곡에 30분씩 해서 한 시간만에 끝났지만, 고진숙 선생님도 계시고 해서 다음 작업들도 지켜 보았다.
바리톤 우재기님 '아내의 생일'(강정철작시/ 박영 작곡)과 '별자리 사랑'(권영옥 작시/ 김귀자 작곡) 녹음 장면과,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의 '누군가 보고 있네'(홍인숙 작시/ 김동진 작곡), '우리들'(김성균 작시/ 작곡), '봄으로 오시는 임'(최연숙 작시/ 황덕식 작곡) 그리고 '촛불'(이혜민 작시/ 박영 작곡)의 연주 모습을 지켜 보았다.
바리톤 우재기님의 혼신을 다해서 연주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악보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시선이 화면을 향했다.또한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께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서 물을 몇 잔이나 마시면서 호흡을 조절을 하며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졌다. 녹음이 끝나고 믹싱 시간에 앞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할래요!'하는 단호함에 그 분의 프로 정신을 느꼈다. 연주자들의 녹음에 임하는 이 같은 모습들을 통해,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새삼 느꼈다.
며칠 전 통화하면서 아이도 돌봐야 하고, 재직하고 있는 포천 대진대학교 학생들의 오페라 연습 지도도 해야 하고, 음반 녹음의 반주도 해야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이틀이나 집에도 못 들어 갔다던 손영경 반주자님은 저녁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저녁 7시에 또 다른 일터로 향했다.
사업상의 대출금도 마저 깊아야 하고, 너무 일이 밀려 들어서 '이틀 동안 집에도 못 들어 갔다'(요즘 유행인가?)고 하시는 사장님 겸 직원이신 국제녹음실 사장님. 밀어 닥친 현악 연주팀에 휩싸여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계속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들 일행들은 밖으로 나왔다.
이틀 집에 못 들어 갈 정도로 일에 중둑된 분들이 많은 듯 한데, 나도 12월에 제의가 들어 온 고등학교 보충수업 6-7 교시도 맡아서 돈도 더 벌고, 요즘 간간이 있는 야간학교에 가서 무료 강의로 봉사활동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그리고 '이틀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살아나 볼까 생각하다, '아써라~! 그렇게 무리하다 설혹 돌아가실랴!' 생각을 접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도 많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 가능하면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뭔가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2006. 11. 27.>
권선옥(sun)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1 -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2. 테너 문상준님. 반주자 손영경님.-
- 2006. 11. 25. 국제녹음실에서3. 고진숙 선생님.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 -
11월25일 노는 토요일. 중간중간 눈을 떴지만,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공산>과 <벚꽃 지는 계절>을 녹음하는 날이라 일찍 서울로 가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일찍 올라가서, <문학공간> 사무실에 들른다든가, 불광동의 고향 선배님를 한 번 뵙는다고 하고선, 몇 년째 번번히 실천에 옮기질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밤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 것도 게으른 내가 일찍 일어나지 못 하는 데 한 몫을 한 셈이다.
<팔공산>과 <벚꽃 지는 계절>을 음반 작업할 서울 압구정동의 '국제녹음실'을 찾았다. 문밖에서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잘못 찾았나 해서, 잠시 난감해 하던 차에 고진숙 선생님께서 알고 문을 여셨다.
녹음실에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 있던 반주자 손영경 씨와 눈이 마주쳤다. 여러 차례 통화는 했지만 손영경 씨와 인사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여전히 존함은 들었어도 처음 뵙게 된 작곡가 박영 선생님과 막 인사를 나누고 나자, 연주자인 문상준 씨의 '3시 딱 2분 전이네.'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항상 지각을 일삼는 나는 이런 말 정도는 늘 못 들은 척하는 편이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12시 26분 발 KTX를 타고 올라가서 초행길을 조급하게 겨우 찾아서 녹음실에 들어선 탓이다. 오늘 같은 날이야 연주자가 중심 인물이지, 내가 시간에 맞추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억지 핑계를 대어 보지만, 어쨌든 나의 이런 악습은 언제나 고쳐질런지. 죽기 전에 고쳐질지 사실 의문이다.
