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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아저씨

별헤아림 5 1628
        아래층 아저씨 
                                                            권선옥(sun)

  나의 심리적 시간의 속도는 물리적 시간의 속도를 앞지른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곳은 414호 석주엄마는 315호. 어느날 고려대 출신으로 효성카톨릭대학교에 재직하시던 석주아빠가 작가의 길을 간다며 명예퇴직을 하셨다고 무슨 얘기끝에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그 뒤 노란색 표지의 <알몸 박정희>란 꽤 두터운 책을 내밀었다.

  난 그 책을 다 읽진 않았다. 사전도 아닌데 발췌독을 하면서 읽은 내용 중에 오직 기억나는 것이라곤 박정희 대통령은 태아 적부터 도전에 대한 투쟁과 승리에 노출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어머니께서는 가난한 농가에 여러 명의 자식들, 게다가 정상인에 미달된 형이 있는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수태는 부담이었다. 그래서 없애기 위해 언덕에서 뒹굴고, 장독대에서 사발로 간장을 퍼마시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당당하게 첫울음소리를 내며 탄생한 박정희 대통령.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전교조 신문인가에서 <알몸 박정희>란 책에 관한 글을 보고는 이 책이 엄청 알려져서 석주엄마가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또 일 년이 지난 어느날인가 최상천 교수는 <알몸 대한민국 빈손 김대중>이란 책을 받았다. 내 손에 들려진 책의 제목을 보고 어떤 사람은 '김대중이 왜 빈 손이냐'며 제목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난 정치적 판단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벼리'란 아들의 이름을 따라 갔다가 '벼리'를 닉 네임으로 사용하시는 국어교실 김기홍선생님의 홈에서 다음 글을 만난다. 아파트 마당에서 차를 주차시키다 수시로 만나는 최상천 교수의 인사소리는 굵은 바리톤의 듣기 좋은 음성이고, 시선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아무렇게나 흐트러지는 곱슬머리에서 나키노현상을 느낀다. 돌아서서 소리없이 한 번 웃게 만드는 아래층 아저씨 최상천 교수.
                                                                                 
