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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엘레지

이종균 2 1523
9-8. 영웅의 엘레지(아이거)

  처녀, 미혼, 성모마리아란 뜻을 가진 융프라우(Jungfrau;4.158m)는 그 이름에서부터 고결한 느낌을 준다.
  높이와 크기로 말하자면 어찌 8천 미터 급의 히말라야(Himalayas)를 당하랴만, 아이거(Eiger;3.970m), 묀히(Monch;4.019m)와 함께 알프스의 3대 연봉으로 이름난 산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알프스등반사상 가장 많은 조난사를 기록함으로서 클라이머들의 공동묘지로 일컬어지는 아이거는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1938년 7월 21일 독일의 유명한 등산가 헤크마이어(Anderl Heckmaire)와 뵈르그(Ludwig Vrg)팀과 오스트리아의 전설적인 등산가 하러(Heinrich Harrer)와 카스파레크(Friz Kasparek)팀이 동시에 북벽에 붙어 3박4일의 죽음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초등정의 대과업을 이루어낸다.
  아이거 북벽을 정복한 뒤 헤크마이어는 1949년에 아이거 북벽 등정을 내용으로 한 “알프스의 3대 북벽(Les Trois Dernier Problemes Des Alpes)”이란 책을 발간하고, 또 하러는 그보다 9년 뒤인 1958년에 “하얀 거미(Die Weisse Spinne)”란 책을 발간한다.
  물론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었지만 “하얀 거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알프스 3대 북벽”은 상대적으로 그늘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했다.
  “하얀 거미”란 아이거의 북쪽 등반고도 1.800미터의 수직암벽에 만년빙이  거미발처럼 박혀 있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아이거북벽 등반사’란 부제가 달려 있었지만 이 책은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
  젊은 시절 나는 한동안 이 책에 매료되어 아이거의 꿈에서 헤어나지 못했는데 지금에야 그곳을 가고 있다.
  젊은 날의 꿈과 낭만, 야망과 용기를 모두 바삐 살아온 시간 속에 묻고 고희를 넘어 주름살 잡힌 아내와 함께 등산열차에 몸을 기댔다.
  모두가 다 가이드에 매달린 단체 관광객들인데 늙은 내외 둘이서 두리번거리는 꼴이 안타까워서인지 어떻게 두 분이서 이렇게 다니는가 묻는다.
  인터라켄 동역(Interlaken Ost)을 출발한 기차도 가파른 언덕에서 힘이 부치는지 라우터부르넨(Lauterbrunnen)역에서 톱니바퀴가 달린 기계차로 바꿔 타래드니, 크라이네 샤이데크(Kleine Sheidegg;2.061m)역에서 다시 한 번  갈아타고 2,320미터의 아이거그렛셔(Stn. Eigergletscher)역에서 부터는    아예 바위 터널을 뚫고 달린다.
  여기서부터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라는 융프라우요흐(Jungfrau joch;3.454m)까지의 터널 구간 중 아이거반트(Eigerwand;2.866m)와 아이스메르(Eismeer;3.160m)역에서 각각 5분씩 정차하는데 바위동굴 유리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오늘따라 창밖은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잠깐 구름이 비키는 사이 나는 아이거 북벽을 보았다. 순간 유리창을 부수고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구름처럼 내 가슴을 스친다. 40여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인들 내 이맘을 이해할 수 있을까.
  드디어 융프라우요흐 역에 내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잠시 고소 증으로 어지럽다드니 그래도 예까지 왔으니 밖으로 한번 나가보잔다. 그래서 오른 곳이 스핑크스전망대 옥상, 매서운 바람이 추위를 몰아친다. 융프라우를 향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지만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알프스! 이탈리아의 지중해에서 발달하여 프랑스 스위스 독일을 거쳐 멀리 동북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뻗은 1.200킬로에 달하는 줄기찬 산맥, 맑은 날씨라면 남서방향으로 봐이스 혼(Weiss Horn;4.505m)이 보이련만 캄캄한 구름 속에서 그 영상만을 떠올려볼 뿐이다.
  여기 얽힌 이야기가 있다.
  옛날 알프스의 방하 들목에서 80대 백발의 노파가 20대 젊은 청년의 시체를 안고 슬피 울고 있었다. 지나가는 산 나그네가 아들이냐고 묻자 노파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러면 손자냐고 물으니 노파는 더 크게 머리를 가로 저었다.
  20대에 사랑하는 연인을 산으로 올려 보낸 그녀는 이곳에서 60년을 기다리다 백발의 노파가 되었고 빙하 속에 빠진 청년은 20대 그대로였던 것이다.-
  등반 사에 의하면 이른바 단독등반(solo climbing)의 효시를 이룬 19살의 게오르그 뷘클러(Georg Winkler)가 1888년 봐이스 혼을 오르다가 빙하속으로 떨어졌는데 68년 뒤인 1956년에 빙하 하류에서 발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뭉클한 감동을 주는 이 이야기는 허구로 꾸민 것은 아닌 모양이다. 비록 눈구름에 가렸어도 그 봉우리는 지금 분명 내 눈앞에 있다.
  묀히와 융프라우 안부에서 일어난 바다같이 넓은 융프라우빙하가 남서로흘러 유럽에서 제일 길다는 알레쉬(Aletsch)빙하와 서로만나 봐이스 혼 기슭으로 흐르지 않으랴?
  빙하(氷河;glacier)라 하면 일반적으로 얼음덩이가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성엣장(流氷)을 연상하가 쉽다. 그러나 빙하는 일 년 내내 내린 눈이 추위에 얼어붙어 어름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빙하의 속도는 쌓인 얼음의 두께와 계곡의 넓이 그리고 경사도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 구배가 굼뜨고 어름의 퇴적 량이 적은 곳에서는 하루 1센티 정도 흐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몽블랑의 쟝 빙하에 떨어뜨린 줄사다리(ladder)를 44년 뒤에 4킬로 하류에서 발견했다니 이 빙하의 유속은 시속 1센티인 셈이다.
  융프라우요흐 역,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혼잡을 이룬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의외로 가장 많은데 우선 놀라고 그 다음이 일본 그 외 백인들과 흑인들도 더러 보인다.
  현지 교민의 귀띔에 의하면 어디고 일본사람들이 한번 쓸고 가면 그다음은 의례 한국 사람이 모여온다는 얘기에 적이 놀랐다.
  중국의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대역사(大役事) 바위터널을 1896년부터 1912년까지 16년이 걸려 뚫고 해발 3,454미터까지 기차를 끌어올렸던 쿠에르첼러(Adolf Guyer-Zeller)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아니었던들 오늘날 세계의 관광객을 이렇게 불러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높은 산, 눈 어름이 녹아내리는 찬물, 그것이 자원의 전부인 가난에 허덕이던 나라,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주변 강대국에 용병으로 팔려가 동족끼리 피를 흘려야 했던 저주받은 스위스, 부녀자들은 남편들의 피와 바꾼 돈으로 보부상을 하여 민족자본을 마련하고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해 수력발전기(터빈)를 만드는 예지로운 국민, 쓸모없는 저주의 산을 개발하여 도깨비 방망이를 만들었으니 하느님의 축복을 스스로 개발한 것이다.
  산이 많은 만큼 터널도 많다. 필요하다면 아무데나 거침없이 뚫는다. 거긴 풍수지리도 도롱뇽도 없는 모양이다.
  내려오는 등산열차, 오를 때의 긴장된 모습들이 아니다. 구경을 하였으니 소감들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유난히 목소리가 우렁찬 우리나라 사람들 구름이 끼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불평이 높다.
  그러나 그리운 얼굴은 눈을 감아야 오히려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무서운 악천후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산화한 젊은 투혼을...
  그래서 나는 잠시 머리를 떨구었다.

