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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산산과 함께 몰아친 첫사랑의 추억

수패인 9 1464
태풍 산산 과 함께 몰아친 첫사랑의 추억 *^*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남겨진 가을/이재무 중에서...

어제 고향에서 고등학교 동기 골프대회가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40명이 넘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고 즐겁게 지내다 새벽 6시30분에 서울을 떠나 다음날인 월요일 이른 1시30분에 도착 하였습니다.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항구도시 K시에서 사업을 하는 동기 녀석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의 말이 녀석의 안사람이 저에 대해서 묻더라는 겁니다.
물어볼 이유가 없을 텐데 어떤 연유일까 당연히 궁금해 졌죠.
친구의 말로는 부인이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데 제가 대학 다닐 때
같은 대학 다니는 여자와 알고 지낸 기억이 전혀 없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집히는 데가 있어 부인이 K시 K여고를 72년에 졸업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겁니다.
아!!! 그랬구나...

30여 년 전 종로에 있는 C'est si bon(쎄씨봉..오랜만에 써보는 불어 표기가 맞는지 모르겠네요)이라는 다방에서 단체 미팅이 있었는데 여학생이
한사람 안와 심지 뽑기를 한 결과 탈락해 혼자서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던 억세게도 운이 나쁜 녀석이 하나 있었죠.
10명중 한사람 탈락인데 거기에 끼였으니 운도 억세게 없는 셈이죠.
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달리 갈 곳도 마땅치 않아 친구들 즐기는 틈에 끼여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녀석 앞에 무척이나 도시적인 얼굴에 도도한 태도의 여학생 한명이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자리를 잡습니다.
모습과 같이 거침이 없는 그녀는 S여대 경제학과에 다니며 미팅을 한다기에
약속은 했지만 오고 싶은 마음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늦게 왔는데 늦게 나타나길 잘했다며 늦게 온 죄로 저녁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돈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저녁을 얻어먹는다는 기쁨보다 늦게 나타나길 잘했다는 말로 제가 마음에 든다는 표현을 하는 그녀에게 저는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우리는
늦게 맥주까지 한잔 한 후에 다음 만날 약속을 하곤 서로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고 집근처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와서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첫사랑은 그렇게 제게로 다가왔어요.

두 번째 만남에서 삼청공원으로 산책을 간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금시간이 임박한걸 알게 되고는 허둥지둥 택시를
찾는데 동대문스케이트장 근처인 그녀의 집으로 갈 택시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레 그녀의 친구가 사는 남산 밑 후암동에 갈 택시가 있어
그녀의 친구 집에 데려다 주곤 통금시간이 다된 저는 근처 산길여관
이라는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몇해전 그쪽에 갈일이 있어 지나다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산길여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근처 그녀의 고향인 K시로 기차를 타고 오가는 길은
무척이나 즐거운 길이였어요.
당시만 해도 주로 제과점에서 만나 데이트를 했는데 어쩌다 그녀를 아는
남자 대학생들을 만나면 시샘 반 부러움 반의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죠.
손도 잡지 못한 채 몇 걸음 떨어져 걷곤 했습니다.  소도시인 탓에 행여
아는 어르신이라도 만날까봐.
제 고향에도 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어머니 눈엔 별로였는지
살림만 할 여자 같지는 않다며 탐탁해 하시는 눈치는 아니셨지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를 어머님은 결혼을 염두에 두신 듯한 말씀으로
저를 난감하게 하셨는데 그 당시에 유행하던 비로도(벨벳)천으로 만든 옷을
입는 등 유행의 첨단을 걷던 그녀가 어머님 눈에는 그리 보였겠지요.

언젠가는 그녀의 언니가 다니던 학교근처 태능 배밭에 가서 배를 19개나
먹어 두 자매를 놀라게 했던 일도  있었는데 그녀의 언니는 남자는 그저
먹성이 좋아야 한다며 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서유석의 오오 오오오~아름다운 나의 사람아~로 끝나는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
사뮤엘슨의 경제학 Economics 원서의 번역을 시험공부를 위해 부탁해서
공부에 바쁜 의대생인 저를 더욱 바쁘게 했던 그녀...
번역덕분에 A+ 얻고 친구들한테 으쓱하게 됐다며 좋아하던 그녀...
싫증을 잘 안내는 저와는 달리 쉽게 싫증을 낸다는 그녀와 저는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헤어지고 말았죠.
매년 그녀의 생일에 맞춰 학교로 책을 보내곤 했는데 그 정성에 감격을 했음인지 제가 본과 일학년 그러니 3학년 때 연락이 와서 만났었는데 다시
시작 했으면 하는 그녀의 언질을, 눈치 빠르지 못한 둔한 제가 알아듣질
못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 들였는지 그 후론
연락이 없고 그녀가 졸업한 후로는 책도 보낼 수 없었죠.

