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집어등(集魚燈) 밝은 빛에 잠시 홀리어
푸른 동해 다시는 못 보게 되었다네.

몸 안에 것 다 빼앗겨 텅 빈 껍데기인 채
덕장, 찬 바닷바람에 온 몸 내맡기며
마지막 남은 한 방울 수분까지 다 날려 보낸 후
태백준령 넘어 낯선 타향까지 왔다네.

급기야 온 몸 뒤틀리도록 불에 데이고
쫙쫙 찢겨지고, 남은 껍질까지 벗겨져
어느 누구의 번민(煩悶)과 함께 소주에 곁들여 씹힐 운명.

나는
  ㅇ 원산지 : 국산(동해안)
  ㅇ 품명  : 오징어
  ㅇ 공급원 : 속초시 오징어 건조인 협회.

그러나 내 몸 하나 철저히 내어주고
누군가의 속 깊은 슬픔 달랠 수 있다면야……

                                          (2009.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