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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뒤지기 ( 1. 사랑의 숨바꼭질)

강수남 4 1051
저벅~저벅~저벅~ 쿵! 쿵! 쿵!
무게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현관 안쪽까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일제히 현관문 안쪽에 귀를 대고 숨마저 죽이고 있던 우리들은
한순간 와다다~ 순식간에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조금 후...덜컥 문이 열리고,

야아~ 이노옴~들아아...아빠가 왔다아...
아~니~이? 이~놈들이 다 어디 갔지이?...

톤을 반옥타브 정도 깔아내린 음성으로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목소리가 굵직한 베이스로 우렁우렁 울립니다.

언뜻, 무성 영화로 이 장면만을 본다하면

미녀와 두 아이가 사는 집에 야수가 쳐들어오는 컷이라거나
순한 양 엄마와 새끼 양 두 마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좀 크다싶은 늑대의 침입 장면쯤 되어 보일 것 같습니다.

아이구...집이 이게 뭔 꼴여...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며 뒹구는 책들
먹다만 과자와 귤껍질들을 주섬주섬 치우고
자신의 옷도 한가지씩 벗어가며 어슬렁~ 어슬렁~

일단, 안방 문 뒤에 숨어있는 나를 제일 먼저 찾아냅니다.
매일마다 되풀이되는 짓인데도
나는 항상, 언제 들킬까 마음이 조마조마 해집니다.

이노옴...하며 나를 찾아내면
나는 활짝 웃으며 그의 겨드랑이에 내 팔을 끼워 넣고
그에게 뽀뽀를 하자고 덤비며 그제서야 그의 귀가를 반깁니다.

다음 순서는 베란다에 숨어있는 딸입니다.

벗은 양말을 세탁기 옆에 가져다 놓으면서
아주 우연히 찾은 듯
...이노옴...소리가 또 한번 들려오고

맑은 둘의 웃음소리가 베란다에서부터
집안으로 또 집밖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안방으로 돌아와 딸의 일과를 묻고..듣는 간간이,
아니이...이 놈은 또 어디 갔지이?
허어...도저히 찾을 수가 없네에?...
아들놈은 그냥 앉은 채로 목소리로만 찾습니다.

그 때마다 거의...백발백중
장롱 속에 들어앉아서 머리만 쳐 박고 있을
그 녀석의 숨죽인 킥킥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우리 셋은 그 순간부터 공범자가 되어서
글쎄...아까까지 있었다는 둥...
나갔나보다는 둥...다같이 너스레를 떨며
살짝 열려진 틈으로 장롱 안을 몰래 들여다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꿩 새끼 숨듯
그 좁은 공간에서 엉덩이는 쳐들고 머리는 구석에 박고
이제나...저제나...어서...어서...때만 기다리고 있는
아주 작은 몸뚱이가 보입니다.

매일 봐도 또 웃기는 그 모습에 키득거리던 우리는
도저히 못 찾겠다는 둥 몇 마디 주절대다가 거실로 우르르 나가 버립니다.

그러면 갑자기 조바심이 생긴 녀석은
자기가 숨어있는 장소를 힌트 주듯
장롱을 두드려 댄다거나 히히히 소리를 약하게 내보냅니다.

그렇게 내내 같이 낄낄거리던 나는,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조금씩 안달이 나기 시작하여
이제 그만 어서 찾아주라고 눈짓으로 암시를 하지만
신랑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끝까지 말로만 찾습니다.

이러다가 색다른 화제라도 나와 그 얘기에 몰두하다가
아들놈의 존재를 잠시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오기와 고집이 만만치 않은 이놈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제 풀에 지쳐 지 스스로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슬금슬금 장롱 문을 나오는데,

아...기대처럼 저를 찾느라 바쁜 우리들이 아니라
딴 얘기에 정신이 팔린 우리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부터 원망으로 가득 찬 눈에...목소리에...눈물로
항변을 늘어놓으며 갖은 난리를 치는데

나는 그놈이 느낄 그 배신감이
아주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이 놀이가 너무 길어지는 게 사실 겁이 납니다.

결국, 내 성화로 신랑은
베개를 꺼내는 척...장롱을 열고
베개대신 그 녀석을 집어 올리는 걸로 우리의 숨바꼭질은 끝이 납니다.

따르릉~

네...아빠~

딸애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봅니다.

아빠가 문 따놓으래?

빨리 따~
아니야...오늘은 꼭 엄마가 따놓아야 한대.
그으래?

그 말을 듣자마자 몇배나 더 행복해진 내가,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는데
뒤통수 쪽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뭐야...너어? 또 속고 말았습니다.

나만 더 특별 대접(?) 받고 싶은 마음을
딸년에게 들킨 모양입니다.

하하하~ 깔깔깔~ 우히히히~

오늘도 여전히..

어려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못 받고 자란 엄마와
그 엄마 밑에서 절대 가정교육 안 받은 애들 둘과

깜깜한 밤중에 활개를 치던 바퀴벌레들이
갑자기 켜진 밝은 빛에 한순간 일제히 흩어지듯
우당탕당~ 난리가 나는 순간입니다.

나는 열려진 안방 문 뒤에..아들놈은 장롱 안으로..딸년은 베란다로.


지금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위기에 몰려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고
집 공간이 좁아 몸을 여기저기 꾸겨넣기가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즐거운 놀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며
하루빨리 넓은 집으로 이사가기만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아마도 이젠...
그 행복한 숨바꼭질 놀이에서 얻던 기쁨들을
다시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공간이 허락된다 할지라도
시간따라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위해 이제나 저제나 여전한 자세로
아빠를 기다리고나 있을런지...

그렇다고,
나 혼자서 침대 밑에 숨어 찾아 줄 때까지
납작 엎드려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_^*

추억만으로도 행복해질 때가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
4 Comments
산처녀 2006.09.14 22:14  
  참으로 행복이 절절이 묻어 나는 글입니다.
우리집의 아이들 어릴때가 생각 나는군요 .
우리 ,덩치가 하마처럼 큰 막내가 히히 하며 웃고 나오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흐릅니다. 맛깔 나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신정미 2006.09.15 11:47  
  아... 사랑스런 수남님.
나만큼 (우리신랑한테만) 사랑스런 수남님.
오늘 아침에 출근한 우리 남편을 그립게하는 글...

수남님의 사랑스런 재주가 탐납니다.
온마음을 화사롭게 만들다가 결국은 아리게 만들어 버리는군요.

이제는 다커버린 우리 두아들도 그립군요.
저녁에  두아들에게 숨바꼭질놀이 하자면 내말 들어 줄까요?
강수남 2006.09.16 12:14  
  산처녀님, 신정미님
정말 감사합니다.^^ 
과찬에 부끄러우면서도...배시시 웃어봅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송인자 2006.09.26 10:31  
  이 글은 다시 봐도 사랑스럽고...가슴 저리는 구석이 있네요.
좋은 글 올려 준 수남 선생님 이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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