예닐곱 곡의 노래가 음반으로 출시되었지만 녹음실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공산>은 테너 박범철 교수님에 의해 음반도 나오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합창으로 공연된 곡이라 관심이 가는 곡이기도 하다. <벚꽃 지는 계절>도 김동진 선생님으로부터 곡을 받아서, 학교 음악선생님과 불러 보면서 무척 마음에 들어한 곡이었다. 그래서 한 번 배워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해 볼까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전에는 노랫말이 될 시만 제출하면 맡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냥 알아서들 하시겠지 하는 생각에 소극적이었다. '녹음 일정'에 관한 연락이 와도 던져 두는 편이었고, 때로는 시간이 안 되어서도 그러했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음반 출시가 된 적도 있지만 때로는 오타가 무지 많이 나와서 속 상한 적도 있었다. 이번부터는 일을 조금씩 배워서, 자켓 인쇄 작업의 정서와 오타 정정같은 아주 작은 일이나마 힘이 되려 한다.
문상준 씨는 가곡 교실 같은 곳에서 노래를 할 때면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이 난다고 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녹음은 처음이라 긴장이 된다고 했다. 녹음실 밖에서 보고 있으려니, 난감해 하는표정들이 잡혀서 밖에서 보고 있으면 더 긴장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와 버렸다. 입구 대기실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그곳에도 화면과 함께 음원이 제공되고 있었다.
고진숙 선생님께서 다른 일을 하시다가는 지나가는 말씀으로 '이제 녹음 끝났어요. 들어가 보세요.' 하신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번 작업을 하시다 보니, 다른 일을 하시면서도 진행 상황을 다 감지하고 계신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손영경 반주자와 사장님 겸 직원이신 엔진니어께서 주도적으로 믹싱(mixing) 중이었다.
문상준 씨께서 작시자님도 검토하시지요 했지만 나야 뭐 음악적 지식도 없고 청취력도 부족하니, 연주자님과 반주자님이 알아서 검토하시라고 했다. 하지만 부분부분 끊어 가면서 들려지는 소리로 말하자면 때로는 맑은 계곡의 물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힘차게 솟는 분수 마냥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잘 부르셨네요."
했다. 그래도 문상준 씨는 뭔가 자꾸만 부족해 하고 아쉬워 하는 눈치였다.
학교 다닐 때, 물론 나는 아니지만,
"너 시험 잘 봤던대. 1등이구, 한 개만 틀렸다면서?" 그러면,
"나 이번 시험 때 공부 전혀 못 했어. 잠만 잤어."
꼭 그렇게만 말하는 애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연상 작용이 일어났지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배당되어진 녹음 시간은 한 곡에 30분씩 해서 한 시간만에 끝났지만, 고진숙 선생님도 계시고 해서 다음 작업들도 지켜 보았다.
바리톤 우재기님 '아내의 생일'(강정철작시/ 박영 작곡)과 '별자리 사랑'(권영옥 작시/ 김귀자 작곡) 녹음 장면과,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의 '누군가 보고 있네'(홍인숙 작시/ 김동진 작곡), '우리들'(김성균 작시/ 작곡), '봄으로 오시는 임'(최연숙 작시/ 황덕식 작곡) 그리고 '촛불'(이혜민 작시/ 박영 작곡)의 연주 모습을 지켜 보았다.
바리톤 우재기님의 혼신을 다해서 연주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악보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시선이 화면을 향했다.또한 메조소프라노 김자희님께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해서 물을 몇 잔이나 마시면서 호흡을 조절을 하며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찡해졌다. 녹음이 끝나고 믹싱 시간에 앞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할래요!'하는 단호함에 그 분의 프로 정신을 느꼈다. 연주자들의 녹음에 임하는 이 같은 모습들을 통해, 열심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새삼 느꼈다.
며칠 전 통화하면서 아이도 돌봐야 하고, 재직하고 있는 포천 대진대학교 학생들의 오페라 연습 지도도 해야 하고, 음반 녹음의 반주도 해야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이틀이나 집에도 못 들어 갔다던 손영경 반주자님은 저녁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저녁 7시에 또 다른 일터로 향했다.
사업상의 대출금도 마저 깊아야 하고, 너무 일이 밀려 들어서 '이틀 동안 집에도 못 들어 갔다'(요즘 유행인가?)고 하시는 사장님 겸 직원이신 국제녹음실 사장님. 밀어 닥친 현악 연주팀에 휩싸여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계속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들 일행들은 밖으로 나왔다.
이틀 집에 못 들어 갈 정도로 일에 중둑된 분들이 많은 듯 한데, 나도 12월에 제의가 들어 온 고등학교 보충수업 6-7 교시도 맡아서 돈도 더 벌고, 요즘 간간이 있는 야간학교에 가서 무료 강의로 봉사활동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그리고 '이틀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살아나 볼까 생각하다, '아써라~! 그렇게 무리하다 설혹 돌아가실랴!' 생각을 접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도 많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 가능하면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뭔가 배움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2006.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