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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에 싸인 하늘 재(포암산)

이종균 7 1810
는개에 싸인 하늘 재  (포암산)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만큼 고개도 많다.
  경북 문경시 관음리에서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하늘 재(해발525m)는 그리 높지 않으나 그 이름에서는 한없이 높고, 외진 것 같은  느낌이 풍긴다.
  함백산 만항 재(1,330m)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로는 휴전선 이남에서는 제일 높다는데 그 외에도 지리산 정령치(1.172m), 계방산 운두령(1.089m), 설악산 한계령(917m), 대관령(832m), 육십령(734m) 등 이보다 높은 재가 수없이 많다.
  어느 임금이 신하들의 지혜를 시험하여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고개를 물으니 한 신하가 보릿고개라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말 사전에 보면 고개는 산이나 언덕의 넘어 오르내리게 된 비탈진 곳이라 하였으며, 재는 길이 나있는 높은 산의 고개(嶺)라 하였으니 재와 고개는 높고 낮음에 따라 붙이는 낱말인 듯하나, 한자인 嶺(령) 峴(현) 峙(치) 가운데 嶺과 峴은 재를 뜻하나 峙는 우뚝 솟을 치자이니 고개라기보다는 봉우리를 뜻하는 듯 한데 우리는 그냥 편리한대로 치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하늘 재를 한 번 넘고 싶었다.
  여름 장마에 이은 태풍 마니가 일본열도를 거쳐 북상했으나 곳에 따라 비가 내릴 것이라는 제헌절 날 나는 집을 나섰다.
  성깔 있는 사람의 성난 얼굴처럼 잔뜩 찌푸린 날씨, 짙은 는개가 차창에 부딪쳐 영롱한 이슬을 맺는다.
  미륵사지에 도착한 것이 오전10시 정각, 관광객 몇 사람이 미리 와 구경을 하고 있다.
  내 월악산에 오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니 이미 이곳에는 몇 차례 들른바 있으나 올 때마다 신비감은 더해만 간다.

  사적 제317호로 지정된 중원미륵리사지, 언제 세웠으며 또 어떤 사유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이 절은 석불(보물 제96호)과 5층석탑(보물 제95호)의 조각솜씨와 모양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왕자인  마의태자가 이곳에 머물러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누이 덕주공주가 새긴 덕주사 마애불과 북과 남에서 서로 마주보게 했다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우수에 차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감에 젖은 듯도 한 석불입상은 천년 세월에 온 몸이 검은 이끼에 덮였어도 그 얼굴만은 지금도 해맑은 흰빛을 띠고 있으니 이 또한 풀리지 않는 신비이다.
  가람 터 앞쪽 왼편에 자리한 길이 605센티 높이 180센티의 돌 거북 비석받침(石龜趺)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라는데 일반적으로 창사의 연혁이나 중수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 몸(碑身)을 다섯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도 찾지 못했다 한다.

  빗발이 굵어진다. 나는 우의를 둘러쓰고 준비를 갖추어 역사자연관찰 로를 따라 하늘 재로 향했다.
  는개가 연기처럼 스며드는 하늘 높이 치솟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속, 예가 바로 하늘나라 아니랴.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와 테레펜(terpene)은 살균 살충성 물질로 인체에 유익하니 되도록 많이 흡수하기 위해 삼림욕을 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반갑기도 하다.

  이윽고 하늘 재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문경에서 예까지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문경시가 세운 거대한 유허비에는 이 고갯길은 신라 제8대 아달왕(156년)이 처음 개설하여 계립령(鷄立嶺)이라 하였다는데, 죽령(竹嶺)보다 두 해, 조선 태종 때(1414년) 개설한 조령(鳥嶺)보다는 1,258년이 앞선 것으로, 이 고갯길을 넘어서면 곧 충주에 이르고 충주에서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한강하류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어 삼국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하였다.

  여기 서린 전설이 떠오른다.
  옛날 어느 선비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다가 젊은 여인이 지아비의 시묘를 하고 있는 움막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여인의 미색에 마음이 움직인 선비가 “이 밤 서로 인연을 맺으면 어떨까(結義此夜因緣)”라 읊어 대구를 요구하니 여인은 “죽은 남편이 황천에서 운다(故夫鼓盆黃泉)”고 답하여 완곡히 거절했다.
  선비가 한양에 이르러 또 다른 과부 집에 묵게 되었는데 주안상을 차려들고 들어온 여인이 “結義此夜因緣”하는지라 선비는 “故夫鼓盆黃泉”이라 답했다. 이에 여인이 부끄러워 뒤돌아 나갔다.
  이를 엿듣고 있던 한 노인이 선비에게 나타나 홀로된 며느리의 행실을 나도 바로 잡지 못했는데 선비가 글귀 하나로 깨우쳤으니 참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 노인이 바로 과거의 시관이었으니 그 글귀가 시제로 출제되고 그 선비가 장원급제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늘 재 고갯마루, 어쩌면 그 시묘움막이 있었던 자리, 허름한 산장에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나는 산길을 묻고는 그냥 뒤돌아섰다.

