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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물빛 6 774
1981년 3월 30일이었어요.
입대 후 훈련소를 마치고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날이었죠.
그날 함박눈이 정말 엄청나게 내렸어요.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정도 되는
그런 눈송이들이었죠.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쏟아지는 하얀 눈 속에서
신병들을 환영하기 위한 행사가 연병장에서 치러지고 있었어요.
대대장님의 환영사가 끝나고 각 단위부대장들의 상견례도 끝나고...
정말 어이없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신병들의 장기자랑 시간은 꼭 있다는 거죠.

각 중대별로 배속을 받은 우리 신병 일행들은 하나씩 나와 단상에 올랐어요.
그리고 정말 어이없는 각자의 장기를 발표해야 했었죠.
그렇지만 별다른 재주가 없던 나는 정말 난감했어요.
그래서 그나마 아는 노래라도 한 곡 부르려고 했는데 끝까지 가사를 외우는
대중가요가 없었어요. 정말 난감했어요.
시간은 자꾸 흐르고... 하늘 가득 함박눈은 무참하게 쏟아지는데...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오고 말았어요.
'아~ 여기서 우물쭈물했다간 앞으로의 내 생활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500여명의 군인들이 뿜어내는 눈빛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아랫 배에 힘을 넣었어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닲은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군대에선 아마 보기 힘든 일이었죠. 분위기를 깨는, 눈 내리는 추운 겨울
그나마 찬물을 끼얹는 배신 행위였던 거죠.

그러나 노래를 부르던 나는 정말 행복했어요.
내 노래는 함박 눈송이들을 헤집고 연병장 멀리멀리 날아갔거든요.
나는 노래를 하면서도 내 노래소리를 전부 들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행복했어요. 닫힌 공간에서, 너무도 폐쇄적인 국방색 울타리 안에서
수선화는 피어났으니까요.

노래를 마치고 내려다 본 연병장엔 순간의 적막이 흐르고 있었어요.
물론 싸늘한 눈빛까지요.
단상을 내려오는데 대대장님이 그러셨어요. "음~ 아주 좋구만..."
아마 제 기를 살려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날 밤요?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너무 미련한 질문 아닐까요? 하하하하....
6 Comments
박성자 2005.04.16 00:19  
  멋진 추억이군요 
우지니 2005.04.16 03:11  
  그래도 원래는 기본기가 있으셨기에 용기 있게 그 순간을 잘 보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가 뭐래도 물빛님께서 행복감을 느끼셨다니  그때를 생각하면 영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꾸만 미소를 짓게 하겠네요.
배주인 2005.04.16 07:53  
  수선화~~
올해  모 합창단 오디션에서  무반주 가창 시험 지정곡이라던데요...
어려운곡을  싸늘한 연병장에서  허공에 수선화꽃잎을 날리셨을것을
생각하면 ...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소가 새어나시겠네요.
보석함에서  소중한  추억을 꺼내어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서들비 2005.04.16 12:02  
  무참했던 그밤의 추억이
지금은 아련한 아름다운 추억이 되셨지요??
아름다운얘기 고맙습니다.  ^^*
노을 2005.04.16 13:21  
  글도 재미있고 추억 또한 멋진 추억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으니 입소하여 훈련받고 있을
우리 조카 동협이 생각이 납니다.
규방아씨(민수욱) 2005.04.16 15:45  
  추억속의 노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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