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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기다리는 마음

이종균 6 1361
  해를 기다리는 마음       
                            (와룡산, 금산)

  삼천포를 안아 솟은 와룡산(臥龍山;799m)은 고려사의 한 자락을 깔고 있어 누구나 관심을 갖는 곳이다.
  더더구나 이 산을 오르고 일박한 뒤에 남해 금산에 올라 새해의 해맞이를 한다니 어찌 이 기회를 놓치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와룡산에 있는 배방사(排房寺)는 고려 현종(顯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우거했는데 뱀 새끼를 보고 “...언제든지 숲 밑에만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하루아침에 용 되기 어렵지 않으리라.”고 시를 읊었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를 거슬러 「고려왕조 실록」으로 올라가 본다.
  고려태조는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하여 총 29명의 아내에게서 25남 9녀를 두었으나 후대에 자손이 쉬 꺾여 왕위를 잇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태조의 4남인 광종의 외아들 경종이 재위 6년만인 나이 스물여섯에 요절하자 그의 제4비인 헌정왕후(황보 씨)가 청상의 몸으로 사가에 머물렀는데 태조의 8남인 욱(郁)이 가까이 왕래하다가 숙질간의 불륜으로 아이를 잉태한다. 이에 성종은 욱을 책하여 사천(사남면)으로 귀양 보내고, 아이를 낳고 산모가 산욕으로 죽자 성종은 자기 사촌동생인 아이(詢;순)를 궁중으로 데려다 보모에게 기르도록 했다.
 어느 날 성종이 아이를 보러가니 아버지 아버지하며 무릎위로 기어오르는지라 성종은 눈물을 흘리며 제 아비 곁으로 보내라 명하여 순은 사천 배방사로 보내진다.
 욱이 귀양 온지 네 해만에 죽어 와룡산 능화봉 아래 묻힌 뒤, 천애의 고아가 된 순은 10년 만에 개경으로 돌아가나 성종이 죽고 목종이 들어서면서 성종 비 헌애왕후가 섭정하며 김치양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순을 불문에 강제 출가시키고 암살을 기도한다.
  이 때 충주부사 채충순의 거사로 순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제8대 현종이다.

  우리가 이 산 들목에 도착한 것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늦은 오후2시, 남양저수지의 수면에 얼비치는 햇살에 아직 지지 않은 억새꽃이 눈부시다.
  당초는 천왕봉(625m)을 먼저 오를 계획이었으나 갑룡사를 지나 도암 재에서 바로 새섬바위(797m)로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키보다 가파르고 험난한 암벽 길을 기어올라 새섬바위에 오르니 와룡산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와 왜 와룡산이라 했는지 알 듯도 하다.
  와룡이란 드러누운 용이라 움직이지 않으니 죽은 용이 아닌 가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누울 와(臥)자는 엎드릴 와자라고도 할 뿐만 아니라 제갈공명의 고사와 관련하여 송 대의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공명위와룡(孔明爲臥龍)이라 하였으니 영웅이 때를 기다려 숨어 있음을 비유한 뜻이다.
  저 맑은 바다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힘차게 솟구친 용이 몸을 ‘U’자로 되돌려 다시 머리를 바다로 향하고 있는 형국이 뚜렷하다.
  바로 이 앞에 저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천왕봉이 바로 용의 머리요, 이 새섬바위에서 칼바위 민재봉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울룩불룩한 봉우리들은 용의 등줄기 같기만 하다. 그래서 용은 끝내 꼬리를 바다에 걸치고 있다. 언젠가 비만 풍족하게 내린다면 뛰어 오를 자세, 때를 기다리는 영웅의 모습 아니랴.

