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주.감상후기, 등업요청, 질문, 제안, 유머, 창작 노랫말, 공연초대와 일상적 이야기 등 주제와 형식,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회원문단은 자유게시판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자작나무(수필)

뭉게구름 7 1782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나는 강가를 돌아 자작나무 우거진 호젓한 오솔길을 걷는다. 살랑대는 바람은 잔잔한 강물과 파릇파릇한 자작나무 잎을 흔들어 깨운다. 한적한 자작나무 오솔길에 들어서면 나는 스스로 사색의 늪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눈처럼 하얀 껍질과 시원스럽게 뻗은 훤칠한 키가 무척이나 정겹다. 푸른 숲 속에 학이 날아와 긴 목을 뻗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 듯, 애타게 그리던 다정한 미인이 날씬한 각선미를 드러내며 마주 대하듯 정감과 그리움이 샘솟는다. 껍질이 여러 겹 얇게 벗겨지면 아름다운 몸매를 살포시 드러내는 듯 신비롭기만 하다.
 봄이 오면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하얀 껍질 뚫고서 새 잎을 내밀고 연초록의 잎 사이로 이삭 모양의 꽃에서 그윽한 향기를 드리운다.
 바이칼 호숫가의 자작나무숲이나 광활하게 펼쳐진 시베리아 설원, 수많은 호수로 끝없이 이어지는 핀란드의 대자연 속에 우거진 자작나무숲이 아니라도 좋다.
 무더운 여름, 초록의 숲 속에 들어서면 자작나무는 풀물에 배인 치마를 끌고 오는 다정한 연인처럼 다소곳이 미소 지으며 내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작나무 하얀 얇은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담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그대의 치마폭을 장식하고 싶다. 눈부신 그녀의 자태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나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발걸음. 한 잎의 그리움을 주워 올리는 풀벌레 소리, 이 고요함은 사랑의 이슬방울처럼 풀잎에 아롱진다.
 숲 속에 어두운 적막이 스며들면, 환한 달빛을 깨우며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붙여 함께 작은 음악회나 무도회라도 가졌으면 싶다. 그래서 하늘 바람이 출렁이는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었으면 한다.  중국의 시인 소식이 '그대를 보내는 숲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밝히는데, 타는 불꽃 향기 더욱 아름답다.'며, 이별의 슬픔을 나누면서 화촉을 밝혔다는 시를 읊조리지 않으리.
  자작나무 껍질은 좀처럼 좀도 슬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수천 년의 긴 세월 땅 속에 깊이 파묻혔던 자작나무 껍질은 생생하게 남아 숨쉰다. 심마니들이 깊은 산 속에서 귀한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보관한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눈보라가 치고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도 자작나무는 왜 얇은 하얀 옷을 입으며, 새하얀 껍질까지 벗어버리려 하는지. 차디찬 대지에 굳건한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서 있는 자작나무의 떳떳한 기상을 거울삼으려고 하는 것일까.
 순수성과 결백을 널리 세상에 알리고 악과 위선의 허울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이 순백의 자연에 흠뻑 빠져들면 스스로 터득할 일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작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른 봄이면, 물오른 자작나무에서 뽑아낸 풋풋한 향을 담은 수액이 좋은 약수라고 사람들은 자작나무 숲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그 곳에는 찝찔한 자작나무의 뿌연 눈물이 고여 있다.
 명상의 하얀 종이를 푸른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에 띄워본다.
                                                              <수필문학 7월호>

7 Comments
김경선 2006.06.21 09:36  
  자작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잊지 못해 찾아와 다시 걸으면...
몇 달 전 수산나님을 통해 알게 된
임긍수작곡 (옛님)을 부르며
언젠가 만나지겠지 했던 고향의
가곡사랑하는 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됨을
감격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별헤아림 2006.06.21 12:13  
  수필가님의
자작나무와 함께 한 사색의 시간이
청아한 바람소리 마냥 가슴에 잔잔히 밀려 옵니다.
열린세상 2006.06.21 18:30  
  김교수님!!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늦은 시간 잘 돌아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바다 2006.06.21 21:53  
  김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좋은 글로 만나뵙게 되어 기쁘군요.
앞으로도 멋진 글 자주 읽게 해주시라고 어리광 좀 부리면 안 될까요?
늘 건강하시구요.
자주 뵙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광주에서 바다 박원자 드림
정우동 2006.06.22 08:11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에 하이얀 옷으로 단장한 자작나무 숲을
루바쉬까를 걸친 파리한 인텔리겐챠 청년이 뜨로이까에
채찍질하면서 말없이 고개만 내젖고 있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러시아에 가면
우리민족이 거쳐왔을 곳으로 추정되는 바이칼호를 보고 싶고
또 하나는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러시아령 깔리닌그라뜨의 이름으로 보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
좀 당혹스럽습니다.
.
뭉게구름 2006.06.23 00:18  
  작년 유월, 동유럽 여행길에 동토와 설원의 나라, 러시아와 핀란드, 바이칼 호수의 상공을 날으면서 자작나무를 생각하고 순백의 멋과 참뜻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정치근님이 작시하시고 임긍수님이 작곡 하신 신작 가곡 <옛님>도 감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또한 마산 영남 우리가곡 부르기에 참석하고 돌아와 가슴 속에 흐르는 행복과 감사의 강물이 한 편의 수필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격려해 주신 김원장님,  열린세상님,  별헤아림님, 바다님, 정우동님 감사 감사합니다.
민영맘 2006.06.23 11:02  
  길을 가다 나무와 풀들을 보면 "이런 나무...이런 풀들도 있구나" 하고 관심어리게 보지못했던 것들도 뭉게구름님의 글들을 읽어보면 저 자신이 참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뭉게구름님의 따뜻하고 마음을 꽉~~채울수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젠 저도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하고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볼까합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