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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파계사를 오르며

별헤아림 16 1440
팔공산 파계사를 오르며
권선옥(sun)

10월 추석연휴가 기다리고 있는 10월 2일 월요일.
왠지 일상의 업무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따분한 날.
교무실에 청소하려 온 학생들을 시험기간이라 교무실 출입하지 말라면서 서둘러 내몰고는
교직원 친목회를 위해서 팔공산으로 향했다.

시험기간 첫날에 주로 교직원 친목회 행사를 한다. 감포에 회 먹으로 간다거나, 청도 운문사로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학교로 오면 제일 눈꼬리가 올라가는 인간들이 학생들이다. 자기들은 시험공부하느라 힘이 드는데 선생님들이 놀러 간다면서 쫑알쫑알 따라오면서 야린다.
그러면 '야~! 이것들아, 너그들은 시험 끝나는 날 극장 가고 시내에 나가고 난리치면서... . 우리 선생님들은 집에도 못 가고 주관식 채점하는데 말이야~.'라고 되받아 줘야만 아무 소리도 못 한다.
그래서 놀러 갈 때는 말없이 사싸- 싸-악 사라져야 한다. 그래도 간혹 '선생님들 어디 가세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으면. '으~응. 선생님들 단체로 두 시간 연수가 있어서... 바쁘다 . 그러니 너그들도 빨랑 집에 가서 시험 공부 해래이~.'하고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다.

장소는 가끔씩 얼굴을 비치기도 하는 탈렌트 유퉁의 국밥집이 있는 바로 옆 '청둥오리집'이라고 했다.
정해진 장소엘 들어서니, 이것은 식당이라기 보다는 기업이었고, 건물도 왠지 북한의 급식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명 정도 들어가 봐야 손님이 있다는 말도 못 할 정도이니, 아마 600명 정도는 능히 수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빨랑 밥 먹었으면 생산량 증대를 위해 서둘러 일터로 가야지. ㅋ.ㅋ.' 농담도 했었다.
네 명이 한 테이블에서 청둥오리 한 마리 반을 먹고, 죽까지 먹고나니, 배가 불렀다. 배가 부르니, 다음에 가져온 삶은 오리알은 모두들 먹지 않고 단체로 들고서 만지작거렸다. 따끈하고 매끈한 것이 만지기에 좋기도 하겠다. 모두들 집에 가져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옆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먹고 있는 친목회장의 오리알을 달라고 했다. 가져 가라고 하더니, 계산하는 자기말을 제일 잘 듣게 되어 있으니, 얘기해서 더 받아 주겠다고 해서, 오리알을 양손에 쥐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됐어요.'하고 거절했더니, '남편 안 주고, 아들 딸 줄려구?' 하셨다. '남편 안 줘요.'했더니, '남편을 줘야 되돌아 오지.'하셨다. 나머지 세 명의 여인네들은 삶은 오리알을 남편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실실 웃기만 하고 토를 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만 아들 딸 챙기는 별종이 되어 버렸다.

국어과 황선미 선생님이 파계사로 올라갔다가 저녁 5시 쯤에 내려 오자고 했다. 난 기분이 별로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했다. 차를 학교에 두고 온 탓에 식당 승합차를 타고 바로 가려고 생각했는데, 승합차가 두 시간 후에야 출발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따라서 걷기로 했다.

파계사 입구 매표소까지는 차로 가서는 그 다음부터 걸어가자고 했다. 대구문협회원인 시인 김선옥 선생과 황선미 선생님은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미식가들이어서 음식점 위치와 기타 상식 등등 참 아는 것도 많다. 거기에 비해서 대충 먹고 머리 굴리지 않고 대충 운전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한참이나 열등생이다. 그래서 가끔씩 끼이는 다른 선생님들은 말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나도 시끄러워서 같이 다니기가 싫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길 상식도 부족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 선생님들은 술이 취해서 올라오다가 퇴약볕에 체력도 달리고 잔머리도 못 굴리시니까 돌아갔는지 파계사에는 그림자도 비치질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서 좀 올라가니,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윽한 못이 보여서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산길을 올랐다. 경내로 들어서니 우람한 나무들이 세월을 말해 주듯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수다들도 기가 꺾이는지 귀가 쉴 틈이 생겼다. 전통툇마루를 보자, 모두들 걸터 앉고 싶은 충돌이 한결 같음이라. 행동이 뒤처지는 나는 툇마루에 적힌 작은 글씨를 읽어 보았다.

<마루에 걸터 앉지 마세요.>

동작 빠르게 앉아있는 두 아낙에게 말했다.

"앉지 마. 앉지 마. 여기 <걸터 앉지 마세요.> 요렇게 적혀 있다 아이가."

