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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서서 ( 오서산)

이종균 3 1335
창세기에 서서 
                              (오서산)

  설악산을 비롯한 강원도 고산지역에 올 들어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이미 들었지만 철 이른 눈이라 겨울다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올 마지막달의 첫 주말인 2일, 북서쪽에서 다가오는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중부 서해안 지방에 영하 10도의 한파와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는 눈 속에서 겨울을 느끼는 내 맘을 애드벌룬처럼 붕 들뜨게 한다.
  나는 황급히 등산중앙연합회의 홈패지를 찾았다.
  충남 홍성군과 보령시의 경계에 있는 오서산은 해발 790미터로 황해 연안에서 가장 높은 산일뿐 아니라 해발 7~8백 미터의 기점에서부터 오르는 강원도 고산지대의 1천4~5백 미터 급의 산에 비해 실제 기어오르는 기복량은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는 것과 가끔은 그리워지는 바다를 볼 수 있으리라는 속셈에서 신청을 했다.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한 대형 관광버스에 오른 회원은 불과 열여섯 명, 일기예보 때문에 예약했던 회원들이 불참한 모양이다.
  물론 영하의 눈 덮인 겨울 산을 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극복하지 않고서야 어찌 겨울 산의 아름다움과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으랴.
  버스가 홍성군 광천읍 어귀에 드니 초로의 두발처럼 흰 눈을  머리에 인 오서산의 늠름한 모습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오서산(烏棲山), 신증동국여지승람 홍주목(洪州牧)편에 의하면 본주 남쪽 18리에 있는 오서산(烏栖山)은 일명 오성산(烏聖山)이라고도 하며, 보령 결성 두 고을 산천 조에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결성(結城)은 현재 광천읍과 결성 서부 은하면 일대에 있었던 옛날 홍주목 관하의 현이었다.
  이 오서산의 栖자가 언제 棲자로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둘 다 ‘깃드린다’는 뜻이니 그 의미에는 차이가 없으나, 오성산이라 하면 어딘지 까마귀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데도 관할시군이 그렇게 소개하고 있고 또  달리 근거를 찾을 수 없으니 어찌하랴.
  어쨌든 이 산은 현재도 보령시와 홍성군이 각각 자기고을 팔경의 하나로 꼽고 있으니 그 정경이 빼어난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10시 정각, 우리는 이 산의 북쪽인 홍성의 상담에 도착했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타고 오르니 비좁은 협곡에 안기듯 들어앉은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산길로 접어든다.
  빗각 6~70도쯤 되어 보이는 가파른 오름길, 땅속에서 솟아오른 습기가 방울방울 얼어붙은 곳에 첫눈이 내렸으니 미끄럽기 그지없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등 뒤에 오싹오싹 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기어올라 610미터의 삼거리 능선에 이르니 헐벗은 잡목들의 우듬지에 서린 눈꽃이 처음 본 듯 신기하다.
  서쪽으로 던목고개 너머 아차산(424m)을 뒤로 하고 동쪽으로 향하니 바위덩이를 쌓아 올린 듯 한 전망바위(745m)가 꿈의 궁성처럼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2킬로에 걸친 기복이 심하지 않는 밋밋한 능선위에 이미 꽃잎을 날린 억새밭이 펼쳐진다.
  전망바위란 두말할 것 없이 사위를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 아니랴.
  맑은 날씨엔 황해바다는 물론이요 충남도 일원과 북으로 경기, 남으로 전북의 일부가 바라다 보인다는데, 비단 이 바위뿐 아니라 능선에 펼쳐진 755봉, 785봉, 정수리, 그리고 550봉 모두가 다 그렇다니 차라리 전망능선이라 부르면 어떨까.
  특히 억새밭 위로 너머다 보이는 푸른 바다, 바다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수많은 섬들, 그리고 가녀린 억새 허리춤사이로 스며드는 낙조의 붉은 햇살이 그리도 곱다는데 오늘은 하늘이 녹아내려 바다를 채우고 땅을 뒤덮은 듯 사방이 뽀얀 안개에 덮여있다.
  나는 지금 이 전망 바위에 서있다.
  거대한 구름떼가 높바람에 밀려와 산자락을 덮으면 지척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쏟아지는 눈발사이에 깔리고, 다시 구름이 바람에 날리면 하늘이 열리며 극광처럼 밝은 빛이 줄을 긋는다.
  나는 지금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겨났다던 천지창조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창세기에 서서 어둠이 덮여있는 바다를 바라본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텔레파시인 듯 내 가슴에 메아리친다.
  이 능선의 중간지점에 세워진 오서정(烏棲亭)엔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나는 그 옆에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정수리로 향했다.
  정수리라고 해야 소녀의 가슴처럼 살며시 부풀어 오른 능선 길에 그저 초라한 정상석 하나가 서있을 뿐이지만 나는 여기 잠시 머물러 멀리 구름 덮인 서쪽을 바라본다.
  지도상의 직선거리 약4킬로 지점, 아차산의 지맥에 솟은 275봉 기슭에  김좌진(金佐鎭)장군의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장군은 고종 26년(1889년)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친을 여읜 그는 15세 때 50여호의 노복문서를 불태우고 전답을 무상으로 배분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라 당부하였으니 그야말로 한국적 노예해방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한국무관학교를 이수하였으며, 박상진의 광복단사건으로 3년간 복역한 후 간도로 건너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이 된다.
  1920년에는 나중소(羅中昭), 이범석(李範奭)장군과 함께 우리군사 2천으로 왜군 2만 명을 무찔렀으니 그게 바로 청사에 빛나는 청산리 대첩이다.
  1930년 장군은 안타깝게도 동족의 자객에 의해 암살되셨으니 이 아픔 어디에 비기랴.
  청산리(靑山裏)의 별 위대한 장군이 지금 저 보령 땅 재정리 산기슭에 누워계신다.
  그곳에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보령시 성연리 주차장에 내려오기까지 불과 서너 시간 안팎 걸리는 짧은 코스인 것을, 장군의 묘역에서 출발하여 275봉을 거쳐 아차산을 넘어 이 길로 내려온다면 네댓 시간쯤 걸리는 참으로 의미 있고 좋은 산행이 되리라 믿어 이를 제안한다.
3 Comments
김형준 2006.12.09 22:03  
  '빛이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천지창조 이전의 지구와 우주는 과연 어떠한 상태이었을까요.
혼돈(chaos) 그 자체였을까요.