                                                                                          <2004. 8. 12. 목요일>

 
        알몸 박정희 (인물과 사상)  ... <옮긴글>

 
  그는 서문에 '혼자 알고 있기에는 가슴 떨리는 이야기', '천기를 누설하는 마음'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강준만 교수마저 극찬을 했던 이 책은 그다지 대중을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들이어서 일까? 그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잘못되었었는지를, 또 그들이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악랄하고, 교묘하게 통제했는지를 보여준다.
 최상천 교수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박정희, 그는 근대화 혁명가인가, 1급 친일파인가, 독재자인가? 그러나 이 세 가지 얼굴은 박정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보아야 박정희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수 있다.
 18년 권력자의 알몸 추적! 겁도 났지만 스릴과 재미도 컸다. 박정희의 알몸이 드러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 통념과 정설들은 허울을 벗어던졌다. 나는 박정희의 알몸을 보았다. 문화의 씨줄도 윤리의 날줄도 걸치지 않은 천연의 알몸, 거기에 박정희의 인생과 권력의 비밀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일본제국도 이루지 못한 진짜 천황주의까지 빛나고 있었다"
 이 책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는 박정희가 만든 '성웅기획'의 일환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박정희가 깊이 감동받은 영웅전은 '나폴레옹 전기'였다. 박정희는 정복자 나폴레옹 의 전기를 평생을 끼고 다니면서 정복자로서의 꿈을 다져나갔다. 또 박정희가 감동받았다는 다른 하나의 책은 이광수의 '이순신'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만났던 이순신은 진짜 이순신이나 이순신의 영령이 아니며, 보통 조선사람들이 사랑하는 '호국영웅 이순신'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인간 이순신이 아니라 이광수가 만들어낸 '이순신', 즉 '성웅 이순신'을 만났던 것이다.
 '이순신'은 이광수가 1931년 5월 30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던 그 민감한 시기에 왜적을 물리친 '호국영웅 이순신'에 관한 작품을 썼으니 이광수를 애국자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역설적으로 그 시절은 우리의 군사정권 때보다 훨씬 더 언론의 자유가 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천재작가 이광수의 고도의 속임수였다. 이광수는 1922년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에서 3.1 운동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종이 지각없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말했으며, '허위, 비사회적 이기심, 나태, 무신, 사회성의 결핍' 따위의 타락한 민족성 때문에 조선은 독립능력이 없다고 못 박은 친일 지식인이었다. 그는 틈틈이 더러운 조선민족을 버리고 사무라이정신을 가진 일본민족으로 통째로 바꿔야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이순신'은 보통 소설이 아니었다. 천재적인 '일제인' 이광수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엮어낸 '성웅 기획' 작품이다. '이순신'이 민족의식을 일깨운 작품이라고 착각하면 그의 '성웅 기획'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이순신'은 민족자학의식을 정신병적 경지까지 끌어올린 기획 작품이며, 제작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이 최상천 교수의 설명이다.
 최교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자문을 해볼 것을 권한다. 이순신하면 일본의 침략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더러운 당파싸움이 떠오르는가? 만약 더러운 당파싸움이 떠오른다면 당신도 '성웅기획'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의 대결구도를 조선과 일본의 국가대결이 아니라 당파싸움에 초연한 '성웅 이순신'과 당파싸움에 미친 조센징의 대결구도로 만들어버렸다. 이광수는 이야기를, 미친 조센징들의 '성웅 죽이기'로 끌고 갔다. 최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원균이 사악한 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어느 사료에도 나와 있지 않다. 비록 한때 패장이 되기는 했으나 그 역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인물이었으며, 그 공로로 전쟁이 끝난 후 3등 공신으로 책봉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인들 때문에 난 전쟁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에 닳고 닳은 위험한 사무라이들을 국외로 내몰기 위해 저지른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이광수는 마치 조선인들의 나쁜 국민성을 전쟁보다 더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사람이 당파본성을 가졌고 당파성이 악의 근원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초당파적 영웅을 만들어낸 것이 소설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성웅 이순신'은 더러운 조센징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이었으며, 이순신이 빛날수록 조센징은 추악해진다. 조센징은 위대한 성웅을 모한하고 괴롭히고 죽이고 싶어서 환장한 악마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순신'을 읽으면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간 곳 없고, 대신 조센징에 대한 환멸을 가지게 된다. 이게 이광수가 퍼뜨린 '이순신 병'이다. 이 병은 심각한 민족자학증으로 이 병에 걸리면 자기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견딜 수 없게 된다. 소설 이순신이 노린 것은 이렇듯 조선 사람의 '민족적 자기 부정'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도 한번쯤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들어, 하나일 땐 힘을 발휘해도 여럿이 모이면 안돼'라고 스스로 자학하지 않는지. 이광수의 이순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성웅 혼자 '윤리적 인간'이고, '조선의 수호신'의 나라는 사회 안정이나 국가안보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성웅이 병이 들거나 장기간 출장을 가거나 죽는 날이면 그 날이 제삿날이다. 사리사욕에 들끓는 '나머지'들의 아귀다툼으로 나라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당리당략에 미친 '나머지' 조선인들이 국가를 멸망으로 이르게 되어 있다. '조선의 수호신'이 없는 나라는 망하는 길밖에 없다"