제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어머님의 강요에 못 이겨 선을 본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상대방이 그녀의 고등학교 후배였어요.
그녀를 잘 안다며 제가 그녀와 일년 이상을 사귀어 왔다고 말했는데도
선본 후 얼마 후에 제가 마음에 든다고 중간에서 소개했던 분을 통해서
연락이 왔었지만 지금의 집사람과 열애 중이던 제게 그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큰딸이 입학한 대학이 그녀가 다녔던 같은 학교 같은 학과가
되자 집사람이 큰 녀석 에게 아빠 옛날 애인이 네 선배이니 주소 알아봐서
만나게 해주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던 적이 있었죠.
하고많은 학교를 두고 하필 큰 녀석이 그녀의 후배가 되다니...
집사람과 연애 할 적에 첫사랑이 누구였냐고 집요하게 묻길래 그녀와의
이야기를 아무런 가리낌 없이 말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세월이 흘러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 제목도 그녀의 생일날도 다 잊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를 잊지는 않았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딱 한번만 만나면 꼭 물어보고픈 말이 있는데 딱 한번 우연이라도 딱 한번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간혹 생각하고 있었는데 ...
너무도 변한 서로의 모습에 놀랄지 모르지만 향기로운 커피 냄새와 더불어
자녀들 이야기 서로의 배우자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펼칠 수 있으리라.

그런 그녀가 그녀의 여고동창인 제 고등학교동창 부인에게 저를 물어봤다니
가끔은 그녀도 제가 생각이 남인지. 나이 들어감에 자꾸만 잊혀져 가는
추억들이 안타까움 인지.
태풍 산산이 몰고 온 그녀의 소식에 옛 추억이 파노라마 처럼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 후 제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습니다.
제 고등학교 6년 선배인 어느 고위공직자가 그녀의 남편이라고 친구가 말하더군요.
아마도 곱게 물들어 가리라 생각됩니다.






















9 Comments
세라피나 2006.09.18 18:54  
  ^^**

선생님!!
가을~~^^ 이지요??~~...^^
바다 2006.09.18 21:10  
  그 때 우리 그럴 걸 그랬다 이군요 ㅎㅎ
 첫사랑은 산산이처럼 와서 수패인님의 가슴은 할퀴지 말았으면...
 인생은 아름다워라.
첫사랑은 아름다워라.
별헤아림 2006.09.19 01:49  
  감미로운 첫사랑의 추억으로~
중년의 가슴에 태풍이 이는듯
수패인님의 마음에 가을빛이 어립니다.ㅎ.ㅎ.
이종균 2006.09.19 05:50  
  추억이 많은 인생이
참으로 긴 인생이라는데
정말 부럽습니다.
sarah* 2006.09.19 07:23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했지요
옛 추억이 지나가며 마음 속에 이는 잔잔한 물결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로 아릿하게 이어져 오는군요
첫 사랑에게 진솔했던 마음은... 세월을 거쳐 퇴색 되어도
아름답게 기억되어져... 또 다른 행복감의 진원지로 자리합니다
이 가을에...
산처녀 2006.09.19 12:45  
  첫사랑은 만나지 않는게 좋다고 혹은 말하더군요.
꿈이 깨진다고 ..
가을에 듣는 첫사랑의 안부 .
추억속에서 행복 하십니다. 첫사랑과 추억이 없는 인생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음악에빠져 2006.09.21 01:50  
  첫사랑은 아름다움으로만 끝나는 것같습니다.
만약 그때 이루어졌다면 또 다른 사랑의 추억을 갖겠지요.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었을 때,
그 추억 생각하며 흐뭇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것
혹여 다시 만난다 해도 웃으며 옛날 기억을 서로 더듬을 수 있는 것
그 정도의 아름다움이면 족할 것같아요.
아님, 그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도... 라고 말해야 할라나?
바람소리 2006.09.21 14:05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이미 사라진 태풍 산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어릴 적....바라만 보아도 저의 마음을 태우던 예쁜 그녀의 소식을 알고 싶어 몇년전에 이리저리 확인해 보니....이미 고인이 되어 있더군요...

예전의 추억은 예전의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의 그 모습과 그 마음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바 위 2006.09.21 15:53  
  첫 사랑 강언덕에 나팔로 부르면은

고였던 그리움이 출렁이다 넘쳐나서

임이가 튕기듯 달려오면  부러워서 어쩔 꼬 ~


아마도
첫사랑도 없는 놈
가을이란 소문 맞나요 ?

존 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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