  와룡산 정수리 민재봉(旻岾峰;799m)은 문자 그대로 하늘재이다.
  북으로 지리산, 남덕유산, 그리고 웅석봉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고, 남으로는 한려해상에 사랑도, 욕지도, 두이도, 수우도, 그리고 그 서쪽으로 신수도 넘어 남해 금산과 호구산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내일이면 2007년 새 아침에 솟는 해를 저 우람한 금산 위에서 맞으리···.
  오후 네 시를 넘긴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발길을 서둘러 북녘 백천재를 지나 깊고 긴 백운 골로 내려가니 벌써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백천골은 와룡산의 서쪽에 있는 천하절경을 간직한 계곡, 임진 정유 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들에 의해서 왜적을 물리친 곳에 호국의 가람 백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친형제로 알려진 의선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절은 중창을 위한 대역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옥내 약사여래 와불의 몸속 법당을 비롯하여 여느 사찰에서 봉견할 수 없는 여러 불상과 탑들을 어둑해지는 날씨 때문에 상세히 살피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남녀 회원 40명이 학교 교실만한 어느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코고는 소리, 코고는 소리에 잠 못 잔다고 중얼거리는 입고는 소리 때문에 한밤을 지새운 혼숙의 첫 체험이었다.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해 금산으로 향했다.
  금산(錦山;681m)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지정된 거제 지심도에서 통영, 사천, 남해를 거쳐 여수 오동도에 이르는 광활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일찍이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는 그 초막을 보광사(普光寺), 이 산을 보광산이라 했다는데, 조선태조가 여기서 100일기도를 드리고 왕위에 오른 뒤 이 절을 보리암, 이 산을 금산이라고 개칭했다 전한다.
  어쨌든 이산은 기암괴석의 절경을 무려 38경이나 지닌 곳으로 이태조가  기도를 했다는 삼불암 아래 있는 기단이 24경이요, 제1경은 단 연 최고봉인 망대로 옛 봉수대이니 외침을 대비한 안보 통신상의 요지 아니랴.
  이 산에서 기도하면 종교적이건 정치적이건 뜻을 이룬다는 전설 때문일까? 수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모였다.
  옛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잘 정리된 등산길을 빽빽이 매운 사람들이 칠흑 같은 야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산길은 오를수록 점점 좁아지는데 틈만 생기면 끼어드는 습성은 자동차나 사람이나 같은가보다. 쌍무지게라는 뜻의 쌍홍문(雙虹門)을 지나 가파른 돌길에서 최악의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보리암에 이른 사람들이 산위로 빠지지 않고 거기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동이 트는데 바다에는 짙은 구름에 덮여있고, 온 산머리는 해 오르기를 고대하는 사람들로 뒤덮여 있다.
  끝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해는 보지 못했어도 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염원을 나는 분명 느꼈다. 
     
6 Comments
김형준 2007.01.08 21:13  
  아, 혼자 산행을 하셨나 했더니 많은 분들과 함께 가셨군요.
40명이나 되는 큰 그룹이었네요.
학교 교실 크기의 찜질방에서 그 많은 남녀가 혼숙을... (^_^)
여기서 '드르렁', 저기서 '드르렁' 하고 코고는 소리와
'아이구 저 놈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하고 투덜대는 소리가
적절한 화음을 이루어 다른 이들이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주범이 되었네요.
게다가 그 좁은 방에서 남녀가 거의 몸을 맞대다 시피 하고
누웠으니 힘든 점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잠도 제대로 편히 못 주무시고, 새벽 4시에 깨어 산행을 하셨다니
힘이 많이 드셨겠네요.

다녀오셔서 충분히 푹 쉬셨어요?
김형준 2007.01.08 21:15  
  참, 위에 올려 놓으신 사진들은 이선생님께서 직접 찍으신 것들인가요?
명암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가 되어 흥미롭습니다.
요즘은 보통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던데 첫번 째 사진은
수동카메라의 줌렌즈를 이용해서 멀리서 찍은 것 같이 보이네요.
이종균 2007.01.08 21:37  
  첫번째 사진은 사천 와룡산 칼바위봉이고,
두번째 사진은 남해 금산 쌍홍문 입니다.
이 신비스런 바위굴을 지나서 보리맘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습니다.
이 굴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상주 앞바다의 야경을 잡은 것 입니다.
김형준 2007.01.09 03:30  
  사진들을 다시 자세히 음미해 보았습니다.
칼바위봉의 경관은 세상 전체를 파노라마식으로
환히 열어 놓은 모습입니다. 정상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 상상이 됩니다. 좁은 공간이지만요.

금산 쌍홍문 광경은 무언가 귀하고 호기심이 끌리는 것을
살짝 훔쳐 보거나 엿보는 듯한 쾌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칼바위봉은 환한 천지개벽의 모습이고,
쌍홍문은 아직 잠에서 덜 깨거나 깊이 잠들어 있는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낮과 밤, 빛과 어둠의 대조 및 조화
바로 그것이 우주가 운행하는 기본 원리 내지는 법칙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도록
귀한 사진들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형준 2007.01.09 11:39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여덟 번 아니 아홉 번의 해가 떴습니다.
시간은 늘 그러하듯이 언제 갔는지 모를정도로 빨리 갑니다.
과연 이 여덟 개의 24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미가 있게
보냈는지 곰곰히 반성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보내나,
의미가 있는가,
창조적으로 보냈는가,
남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매일 아침 새해를 맞이하는 뿌듯하고 신선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후회없이 잘 살겠다고 다짐을 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남기고 싶은데 아직도
폭발적으로 강력한 글을 쓸 동기가 잘 유도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김형준 2007.01.11 03:45  
  산들이 춤을 추고 있다.
바람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 되어 환희의 찬가가 터진다.

지구는 돈다.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끄덕 없이 버티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살아 숨쉬고 있다.

산과 산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모든 산은 하나이다.
단 하나의 산도 혼자서는 생존할 수가 없다.

산 밑에 평야가 있고
바다 밑에 또 다른 평야가 교향곡을 부른다
바다가 끝나면 다시 평야가, 그 평야의 끝에는 또 다른 산이 이어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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