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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의 명복을 빌며

별헤아림 4 1625
<기사 모음란>에서 조병화 시인이 어제 저녁에 타계하심을 알았습니다.
그 분의 작품을 다 읽진 못 했지만 참 좋아했었습니다. 향년 82세.
서울에 살면서 가끔 갑상선 재발방지를 위해서 <경희의료원>엘 가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조문이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조병화 제 22시집 <남남> 중에서


남남 <6>
조병화

나의 언어는 너의 대륙에 뿌려진
꽃씨
만발하여 헤아릴 수 없는 群花의 무리
한없는 공허
난 주야로 그걸 가꾸는
충실한 들지기

오, 自由여
난 네 순수한 언어, 그 꽃.


남남 <28>
조병화

널 위해서 시가 씌여질 때
난 행복했다
네 어둠을 비칠 수 있는 말이 탄생하여
그게 시의 개울이 되어 흘러내릴 때
난 행복했다
널 생각하다가 네 말이 될 수 있는
그 말과 만나
그게 가득히 꽃이 되어, 아름다운
시의 들판이 될 때
난 행복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너와 나의 하늘이
널 생각하는 말로 가득히 차서
그게 반짝이는 넓은 별밤이 될 때
난 행복했다.
행복을 모르는 내가
그 행복을 네게서 발견하여
어린애처럼 널 부르는 그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氣流 가득히 네게 전달이 될 때
행복했다
아, 그와 같이, 언제나
먼 네가 항상 내 곁에 있는 생각으로
그날 그날을 적적히 보낼 때
虛空처럼
난 행복했다.

남남 <30>
조병화

열어도 열어도 모자라는 마음
보여도 보여도 모자라는 마음

아, 너와 나의 깊은 외로움은 너와 날 모르게 한다.
너와 나의 깊은 노여움은 너와 날 모르게한다.
너와 나의 상하기쉬운 깊은하늘은
이렇게 너와 날 모르게 한다.

오늘 그 분의 타계 소식을 읽고서 책장을 둘러보니,
<숨어서 우는 새>란 詩集이 눈에 띕니다.

숨어서 우는 새
조병화

내 영혼은
숨어서 우는 노래로 가득합니다.

내 시는
숨어서 우는 노래로 젖어 있습니다.

아, 이렇게
내 긴 생애는 숨어서 우는 노래였습니다.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 !.>
4 Comments
박금애 2003.03.09 22:27  
  어제 그분이 타계하실때쯤 바다님께  '추억'(김성태曲 백남옥 노래)이라는 곡도 좋다고 이야기 했지요. 바로 조병화님 詩 입니다.
85세까지 살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고 걱정하셨지요.1998년 7월 30일부터 2002년 7월15일까지 쓴 편지를 모은 서간집에서
'이젠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120신에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25년전에는 낭만에 젖어 그토록 좋아했던 곡을 이제는 
그분의 명복을 빌며  -추억- 을 들어봅니다.

      추억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기슭을 걸어보던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가고 가을가고
조개줍는 해녀의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아아~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앞산 기슭을 걸어보던날이
나흘 닷새 엿새
나물캐는 처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산에
 아아~ 이산에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

 
평화 2003.03.09 22:43  
  저도 십대때부터 조병화님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했었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어제는 저희 동호회원들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임이 있었는데
조병화시인님은 돌아가셨으니...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 조병화 -

이렇게 될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자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 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믿어야 했습니다.
별헤아림 2003.03.09 23:11  
  박금애님! 저도 <추억>이란 가곡의 가사를 가끔 읖조리곤 했습니다만 작사가와 작곡가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작품이었군요. 오숙자 교수님의 <원술랑>에 삽입된 가사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평화님! 토요일 비정기 모임에 참석하셨군요.언젠가 뵐 날이 있겠지요. 건강하시고,본당에 봉사 많이 하시길..... !
두 분이 적어 주신 시를 다시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수선화 2003.03.10 01:06  
  님은 가셨어도..
이 땅에 뿌리고 가신 님의 자취 너무 많아

우리들 가슴에서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는군요.

고인을 추모하며..
남기고 가신 님의 시를 다시한번 음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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