아이거 북벽     
                           
수많은 생령을 삼킨 아이거반트
표고 차 1800미터의 아찔한 낭 비알에
된바람 흐느낀다.

아무도 오를 수 없는 금지된 성역
1936년 젊은 자일파티 두 쌍이
돌아오지 않은 친구 뒤를 따라 또 올라갔다
공포의 붉은 벽을 지나, 두 번째 설 벽 넘어
하얀 거미*를 앞에 둔 서쪽갱도 200미터지점
사흘이나 세상과 단절 된 시찾은 그들
하켄**도 카라비너***도 떨어졌다 살려 달라!
바람에 날리는 힘없는 울부짖음

서둘러 달려간 구조대
가공할 눈사태와 광란의 바람, 칠흑 같은 어둠에
돌아서는 간절한 기원 ‘하루만 더 버티어다오!’
이튿날, 그들이 40미터지점까지 찾아갔을 때
궤젓한 클라이머 토니 크루츠는
악몽 같은 밤을 지새고 기적같이 살아있었다

‘친구들은 어디 있는가?’
‘모두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가?’
‘하나는 떨어지고, 하나는 얼어 죽고,
 또 하나는 내 발아래 자일에 엉켜 죽었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자일을 되도록 길게 끊어
 네 자일에 매듭을 지어라!’

구조대는 식량과 장비를 내려 보내고
그는 사력을 다해 3미터 거리까지 기어올랐다
기구한 운명의 순간!
아뿔싸, 고리를 빠져나지 못하는 자일매듭
얼어붙은 손, 부르튼 입으로 사투를 벌리던 그는
끝내 앞으로 푹 꺼꾸러져 자일 끝에 매달렸다

들끓던 젊은 꿈을
차가운 눈 속에 묻은 처절한 죽음, 그러나 그는
실패자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영웅이었다
그가 남긴 발자국을 가슴에 새긴
많은 젊은이들에 의해
마의 북벽 하얀 거미는 정복되었으니......

저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는
숙명에 간 영웅의 엘레지여라.


*  하얀 거미: 절벽상부의 만년빙이 거미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 하켄    : 바위에 박는 못
***카라비너: 자일을 통과시키는 여닫이 고리
2 Comments
장미숙 2006.11.02 14:10  
  저도 여행을 하는 느낌으로 감상하게 됩니다.
'알프스의 3대 북벽'과 '하얀 거미'...
등반 내용이 담긴 두 책의 말씀에서 책의 제목도 독자들과의 통로를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느끼게 되요.
세계의 어느 여행지마다 한국의 여행자들이 많다하니
우리는 호기심 많고 꿈 많은 민족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자 연 2006.11.02 17:59  
  白거미 사랑이야 高山만 하는것을

가만히 알려주신 그 마음 엘레지여

黑거미 집중력 백거미 못 이긴다 소문 要 .



글 읽고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