이선생님의 산행수필들을 읽으며, 삶을 배우고 느끼고,
제가 현재 가 볼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산들에 대해 동경하며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오서산에 대한 유래와 억새밭에 대한 이야기와,
그토록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많은 섬들을 덮고 있는 안개의 숲,
김좌진장군에 대한 숙연하면서도 감명 깊은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배움의 재료들입니다.


'님따라 산따라 미소 띠고 노딜다간
산능선 타고 내리다 잠시 머무는 노래의 여운
살폿이 그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졸다가
부드러이 깨우는 그대 손의 느낌에 입을 맞춘다.
꿈이런가 싶으면 다시 커다랗게 보이는 그대 모습에
억새풀이 쿵쿵 절구 찧듯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닌다.

안개의 숲 아래에 있을 그 푸르름에 맘 다 맡기고
다시 그대의 내음새가 나는 향기로운 숲으로 들어간다'
김형준 2006.12.11 23:30  
  세상을 만드시는 시간, 창세,
아, 상상만 해도 벅차다.
신의 기운이 충만하여 모양과, 색깔과, 빈 공간 모두가 만들어졌다.

산이 올라가고, 바다가 내려 가고, 평야가 널리 펼쳐지던 시간,
아마도 그 시간은 한 순간이 아니고 몇 만년, 몇 십 만년이 걸렸을 것이다.

이선생님께서 서 계셨던 산들의 공간들마다 선생님의 흔적이 남겨 졌다.
나중에 오르는 이나, 이미 올랐던 이들이 그것을 알 든 모르든 상관없다.
아니다, 이선생님께서 그 산들에 대한 글들을 쓰시고, 또한 책으로
남기실 것이다.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많은 산을 더 오르시고
늘 좋은 글들 많이 쓰시기를 기도해 본다.
바 위 2006.12.13 14:59  
  선생님 ~

권운 입니다.
산에 올라보면은
김형준 선생님 말씀따라가다 보면
동감합니다...
선인들 지헤중에 면면한 맥 이어지듯
후학들이 구름처럼 모임 천리아닐런지요 !


      산    / 선자령에서

귀 때기 떼어갈듯 할퀴는 바람 이놈

뛰어서  어서 가서 먼 저산 오라 하렴

맞대고 도모할 사랑 논하리라 冬至 前


손 끝이 가르치는 동해야 내다내야

새 해에 일출맞아 가슴한번 펴보자

흉중에 일렁임 맞춰 평화계획 논하자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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