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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차성우 0 783
뼈빠지게 농사일로 사셨거나, 조그만 가게 하나 열고 물건 팔아 사셨거나.
우리들의 아버지가 말없이 바라시는 자식에 대한 기대는,
 ‘너는 자라 부자 되거라’ 였다.
 슬픈 너무나도 슬픈 바램이었다.
 
 우리들이 세상 모르는 나이일 때에 우리 자신들이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먹고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던가.
어린 동무들은 그저 무엇이던 먹고 배만 부르면 아무 걱정 없이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열심이었던 그 때,
 부모는 자식들이 배를 곯을까 얼마나 애태우셨을까? 어른이 되고서야 그 시절 어버이 근심을 조금씩 깨달으니 안타까운 마음 그칠 길이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봄소풍 가던 날 아버지는 5원을 쥐어주시고 학교로 가는 나를 저만큼 바라보시다가 다시 불러 손목 시계를 끌러 주시며
  ‘오늘은 시계를 차고 가거라’ 하시었다.
뭐 그리 시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나, 나는 친구들에게 손목을 보이며 자랑할 생각에
너무 기쁜 마음이 되었었다.
그 시절 시계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는 우리 반에 한 명 정도 있을 때였으니....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고 내가 진주로 이사와서 셋집에 살 때
아버지는 병으로 앓아 누워 계시다가 어느 날
 ‘저승 갈 때 노잣돈으로 쓸 것이니 돈좀 다오’ 하시고는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

잊었던 일들이었으나,
내 아들놈 소풍 가던 날 나는 갑자기 지나간 날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중병으로 앓아 누우셨던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말에 병석에 일어나셔서 조금씩 일을 하시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졸업식하고 그 이튿날이던가 장날에 아버지는 거창읍 시장에 나를 데리고 가셔서 길가의 좌판 위에 늘어놓고 파는 구두를 사 주면서
 ‘이제 너도 어른이구나’ 하시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니는 자라
부자되거라‘
뻐꾹새가 짬도 없아 울어대던
논두렁에서
감나무 껍질 같이 터진
손등으로 물꼬를 터시며
하셨던 말씀이다.

다섯 배미의 논과
등골이 지치도록
땀방울만 맺게 하던
몇 평의 밭뙈기로
아버지는
일곱 식구를 키우셨다.

옛날에,
청춘 하나와
근심스런 당신의 눈길
손가방에 담고
햇살을 바라며
고향 떠났다.

조각구름으로 떠돈 지
수십 년
세상 그 어디에서도
부자 될 길은 멀기만 했다.

아버지는
도시의 셋집에서
목숨 거두시고...

고향에 가면
푸르디푸른 산언저리
뻐꾹새로 오셔서
‘니는 자라 돈 많이 벌어
부자되거라‘

진정 서러운 아버지의
말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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