 이광수는 '이순신'의 마지막을 성웅의 '위대한 죽음'으로 장식하면서 이제 '조선의 수호신'이 운명했으니, 조선 사람은 유일한 희망을 잃어 버렸다고 역설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정복 야욕에 맞서 호국투쟁이 성공함으로써 조국의 주권과 강토를 지켰을 뿐 아니라 살생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낸 역사적 승리였음에도 이광수는 조선 500년에서 단 한 사람뿐인 '큰 사람'이 돌아가셨다며 미친 듯이 통곡했다.
 최교수는 소설 '이순신'이 "조선은 망해도 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이광수는 그 증거로 당파싸움을 제시했지만, 최교수는 오히려 그 시절에 말로 싸운 수준 높은 민족이 어디 있었냐고 반문한다.
 최상천 교수는 박정희가 이순신을 성웅으로 받들었던 것은 사기라고 단정한다. 박정희가 정말로 이순신에게 감동했다면, 독립운동에 나섰어야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최우수 황국신민이었고, 일본교사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일본 사관학교를 두 개나 졸업했고,'정복의 꿈'을 위해 독립군 사냥에 나섰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을 추모했을까? 최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가 소설 '이순신'을 보고 진짜 감동을 받은 이유는 '민족적 자기부정' 즉 민족 자학증이었다는 것이다. 조센징이 꼴도 보기 싫던 차에 이광수가 확실히 조센징은 패야 말을 듣는 야만종족이며, 미래가 없는 민족이며,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조선은 망해도 싸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민족 반역자들이 진짜로 이순신을 좋아했던 이유, 이순신만이 가지고 있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변치 않는 애국심이었다는 것이다. 왕과 대신들이 도망을 다니든 말든, 원균이 모함을 하든 말든, 백성이 좌충우돌하든 말든, 이순신은 오직 나라사랑의 길로 매진하는 애국자의 표상이었다. 어떤 시련도 그의 나라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그것은 대체로 진실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광수와 박정희에 의해 성웅으로 둔갑된다. 성인과 영웅이 과연 합쳐질 수 있는 말일까? 5천년 역사상 단 하나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다. 그들이 만들어낸 성웅은 머리 속에 '나'는 없고, '국가'만 있는 인간상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멸사봉공 정신이다. 멸사봉공정신은 일제 황국신문사상 중에서도 신민사상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사무라이정신의 핵심인 '끝없는 충성'인 것이다.
 최상천 교수는 이렇게 외친다. "성웅은 사무라이다. 이광수의 성인은 보통 사무라이고, 박정희가 만든 성웅은 '슈퍼 사무라이'다" 박정희가 추진했던 이순신 작품집 번역 발간, '난중일기' 국보 지정, 국가 제사, 동상건립, 영화 제작 및 단체 관람 등의 일련의 성웅사업은 박정희가 직접 기획, 제작, 감독한 국민 의식개조사업이라는 것이다. "성웅사업의 본질은 국가신교의 창설이다. 성웅은 유일신이고 현충사는 국가신사이고 박정희는 교주가 된다" 실로 소름끼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최교수는 역설적으로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독립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매에 장사가 없다보니 때리면 말을 듣긴 하지만, 자기의 생각과 주체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한국 사람의 독립정신을 이 말이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상천 교수는 세종로의 충무공 동상을 볼때마다 이순신 장군의 호통이 들려오는 듯하다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길에다 나를 세웠단 말인가? 내가 왼손잡이야?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는가? 입으로는 호국영웅이라고 떠들면서 왜 왜놈 칼을 쥐어놓았는가? 너희는 조선 칼은 직선이고 일본 칼은 휘었다는 것도 모르는가? 내가 사무라이란 말인가? 천하의 고얀 놈들!"
 최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우린 왜 그렇게 단순한 진리를 한번도 부정해 보지 못했을까? 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문화민족이라고 떠들면서도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도로에 충무공 동상이 서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까?
 최교수는 충무공 동상은 박정희 정권을 너무나 잘 상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종로에 세운 장군 동상은 문민국가를 정복한 군사정권을 상징하며, 한국인의 창조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훈민정음 대신 일본 칼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이 일본제국주의의 변종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웅기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형 문화국가를 전복하고 일본형 군사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박정희는 호국영웅 이순신을 '슈퍼 사무라이'로 만들어서 문화국가의 상징 세종대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껍데기만 한국인이며, 정신은 일본인인 박정희에게 짓밟혀왔다는 것이 아닌가? 난 이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란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너무나 분통터지고 억울한 일이 아니던가? 한국의 언론인, 지식인들에게 호소한다. 