했더니, 그들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척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사실 내가 더 앉고 싶었다. 그래서'

"에~이. 그래도 앉아라. 앉아라. 고마 앉아뿌라."
내가 앉기 위해서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한 명이 자기도 그 글자 읽었는데 그래도 너무 앉고 싶어서 앉았다고 했다. 어쩌면 앉지 말라는 데도 앉았다고, 스님께서 나오시면 꾸중을 들을 지도 모르지만, 모두들 절간의 툇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추녀끝 목어소리도 들어보았다.
지붕의 용마루 너머로 흐르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흰구름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위쪽으로 좁은 산령각(山靈閣)에서 창모자 쓴 아낙이 뭔가를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들 한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맞이하는 가을의 모습은 모두가 다르겠지. 이직 이른 가을빛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모두가 다르겠지. 아마 그렇겠지.

굳이 차에 두고 오라고 해도 부득부득 가방과 함께 들고오는 조영미 선생님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그녀의 마음은 어떤 가을빛이며, 이 가을 유달리 아파하는 나의 가을빛은 또 무엇이며, 두어 달 뒤 초겨울이면 군대엘 간다는 우리 아들의 가을빛은 또 어떤 가을빛일까.

<2006. 10. 9.>

팔공산 파계사 전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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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강하라 2006.10.09 22:58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그 속으로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어요-

TV에서는 핵실험이 어쩌고 전쟁이 어쩌고 하면서

시끄러운데 이곳에 오면 이렇게 고요함이 느껴지니--

글쎄--  여전히 더운 가을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별헤아림 2006.10.09 23:10  
  글 몇 줄 쓰다가 아들 밥 차려 주고
다시 쓰는 중입니다.
좀 있으면 가을이 오려고 하는 팔공산 자락 산사에서
저 너머 무념무상의 흰 구름도 보여드릴게요. ㅎ.ㅎ.

아~참!
<TV에서는 핵실험이 어쩌고 전쟁이 어쩌고>
설마 동족인 우리한테 핵 터뜨릴려고 별일 없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그러다 또 배신 때리면 어쩔 수 없는 거구요.
누구는 또 그러대요. 통일이 되면 그 핵도 우리 거라고... .
(저 지금 판단력 상실하고 하는 얘기니, 그냥 넘어 가세요. ㅎ.ㅎ.)
바다 2006.10.09 23:15  
  얼른 이어 쓰셔요
기다리다가 잠 못이룰까 걱정이 됩니다.
 낼 출근해야 하니까 ㅎㅎ
산처녀 2006.10.10 01:08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파아란 쪽빛 하늘...
별헤아림 2006.10.10 01:17  
  쪽빛 하늘과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흰 구름... .

한참이나 바라보았답니다. ^^*
달마 2006.10.10 04:48  
  파계사 정경이야 팔공산 점지함이

별 찾음 에비한뜻 너누룩이 밝은날요

요사체 앉은 맘만은 핵실험이 무상 타
이종균 2006.10.10 05:50  
  한 때 능금의 고을로


















한 때  능금의 고을로 생각되던 대구, 섬유산업과 염색기술의 발달로 그 이름 떨치어 패션의 도시로 이미지가 바뀌는가 싶더니, 이제 시인들의 왕성한 활동이 문예도시로 떠오르는 듯 합니다.
*대구 가까운 밀양에서 10년을 산 관계로 골마다 천년불심이 서린 팔공산에 자주 오르던 추억이 디카 연동사처럼 스쳐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경선 2006.10.10 07:45  
  역시 펜무기를 쥔 별님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간다.
전 오랫만에 전남 해안지역을 여행하면서
강진 김영랑생가를 들렸는데
가곡을 부르기가 더욱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이동균 2006.10.10 08:37  
  팔공산 비로봉에 봉황이 높이 나니
고난 넘어 왕건이 후삼국 통일했네
골짝마다 맑은 소리 기원담아 오르며
갓바위 석조여래 만호중생 굽어보네
화창하게 살아볼 날 태양아 더 빛나라
새 숨결 열리도록 팔공산아 우뚝 서라

달구벌 감싸듯이 둘러 선 너른 품새
오동나무 꽃보라 ? / / ????
2절까지는 다 기억이 안 나네요
어디 연주 한번 한다고 가사를 다 외웠는데 . . . .
우린 13일 부터 시험인데 . . . . .
별헤아림 2006.10.10 09:33  
  바다님.ㅎ.ㅎ
잘 지내시지요?
요즘은 딸들이 더 기세가 살아설랑...동병상련입니다.

달마님
핵실험 시간이 흐르면 또 무상해지겠지요.

