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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생일에

정영숙 0 1340
딸의 생일에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의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 창원엘 갔다. 돌아오려고 하다가 문 듯 생각을 하여보니 내일이 딸의 생일이다. 딸에게 전화를 하여 차를 가지고 나오라 하였다. 딸집에만 오면 하룻밤만 자고 가버리는 내가 뜻밖에 저희 집에 간다고 하니까 좋아 하였다. 나는 해명을 하였다. 내일이 네 생일이라 창원 온 김에 생일축하 하고 갈려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딸의 아파트는 창원 끝에 있다. 공기와 주위 환경이 쾌적하여 그쪽으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는 낯 설은 곳이다. 8층에 올라 있으니 추운데 내려가기도 싫고 하여 외손자와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때 사위가 퇴근을 하였다. 딸이 조잘조잘 대며 제 남편에게 내일의 프로그램을 의논 하였다. 사위는 그래그래, 응응, 하며 재잘거리는 딸과 맞장구를 치고 있다.
자기 생일을 자기가 순서를 짜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 세대와는 완전히 차이가 있다. 나는 몰래 웃다가 사위가 고마워 칭찬을 하고 싶었는데 입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 마음으로만 내가 사위는 잘 만났다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니 딸이 말하기를 “ 엄마, 커텐 열어 봐요. 눈이 왔어요 눈이. 하얀눈.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맞은편 상가 지붕에도 소복이 눈이 왔어요,, 하며 어린아이 같이 흥분 하였다.
나는 커텐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은 소리도 예고도 없이 왔다. 윗 지방에서만 눈이 많이 왔다는 뉴스만 보았는데 이곳 남쪽에도 하얀 손님이 왔다.
하얀 산, 하얀 지붕, 하얀 도로,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밝다. 눈을 보고 감격하여 있는데 전화가 왔다. 딸이 받았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외할머니인데요. 상미야, 화이트생일이다. 축하한다 는 말씀을 하였다고 했다. 딸은 그 전화를 받고 난후 할머니는 엄마보다 더 신식이고 사랑이 많다면서 자랑을 하였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을 어찌하랴! 나는 다정한 성격이 못 되여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말 표현은 못해도 마음과 머리에는 다 저장 되여 있다. 그 저장 되여 있는 것을 풀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아침부터 축하전화가 계속 왔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눈이 와서 어제 짜놓은 프로그램이 허탕이 될 것 같았다. 관리실에서 방송으로 “주민여러분 눈을 치워야 합니다. 각기 쓰레바퀴나 다른 도구를 들고 나옵시오,, 라는 말을 하였다.
방송을 다 들은 딸이 사위에게 전화를 하였다. 몇 시에 회사에 도착했느냐, 또 출근안한 사람 몇이더냐, 오늘계획은 다 틀렸으니 조심하여 오라는 등의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제설작업 준비를 하고 내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장판에 앉히고 밀고 다닌다. 아이들은 미끄러지고 와다닥 넘어지면서도 좋아서 뛰어놀며 눈싸움도 하고 있다.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면서 관리실 모퉁이를 들이 받았다. 큰 사고가 나지 않아 안심을 하였다. 맞은편 106동은 지대가 높아 그동 주민들은 밑으로 내려올 수가 없이 되었다. 아이들이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미끄럼을 타고 있다.
나는 외손자를 안고 아래를 보며 “ 유현아! 엄마가 차를 깨끗이 치웠지? 그리고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지? 말의 뜻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손자는 엄마아빠 , 눈, 눈, 아빠! 라고 서투른 말씨로 귀염을 떨고 있다.
전화가 왔다. 우리교회 김순연집사다.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인데 딸집에서 눈 오는 날 전화를 받으니 산듯하고 반가웠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전화를 했느냐 했더니 , 어릴 때 고향에서 겨울을 지나던 생각이 솔솔 나서 감정이 통하는 정 선생님과 이야기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놀았던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풀어도풀어도 자꾸만 나오는 시골의 겨울. 매우 추었다는 싸늘한 추억은 아니다. 군불 짚이어 놓은 온돌방에서 화롯불 피워놓고 밤을 구워먹었던 따뜻하고 구수한 `그때 그 시절‘ 의 추억이다. 둘이서 맞장단을 치면서 대화를 하고보니 다소 세대 차이는 있어도 시골의 생활은 비슷하다. 한10분을 하하호호 웃다가 수화기를 놓았다. 딸이 제설작업을 하는 곳에는 처음에는 그다지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의 다 치워갈 즈음에 우루루 몰렸다. 많이 모이니까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 호스로 물을 뿌리며 눈을 녹여 버리는 사람, 모래를 뿌리는 사람, 각가지 방법으로 눈을 치우고 있다. 드디어 승용차가 한두 대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한 사위와 딸이 올라왔다. 딸은 떠들어대며 아래층에서 눈 치울 때 일어난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에 한 두 명만 와서 일을 한고로 갈수록 힘이 들어 집으로 갈려고 했는데, 같이 일하던 아저씨와 승용차를 움직이던 아즈머니가 칭찬을 하도 많이 하여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끝까지 하고 왔다고 힘을 주며 말 하였다.
칭찬의 힘은 강하다. 삐뚤어진 감정도 바로 세운다. 넘어진 나무도 일어난다. 그르니까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큰 선물이 칭찬이다.
오후3시쯤 되어 이제 시내로 갈 수 있겠다싶어 딸의 가족 셋과 함께 차를 탔다. 대담한 사위는 차를 높은 데로 운전하며 올라가서 사진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외손자는 차에서 새록새록 잔다. 횐 눈과 어린이의 얼굴을 바라봄은 죄가 없는 천국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을 움푹움푹 밟으며 촬영을 하는데, 한발한발 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미완성의 음악을 듣는 듯 신비롭고 신선하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 교통사고 날까봐 조심조심 앞뒤를 보고 마산으로 오는 길에 딸이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어요? ,, 라는 질문을 했다. 답은 제가 알 것인데----.
2001년1월13일

글쓴이-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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