왜 이 책을 외면하는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 책 내용에 대해서 반박을 해야 할 것이고, 만약 사실이라면 박정희의 정체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전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였던 최상천씨가 쓴 '알몸 박정희'(도서출판 사람나라)는 내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그의 말대로 박정희 시대를 발가벗긴 박정희의 내면, 박정희의 통치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상천 교수는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박정희, 그는 근대화 혁명가인가, 1급 친일파인가, 독재자인가? 그러나 이 세 가지 얼굴은 박정희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의 진짜 정체를 보아야 박정희와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가 밝힌 천기누설에 대해 매스컴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몇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이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지난번에 썼던 사무라이로 만들어진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은 요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듯 하다. 그것은 아마 '알몸 박정희'라는 책을 읽어보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모두들 아는 이야기라고 한다. 모두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왜 박정희 기념관의 건립은 추진되는 것일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범학교를 나온 박정희는 문경보통학교의 교사생활을 3년 동안 했다고 한다. 당시 교사는 모든 것이 보장된 최고 직업이었다고 한다. 사범학교 출신이니 수재로 인정받고, 조선총독부에서 보장하니 실직 위험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주민들이 '우리 선생님'이라며 더없이 존경하는 그런 직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누나를 만날 때마다 '죽어도 선생질 못해먹겠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보람과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교사생활이 죽기보다 싫었던 이유에 대해 최상천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대장이 되고 싶은 박정희는 처음부터 교사자리가 마음에 없었다. 그러나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교사 역할이었다. 식민지 뒷수습이나 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 대장을 꿈꾸는 정복주의자가 꿈도 희망도 없는 조센징의 치다꺼리나 하고 있으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그런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고 한다.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를 집어치우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박정희는 보통사람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서운 집념으로 식민지 조선 사람이 꿈도 꾸지 못할 굳센 충성심으로 사관학교 입학을 위해 신출귀몰한 방법을 실행했다고 한다.
 그것은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 혈서는 만주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초특급 황국신민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더러운 조센징 중에 이런 진주가 숨어 있었다니, 교관과 생도들은 한동안 충격과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충성혈서 한 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일제시대 35년간 자진해서 '충성혈서'를 쓴 조선 사람은 박정희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다른 조선 사람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로, 중국으로 조선을 떠날 때 박정희는 혈서까지 쓰고 일본군 사관학교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래도 박정희를 한국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하고.
 1942년 3월 23일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서 만계(식민지 출신으로 편성한 계열) 졸업생 240명 가운데 1등으로 졸업한다. 그는 이름도 이미 다카키 마사오로 바꿨다. 그는 명실상부한 니뽄징이 된 것이다. 그것도 보통 니뽄징이 아니라 최우수 제국군인이 된 것이다.
 박정희는 일본육사로 진학한다. 일본육사는 일본제국 최고의 장교 양성기관이다. 이런 기관에 핏줄이 다른 식민지 출신을 70명씩이나 받아들였다. 이들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 육사는 그들이 독립투사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문제의 70명은 일본제국이 무기와 독립운동자금을 대줘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을만큼 개조된 '일제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는 박정희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
담임의 기억 속에 남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교장의 기억뿐만 아니라 공개적 칭찬까지 받을 정도로 박정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더군다나 정통 '일제인' 양성을 자랑하는 일본 육사 아니던가? 박정희는 이것도 모자라 창씨개명한 이름을 버리고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개칭한다.
 1944년 4월 20일 일본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그해 7월 열하성에 주둔하고 있는 만주군 제 8단에 배속되었다. 이때의 박정희에 관한 증언이 있다고 한다.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시오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은 다카키 마사오와 함께 지냈던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 이다.
 "다카키 마사오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박정희의 '조센징 토벌' 의지는 강력했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의 조선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과 공격욕구에 대해서는 '알몸 박정희'를 전체적으로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조센징에 대한 무의식적인 증오심만큼은 확실했던 듯하다.

