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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곁에서......

바람소리 2 1066
어머니 곁에서......

  어제까지 잔뜩 흐렸던 하늘이 밤새 비를 내려서인지 깨끗하게 맑아졌습니다. 지금 막 떠오른 태양의 빛이 더욱더 빛나 보입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크게 들이쉬어 내 마음속의 고통과 슬픔의 찌꺼기를 담아 내뿜어 봅니다.

  어머니, 지난 밤 역시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누군가를 불러대셨지요. 무엇을 보시는지, 누구를 부르시는지 저는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보고자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요. 제가 무엇으로 당신의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지요.

"노인성 치매현상은 뇌 세포가 손상되거나 죽는 것 때문인데 할머니는 고혈압에서 오는 뇌혈관의 파열 및 단락으로 인하여 뇌 세포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있습니다. 희생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의사선생님의 그 말이 어머니를 이렇게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는 무서운 결과를 담은 말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큰 소리로 계속해서 저의 이름을 부르시고, 힘으로 당하지 못하는 저의 아내를 밀쳐내고 그냥 밖으로 나가셨을 때, 그런 어머니의 뒤를 추위에 떨며 그렇게 울먹이며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저의 아내를 애처롭게 여겨 어머니께 원망의 눈빛을 보냈던 작년 겨울, 그때가 오히려 좋았습니다. 밤새 저의 집안 이곳저곳에 대소변을 보아 놓은 그 아침에, 투덜대며 그것들을 치우던 그때가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밤에도 살그머니 나가시는 어머니의 방문을 차마 밖에서 잠궈 놓을 수가 없어 방문을 열면 사이렌이 울리는 스위치를 달아, 그 사이렌 소리에 몇 번이나 일어나 어머니를 말리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고 하시며 갑자기 2층 베란다에서 밑으로 떨어지시고,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바닥에 떨어져 계신 어머니를 꼭 껴안고는

"어머이 살아만 주이소. 제가 죽을 때까지 어머이를 지성으로 모시겠심더󰡓

라고 울면서 절규하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합니다.

  심한 뇌출혈이었으나 고혈압과 심장의 나쁜 상태로 인하여 수술하지 못하고 입원하여 계시다가 약 2주일만에 퇴원하신 후 움직이지 못하시고 누워있는 채로 대소변을 받아낸 3주일 가량의 시간이 저희들로서는 가장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이젠 느낍니다.

  그 후로 조금씩 움직이시면서 매일 밤 벽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대실 땐 저는 가장 불효스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면 좋으련만.......󰡓

  온 집안에 널려진 대소변을 치우며 옷과 이불을 매일 세탁하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으나 이웃으로부터

"할머니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미치겠다󰡓

  는 질책을 듣고, 다 삼키지도 못하는 눈물을 흘리며 그냥 흐느끼는 아내를 보며 솔직히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돌아가시기를 바랬습니다.

“치매는 가정과 온 가족을 파괴하니 어머니를 요양소에 보내시지요. 벽을 두드리고, 일어서다 넘어지고, 여러 가지로 전문 간병인이 필요합니다.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노인요양소를 소개해 드릴까요? 가족들과 상의해 보시지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저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자식들을 키우시기 위해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신 어머니를, 우리 생활이 불편하다고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상의하여 힘들더라도 우리가 모시자고 하였지요.

  어머니 방의 방바닥과 벽에 두꺼운 스티로폴을 대고 장판을 붙였지요. 바닥의 장판아래에는 푹신푹신한 침구를 많이 깔았지요.
매일, 대소변 하는 줄 모르시고 방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다가 그것을 손으로 짚으시고, 벽을 잡고 일어서시고 벽을 두드리다가 넘어지시고, 매일아침 어머니를 목욕시키고 방을 닦아낸 그 생활들이 오히려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의사의 처방에 의한 강력한 수면제도 어머니를 몇 시간 잠들게 할 수 없었으며 계속된 그런 날에 우리 모두 지쳐버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것이 어머니께도 편한 것이고 우리가족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년간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수발하더니 이제 또 어머니께도 정성을 다하는 아내에게도 저의 미안함을 덜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이제야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고 과일즙이나 국물 같은 것으로 연명하시는 어머니의 야윈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정말 저의 곁을 떠나실 것 같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의 정신적인 지주이십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는 모두 어머니의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안 계신다면, 저는 삶의 방향과 은혜 갚을 분을 잃어버리는 허탈감에 빠질 것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역경을 스스로 이겨나가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스스로 안타까워하시며 슬퍼하시던 어머니. 이제 좀 편해 질만 하니 정신을 빼앗기신 어머니.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으나 이상하게도 오직 저만 알아보시고 저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고마운 어머니.
  야윈 두 손으로 저의 뺨을 쓰다듬으시며 그냥 저의 이름만 부르시는 어머니.

  정신이 맑았던 예전에, 고통스러웠던 삶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눈물과 함께 저에게만 털어놓으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듣고 굿굿하게 견디는 체 했다가, 뒤켠에서 펑펑 울던 저를 어느새 보시고 저의 뺨을 쓰다듬으시던 어머니. 그 때의 손은 그렇게 야위지 않았습니다.

  아홉 살된 아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아빠, 할머니가 왜 저래요?”
“응, 사람은 나이가 들면 다 할머니처럼 저렇게 된단다. 아빠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될거야.”
“네, 저도 나중에 아빠가 저렇게 되시면 아빠가 할머니 모시듯이 잘 모실께요.”

  아,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까지 내 아들에게 참된 효도의 교육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좋은 선물을 주고 가시려는 어머니.
  어머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정신이 드셔서 저희들의 효를 조금이라도 느끼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의 그 고통과 괴로움을 어머니께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시듯, 저희들도 다른 치료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아직 살아 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 옛날 제가 어렸을 때 아파 누워 있던 저의 건강을 두 손 모아 빌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자꾸 되뇌어 봅니다.

"제발, 우리 영택이 아픈 거 나한테 다 주고, 우리 영택이 아프지 말게 해 주이소󰡓


  이 글은 내가 11년 전 어머니를 모시면서 써 놓았던 글인데....... 이듬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오늘도 보고싶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습니다.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온전한 정신이 있을 때 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2 Comments
수패인 2006.09.22 18:15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온전한 정신이 있을 때 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왜 자식들은 부모님 살아 계실땐 그 고마움을 모를까요.
왜 그 큰그늘을 애써 외면 하려 할까요.효에 대해 잠시나마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신발끈 다시 단단히 매듯.

산처녀 2006.09.23 14:21  
  읽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합니다.
그저 부모님이 좀 불편하시면 부모님이나 자식이나
힘들지 읺게 이제 그만 가셨음 하는생각이 듭니다.
저도 지난해 친정 어머니가 펺찮으실때 올케 힘들지 안하도록
돌아 가시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절대로 그러하지 않을것입니다 .
그래도 님은 아주 효자이십니다.
아픈 마음을 갖일수 있다는것만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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