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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note> 갈대꽃 ...겨울 ...

별헤아림 2 958
시험 감독이 졸아도 되는 아이들
권선옥(별헤아림)

2003년 2월 14일이었다. 바로 옆에 신축된 도원고등학교의 입학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단평가 시험일에 감독을 나갔다. 아직 선생님들이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옆 학교의 3학년 담당 선생님들이 지원을 가게 된 것이다.

쉬지도 못 하고 내리 다섯 시간 계속해서 들어가니, 머리가 띵해지고 잠이 온다.
난 머리가 발달되지 않아서 <봉투 붙이기>, <시험 감독> 요런 단순노동이 적성에 딱 맞다고 큰소릴 쳤었는데... . 세상에 만만한 게 없다.

신설학교라 감독 간 선생님들께 수당도 주고, 학생들에겐 빵과 우유도 나누어 주었다.
4교시. 16반(특별반)엘 들어갔다. 고사장은 소회의실.
시험지를 들고 문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큰소리로
<안녕하세요.>한다.
짧은 순간 좀 놀랐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응~. 안녕-!>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수험번호만 제대로 마킹한 후, 정답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당연한 듯.
왜냐하면 그들은 늘 하던 대로 문제는 읽지 않는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 한다. 정답지에 무작위로 아무 번호나 찍는다.
아니면 한 번호로 통일한다. 5분이면 시험은 끝난다.
나머지 40분은 시간이 보초를 선다.
이 아이들은 부정행위 감시하는 곳에서는 벗어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나는 결석한 아이의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졸았다.
그러다 바깥을 내다보며 남은 영어시험지의 여백에 <갈대꽃>이 어쩌고 하며
끌쩍거려 보았다.

5교시에 감독을 한 젊은 아가씨 교사가 본부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불쌍해 죽겠다.>라고 한다.
교탁 바로 앞에서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시간 내내 시험지를 놓지 않던 남학생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죽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옆 학생이 하는 말,
<선생님 - ! 얜 원래 참 똑똑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이렇게 되었어요.>했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아픔이 어떠할까?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그래도 신체만은 자유롭다. 혼자서는 먹지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아이들도 많다. 아니 어른들도 계신다. 늙으신 어머니가 중년의 장애 자식을 두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맘 놓고 죽지도 못 한다고...... . 평생소원이 저 자식이 혼자서 밥 먹을 수 있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만 있다면 편안히 죽을 수 있겠는데 하시며 TV에서 한숨지으시던 모습이 스친다.

* 그렇게 해서 특수반의 입학예정자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함께 한 50분.
그 동안 영어시험지 여백에다 끌적거려본 내용을 수정해서 올린 것이다.*
2 Comments
장미숙 2006.10.20 13:05  
  항상 시작 노트에 준비하여 신중하게 꺼내놓는 시라서
좋은 메세지가 담겨있는 줄 압니다.
가을에 써지는 시.. 많이 창작하시길 빕니다~
별헤아림 2006.10.20 13:24  
  장미숙 시인님.
가끔 좋은 노래 들을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詩作 note'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관련된 일들을 메모하기도 합니다.
이 가을 좋은 시 많이 낳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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