  오름길은 경사도 45도를 넘는 가파른 돌길이다.
  이제 욕망도 미움도 근심도 없을 나이지만, 간밤에 내린 비로 쏴쏴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내 마음도 씻기는 듯하다.
  포암산(布巖山:962m), 바위가 명주처럼 널려있어 붙여진 이름인가 널찍널찍한 바위 비탈(슬랩)이 트인 구름사이로 시계에 들어온다.
  정수리까지 0.3킬로라 표시된 구간이 그리도 힘들고 지루하다.
  모나고 날카롭고 비에 젖어 미끄러운 돌길, 조선조 세도가의 머리인들 이리 도도할까.
  서둘지 않고 조심스럽게 참아 오른 정수리, 돌무더기 앞에 「白頭大幹 布巖山」이란 외소한 정상석이 서있다.
  남으로 하늘 재를 굽어봐도, 북으로 만수봉(983m)을 쳐다봐도, 동으로 문경 시내를, 서로 미륵리를 바라봐도 온통 는개에 가린 잿빛 하늘뿐이다.

  내려오는 길, 부녀산악인 네댓 명이 오르며 “아저씨 왜 혼자 내려오세요?” 묻는다. “네 혼자 올랐기 때문에요” 긴장된 순간에도 모두 웃음이 터졌다.
  “오 쏠레 미오···”내 핸드폰의 라이브 벨이 산속의 적막을 깨고 울렸다.
  나를 미륵리에 내려주고 문경을 거쳐 하늘 재로 온 아내가 약속시간이 넘자 산길로 오르고 있다는 연락이다.
  여보! 산길이 위험해 큰일 나요. 어서 내려가 하늘 재에서 기다려요.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발길을 재촉했다.

 
7 Comments
단암 2007.07.24 13:08  
  포암산- 너럭바위가 많은 산으로 풀면 괜찮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사무실에서 또 하나의 산을 오르고 내립니다.
故夫鼓盆黃泉! 부부의 신의로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짧은 인생에 제 집사람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워낙 해 준게 없어서...... 건강하십시오
바 위 2007.07.24 14:46  
  元亨利貞(원형이정)
天道之常(천도지상)
仁義禮智(인의예지)
人性之綱(인성지강)
[인성의 벼리이다.]
산행심을 겹춰봅니다...
    周易 :건괘(乾卦)

      바위생각 / 권 운

자연 깃 인성 들어 산길따라 가다나면

흰구름 손짖소리 하얀폭포 장마걷네

선인 늘 눈빛 맑아라 포암산신 빙그렐세

회장님
시절이 좋아지니
북녘산 박사님을 기다린단 전갈입니다...

건강 산신지켜주심 맞지요...
산행기 맞의 진수 하는일 놓고 홀렷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종균 2007.07.24 15:57  
  단암 선생님!

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요즘은 회원문단도 분망하여
주 1회에서 월 1회를 방문 횟수를 늦추었습니다.

"너럭바위"는 우리말사전에 '넓고 편편하게 생긴 바위'라 풀이하여
그 각도의 표시가 없으나

등산용어사전에는 '30~75도의 경사를 이룬 넓고 편편한 바위'를 비탈(slab)
이라 한다고 되어있고,
"너럭바위"는 암반이나 바위능선에 선반처럼 되어있어 쉬거나 잘 수 있는
넓이의 바위 즉 terrace를 말한다 하였습니다.

"故夫鼓盆黃泉" 중 鼓盆은 장자의 고사에 나오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쉰내가 나는 말이지만 전후 상반되는 이야기가 요즘 세태에 비추어 아름답기도 합니다.

뜻대로 된다면
나는 함께 갔으면 합니다.


바위 선생님!

늘 거르지 않으신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빙그레 포암산신
맑은 눈빛 못봤어도
내 가슴 뿌뜻함은
그 靈氣 미침일까

금주 중 시간 나실 때
연락 주시지요
아차산에 풀지못한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송인자 2007.07.28 10:13  
  "는개"라는 단어가 참 멋집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포암산을 가 봐야겠네요.
안내 감사합니다. ^^
장미숙 2007.07.30 13:31  
  선생님!
말씀으로, 사진으로..
산 구경 잘 하였으니 감사합니다~
산처녀 2007.07.30 21:51  
  는개에 쌓인 하늘재,
저희가 사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안은 거리입니다.
산은 올라기지 못했지만 아니가도 간 듯합니다.
는개 참 아름다운 시어입니다.
정우동 2007.07.31 14:11  
  끝도 없는 하늘재가 놓였으니
문경 관음리와 충주 미륵리 사이는 멀기도 하겠습니다. 
이성계 태조왕이 남해 보광산에 국태민안을 빌고 산의 영험함에
비단으로 감싸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자고 산의 이름을 비단 금자를 써서
錦山으로 하여 때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포암산은 또 누가 언제 삼베로
덮었을지가 궁금합니다.

鼓盆 고사는 죽음에 대한 도가와 유가의 관점이 판이함을 보여줍니다.
공자 같으면 죽음의 슬픔에 노래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인데도
장자는 아내의 죽음에 갈 곳으로 잘 갔다고 동이악기 치며 노래하니
세상사 다 제 좋을 대로 생각하고 제 멋대로 사는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시비선악 길흉회린은 사람나름인것 같습니다.

고분경고와 고분장원은
또 맹사성 대감의 < 공 - 당 > 문답장원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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