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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Day'와 거짓말

별헤아림 2 929
'White Day'와 거짓말
권선옥(sun)

아침에 출근을 해서 담임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어간 사이
비담임 선생님들은 품위있게 차를 한 잔 마신다든가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며 여유를 부리는 편이다.
고개를 들다 책상 너머로 지나가시는 교장선생님을 보고는
"안녕하세요?"
크지 않은 목소리로 가벼운 목례 정도의 인사를 건네고 나니,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어제는 서구에서 들어와 제과점과 가게 앞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었던 국적불명의 'White Day'라고 했던가.
그래서 젊은이들은 연인들에게 사탕바구니를 퀵서비스로 보내며 자신의 열정적인 마음을 표현하기에 안간힘을 쓰는 날이기도 하다. 서로의 마음을 무리 없이 주고받는 사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마음 없는 여자친구의 환심을 사려고 거금의 용돈을 털어 부으며 사탕바구니를 고등학교 교실로 퀵써비스 보냈다가 그 여학생이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가서 혼났다는 얘기는 안타까움과 함께 개운치 못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
이런 얘기야 아무리 나이를 에누리를 해 봐도 말하자면 30대 중반까지는 봐 줄 수 있는 애교라는 것이 나의 평소 기준이었고, 따라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좋아하기도 하고 삐치기도 하는 것은 점잖치 못한 여린 마음이라 치부하던 터였다.
그런데 어제 아침 월요일이라 직원회의가 열렸는데, 두어 분의 전달사항이 끝나자 귀여운 인상의 W부장이 일어나더니
"오늘은 국적불명의 'White Day"입니다. 서구에서 들어온 기념일을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마음을 우리도 배우고 공유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라는 말을 하고는 앉았다.
그런데 직원회의가 끝나자 그 W부장이 사탕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비담임 대표로 제 책상 위에 교장 선생님이 사탕봉지를 올려 두셨습니다." 하고는 사탕을 돌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교장선생님께서 일찍 출근하셔서 2학년과 3학년 학년실에도 올라가서 사탕봉지를 놓아두시고는, 아직 아무도 출근하기 전이어서 다시 문을 잠그고 내려 오셨다고 한다. 물론 미혼의 신임 여교사들도 많기는 하지만 대개 나이도 들만큼 든 선생님들이 사탕 몇 개에 현혹될 일은 아니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급식실을 빼고라도 80명이 넘는 교직원들을 생각하시고 배려하시는 마음에 감동들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이미 지난 상태에서 고맙다는 친교상의 인사를 드리기도 뭣하여서 업무전달에 주로 이용되며 전교직원에게 전체 전송도 가능한 쪽지 기능의 <쿨 메신저>에 메시지를 전송했다. 교장 선생님과 W부장에게 동시 전송으로.

<<< 권선옥 => 신 교장선생님과 W 교무부장에게 보낸 글
어제 치과엘 갔었습니다.
원래 사탕이 당도가 높은데다 교장오라버님의 직원들을 생각하시는 '달콤한 사랑'이 녹아 나서 당도가 너무 높은 탓에 혹시 치아에 치명적인 손상을 미칠까 우려하여 예방 차원에서 치과엘 들렀던 것입니다.
다른 병원과는 달리 치과에는 대체로 사탕을 비치하는 일이 드문 편입니다.
'초콜렛, 호박사탕, 더불어 빤짝이사탕'을 다 먹었다는 저의 설명을 듣고는 치과의 여의사 가라사대,
"뭐라구요..! 저는 오늘 하루 사탕 구경도 못 했는데, 초콜렛, 호박사탕, 게다가 빤짝이 사탕까지나...?'
하면서 질투 어린 시선으로 째려보는 바람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서 황급히 도망치듯 집으로 퇴근해 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권선옥에게 답신 전송
이래서 시인이 위대한가 봅니다.
메시지 하나에도 이렇게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이렇게 배려하시는 마음 때문에 학교 오기가 너무 즐겁습니다.
좋은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분 좋은 하루하루입니다. >>

<<교장 선생님 => 권선옥에게 답신 전송
큰일 난 것은 아니겠지요?
사탕 때문에 치과까지 갈 형편이 되었다면~~~
그런데 치과에 알아보니 사탕 먹은 치아가 훨씬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충분히 드리지 못 해서 혹시 못 드신 분이 계시지는 않았는지요?
상쾌하고 좋은 글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권선옥 => 교장 선생님께 재답신 전송
유통과정상 문제가 있어서 혹시 사탕 못 먹었다며 1층(교장실)으로 일러바치는 사람이 없으면 잘 배분된 것으로 압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그리고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던 그래서 비켜간 날 <화이트 데이>이지만 그래도 아주 잠시 여유와 따뜻함을 느낀 추억입니다. -

<2005. 3. 15.>
2 Comments
우지니 2005.03.16 03:43  
  별헤아림님께선 지나고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요.
옛날 같으면 얼마나 귀한 선물인데...
힘든 세상이라고는 해도 80여직원들에게 다 베푸시는 교장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에 우선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드셔서 비록 해가 될지언정 독약은 아니고 맛 있는 사탕이잖아요.
정이 많으신 교장선생님의 사랑을 골고루 나누어 드린 것 같습니다.  별헤아림님  맛 있게 드셔요. 보약이 될 수 도 있을테니...
서양문화가 우리생활에 깊숙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의 힘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지않나 생각 해 봅니다.
젊은세대들이 즐겨 받아드리고 즐기므로....
별헤아림 2005.03.16 09:20  
  2006년 3월 14일에는 저도 우지니님께 사탕 우편으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해가 될지언정 사탕은 그저 그렇지만 초골렛은 좋아하지요.  같은 교무실에 계시는 우리 교감선생님은 사탕을 무지 좋아하십니다. 지금도 eating~~~...@!
 어떨 때는 할말이 있으셔서 오셨다가 보험회사 아줌마들이 두고 간 사탕이 책상 위에 굴러 다니면 해결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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