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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무슨 일이....

노을 7 773
가곡에 실려 흐른 세월은
그분의 모습을 그토록 말갛게 씻어내었나봅니다.
그냥 투명했습니다. 무심하기도 했구요.
부축을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어설프게 무대에 섰을 때
처음엔 어쩔 줄 몰라 하셨지요.
뒤늦게 짐작하신 선생님께서
카랑한 목소리로 잠깐 소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영화주제곡이라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었어.
서양의 쇼스타코비치도 영화주제곡을 많이 썼거든'
그리곤 손을 올려 지휘를 시작하셨습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노래가 시작되고
처음엔 선생님의 손이 그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 일어서서 선생님을 향해 존경과 사랑을 품고 열창을 하자
선생님의 지휘하는 손에 각이 스기 시작했어요.
힘차게 허공을 가르는 그 손짓은 이미 아흔 여섯의 나이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눈이 빛나며 창백하던 안색이 불그레 해지더니
'그대를 만날 때까지~' 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열정을 가지고' 라고 낮지만 힘있게 악상에 대한 주문도 하셨어요.
노래를 마칠 때쯤엔 날렵하게 곡선을 그리며 마무리를 해주셨지요.

그런 감동을 맛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아흔 여섯,
몸은 많이 쇠하셨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의 불꽃은
결코 스러지지 않았음을 느끼며
가곡의 산 역사와도 같은 분의 지휘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보았다는
감동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또 하나,
가고파 2부를 부족하나마, 다같이 끝까지 불러보았다는 사실도
깊은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늘 성악가들이 부를 때 흥얼흥얼 따라부르기만 했지
한 번도 끝까지 못 불러봤거든요.
가고파 2부의 노랫말은
김동진 선생님의 어린아이 같아진 모습에 너무도 어울려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선생님은
가재거이랑 달음질치고
뱃장에 누어 별 헤다 잠드는 세상 모르던 그 날을
진정 찾아가고 계시는 중이라고....
7 Comments
기종환 2007.10.23 15:29  
노을님의 훌륭한 묘사를
기사에 인용하겠습니다.
세라피나 2007.10.23 16:14  
노을님의 글을 읽고
소용돌이치는 울컥함을  감격이라 표현해 보면서...

*마에스트로*
 외국의 어느 유명한 예술가들에게만 지칭되는 단어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그날 밤,  그 겨운,  손끝의 열정은  우리에게도 한시대의 예술혼을  당당하게 
불사르신  진정한 거장 *마에스트로*를 직접 목격한^^ 숙연한 밤이었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정다운가곡 2007.10.23 19:10  
김동진선생님 먼 발치서라도 꼭 뵙고 싶엇은데....여기가 대구고 일도잇어 못 갓네요 아쉽고 .........언재 또 뵐수잇을라나  담에는 꼭 가서 뵈야지
淸想 2007.10.24 05:55  
노을님의 명주실 뽑아내듯 묘사하신
짧은 대목의 풍경들..
전화를 통해서 경험하고 또 이곳 내마노에서....ㅎ
감동의 순간에 살며시 빠져 봅니다.  이 아침에..*
규방아씨(민수욱) 2007.10.24 23:45  
감동 감동....!! 행복의 모습들이 눈에 선하네요...
여럿이 하나되는 시간이였을거 같아요
해야로비 2007.10.25 13:15  
그날 스쳐가는 얼룩진 눈물자욱이 오늘 또....흘러내리는 대목입니다.
어쩜 그리도 표현을 잘 해 주시는지요.  노을님~~

김동진선생님께 대한 예우로 일어서서 선생님의 지휘로 목청껏 부르던 그날밤은...몇년전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정은엔지 2007.10.26 12:11  
내마노가 아니면 그 어디서도 느낄수 없는 감동일 겁니다.
노을님의 글이 그날의 감동을 살려주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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