<< 이 책의 내용을 소개했다고 해서 저의 견해가 이 책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 반하는 입장입니다. 나와 대립적 의견을 가진 인물이 쓴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지식을 알 것은 알아야만 나의 판단을 확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
5 Comments
달마 2004.08.14 08:02  
  선생님 고맙습니다... !

흔치 않은 글에 대한 호감이기 보다 ... 우리가 접해야하는 정론이 묻히고 건전한 정신묺화
창달하는 노력에 당연히 주제와 토론이 사후평가가 되어지는 풍토가 더욱 진하게 그리워 집니다. 얼마가 할애 받을수 없는 지식지 지면과 만드는 사람 편식증 살핌증이 답답하지요...
분야는 달라도 예술이 역사 인물이 도구가 되는 실예는 많으니 까요...
위정자 화되는 예술의 속성도 있지요 ... 자본가 입지를 지켜가는 예술 ... 시도 예외는 아닌데
별 선생님 다음글 또 기대 합니다...

건강 하시구요 !!

오늘은.....
하늘이 날 속이고 싶은 날 인가보다 -

가려는 더위 붙잡는 부질 없음에
산천은 습 하여서 뜨겁고 숨찬 눈길 무거운데
글 다운글 소개해 주시는 예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   
             
       


별헤아림 2004.08.15 05:35  
  감사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시루하지 않았는지요?
이제 새벽 무렵에는 제법 서늘해지는 것이 조금만 더 참으면 될 듯합니다.
가루 2004.08.16 00:08  
  영웅을 죽이고 영웅이 되려는 인간들도 많이 있지요!
한때 당신의 몸을 다 바쳐, 영분인의 목숨까지 잃으며 조국재건과 안보에 목숨을
바치신 분을 그런식으로 비하하다니 정말 슬픈일입니다.
일제치하에서 힘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꼭 맞서서 죽는 것만이 애국인가요.
적들속에서 적보다 위에서려, 힘을키우려, 고통을 감내한 그분속의, 그 안의 입술을 깨무는
고통을 헤아려 줄수는 없는건가요.
감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별 헤아림님. 여기는 아름다운 시와 글들을 올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곳입니다.
앞으로 그런글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즐거워지기 위해 오는 곳입니다!
우지니 2004.08.16 01:11  
  더위를 벗하며 올려주신 장문 잘 보았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장된 것인지 저희같은 소시민은 햇갈린 가운데 다시 역사를 되돌아 보게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영욕으로 얼룩진 과거사도 다시 새롭게 정리하여 우리가 진실된 기록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봐야겠네요.
수고 많으셨읍니다.
별헤아림 2004.08.16 12:54  
  가루님, 우지니님 반갑습니다. 저도 가루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단지 아래층 아저씨께서 쓴 글이고, 저도 거부감을 느끼는 내용이지만 나와 다른 의견이 다르다고 거부부터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알고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온실의 꽃은 바깥바람에 약합니다. 진정 꽃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바깥바람도 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올린 글이니 이해를 바랍니다.
역사는 이해당사자가 다 돌아가신 뒤 훗날에야 바로 평가될 수가 있다고 어떤 분이 얘길 했습니다.
홍난파, 미당, 이광수 등등의 예술가와 작가들이<친일파 운운>의 글이 오르면 저는 주권이 빼앗긴 나라에서 <생존>과 <예술적 애국심>, 양자의 갈림길에서 <생존>을 버리고 <예술적 애국심>을 갈등없이 선택할 분이 몇 있을까 하는 반문을 하기도 합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