이종균님
합창단 연주회 때 비어서 반가웠습니다.
모두가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습니다.

김경선 원장님
팬무기...제가 그런 무서븐 것을요?..ㅎ.ㅎ.

이동균 선생님
언제 선생님의 연주 들어볼 날이 있겠지요.^*
저도 제가 쓴 시이지만 이제는 좀 외우고 다녀야겠습니다.

-2절 -

달구벌 감싸듯이 둘러 선 너른 품새
오동나무 꽃 보라 그 향기 넘쳐나네
몸 바친 장절공 왕산 아래 흙을 깨워
임금 신하 굳은 믿음 목숨도 바꾸었네
화창하게 살아볼 날 태양아 더 빛나라
새 숨결 열리도록 팔공산아 우뚝 서라

팔공산에서 가장 큰 절 <동화사>에 대한 시를 일전에 오숙자 교수님께 보냈습니다. 언제 또 노래로 탄생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만....?


동화사
권선옥(sun)

동화사 대웅전에 가던 발길 멈추고
신라 향기 큰 가르침 독경소리 듣노라
해 저무는 가을 산 너울대는 잎새 따라
나그네 길 밝혀 주는 산사의 큰 등불이여

산상에는 동봉이라 더 오를 수 없는 곳
석등 곁에 밤 물소리 울창한 숲 영원하리
어디서나 지저귀는 멧새 소리 세상 소리
해가 뜨면 모여드는 공산의 큰 사찰이여

<2005. 4. 8.>
수패인 2006.10.10 09:47  
  제목에..댓글 꼬릿수 보곤 대뜸...권시인 이시구나 했는데...역시.
산에 간다고 하곤 베이스캠프를 죽기살기로 지키겠다는 술취한 산신령들이 그곳에도 여럿 계시군요.ㅎㅎㅎ
별헤아림 2006.10.10 10:17  
  인간이 의식주 해결되고 나면,

산은 산 대로 좋은 것이고
술은 술대로 좋은 것이고

저는 그날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만
마셨기 땜에 멀쩡하니, 잔머리 굴리는 팀에 붙어서
그나마 그 덕에 맑은 산사의 정기를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동과이긴 합니다만 '술 취한 산신령팀'에 휩쓸렸으면
아스팔트 퇴약볕을 걷다가 지쳐서 하산했겠지요.
살면서 어느 팀에 휩쓸려서 사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듯합니다.ㅎ.ㅎ.
에버그린 2006.10.10 11:03  
  별~님!
가보지도 못한 팔공산을..별님덕에 따라 올라 파계사 경내까지 들어선
기분입니다.  파계사 정경이 참으로 아름답네요.
언제 꼭 가보고 싶네요
지난달 가곡교실에서 별님의 "팔공산"의 악보를 보고..
문상준님의 연주를 들으며...
대구 팔공산에도 비로봉이 있다는걸 알았는데... 파계사 있고...
파계사 정경을 사진으로 직접 보여주시기 고맙습니다.
헌데...구두신고 오르셨나요? 대단하시네요..^*^

!
유랑인 2006.10.10 12:57  
  파계사에서 헤아리는 별은 얼마나 많을까?
규방아씨(민수욱) 2006.10.10 17:03  
  갓바위만 다녀보았지 파계사는 가보지 못하고 근처 식당과 찻집만 맴돌았었는데....언제 한번 가보야할것 같아요...ㅎㅎ
먼저 사진으로 구경 잘 했습니다
별헤아림 2006.10.11 03:29  
  에버그린님.
대구의 서남쪽으로는 비슬산이, 동북쪽으로는 팔공산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비로봉입니다만 꼭대기에 미사일 기지가 위치한(?) 탓에 접근금지이고, 양쪽으로 동봉과 서봉이 있습니다. 저는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만....^^*

파계사는 신발에 관계없이 오를 수 있습니다. 경사가 적당합니다. 스타킹이 미끄러워서 벗고, 맨발의 청춘으로..? 자세히도 보시는군요. ㅎ.ㅎ.

유랑인님
맑은 하늘의 별을 헤는 일도 행복하지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별보다 아름다운 사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규방아씨님
저는 '성주'라면 지금은 잊었지만 '여씨'들이 많이 사는 고을에 학술답사 갔던 젊은 날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닿으면 '파계사'도 다녀 가시고, '수태골'도 다녀 가시고... .
저는 차로 '수태골' 입구까지만 갔습니다만 여름이면 이곳에 어쩌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고등학생인 제 딸은 여름이면 친구들과 이곳으로 가더군요. 제 아는 사람들 중에서 '수태골'에서 기도 드려서 낳은 귀한 자식이란 사람들이 더러 있더군요....ㅎ.ㅎ.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