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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계절이 다가오면 황금빛 태양 속으로 풍덩...

김형준 8 731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이부자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햇빛이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초대하지만 조금은 더 게으르고 싶다.
다들 폼 나는 옷들을 걸치고 가야할 곳들로 간다. 내가 있을 곳은 방구석.
아프다고 아프다고 외친들 무슨 소용이랴. 내가 지가 아니고, 지가 내가
아닌데. 아픈 자 사정은 아픈 자가 아는 법. 건강한 자는 건강한 자들의
벗이 되어 즐거이 춤을 추고 있다.

약간 삐딱성을 타는 자가 멋이 있는 법이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인간의
물결에 휩쓸리는 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대도 그러한 사람의 하나인가.
다들 같은 방향으로 가는데 역류하여 걸어가다가 팔에 걸려 넘어지고, 밟히고,
비명 소리를 내본적이 있는가. 에이, 썅! 하고 터진 코피 쓱 소매로 문대고
다시 일어나 터벅터벅 길을 걷는 사람, 어찌 보면 미친 것 같고, 어찌 보면
천재인 것 같아 아주 가까이 가기가 두려운 사람, 그런 사람들과 친구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나도 약간은 머리 꼭지가 돌아버린 것일까. 히히.
그럼 어때. 난 내 멋대로 사는 인간인데.

내가 만나고 싶은 이들과 '귀천'에서 모였다. 무엇이 우리를 같은 시간에
동일한 공간으로 모여들게 하였나 가만히 내 마음과 소근거렸다. 아, 맞다!
가곡 사이트에다 글을 싣고, 가곡을 듣고 부르다가 맘들이 동거하기 시작해서
만나게 되었다. 세 사람. 이씨, 정씨 and 김씨. 고향도 살아온 과정도, 취미도
무척이나 다른 세 사람이지만 나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산을 좋아하는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나도 산 나그네가 된 것 같아 마음 속으로 어깨 춤을
절로 추었다. '얼쑤!' 억새 이야기, 구름 속에 잠겨 버린 바다 이야기, 80십
몇 되신 스승님 이야기, 천상병님 이야기, 정덕기님 이야기, 이생진님 이야기,
그리운 바다, 성산포, 귀천, 귀천, 귀천. 주저리 주저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이 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있나. 수다는 여자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술 보다, 무엇 보다 함께 만나 communication하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 이도
있다. 사귐이란 무엇일까. 과연 우리들의 만남은 어느 정도의 길이와 어느
정도의 폭과 어느 정도의 깊이를 이루어 나갈까. 기대를 많이 하지 않을 수록
실망도 덜 하겠지만 새로이 누군가를, 그것도 마음이 맞는 이를 만나는 것은
늘 근사한 일이며 마구 흥분시키는 event이다. event라! 만남을 약간은 가벼이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서 용어 선정이 잘 못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도 된다.
허나 모든 중요한 역사는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려해 볼 때 누군가
좋은 이를, 예쁜 이를, 즐거운 이를, 흥분되는 이를 만나는 것은 비록 혁명의
수준에 가기에는 좀 힘들어도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개인의 삶에도 사건들이
많은 것은 때론 좋고, 때론 지겹다. 좋은 사건들이 많으면 좋은 것이고, 힘든
사건들이 넘치면 벅찬 것이다. 그래도 때론 힘든 사건들이 터져야 삶에 자극이
되고 도전이 된다.

노래방에 가고 싶었다. 엊그저께, 아니 정확히 말해 지난 주 금요일에 종로
모처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밥 먹고, 떠들고, 쿵덕거리는 가슴을 안고.
누구하고 갔을까. 친구하고, 애인하고, 가족하고. 글쎄요. 정의하기에 따라
친구도 되고, 가족도 되고, 뭐 사랑하는 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
보면 정확할까, 부정확할까. 아이구! 그런 걸 따져 뭐하랴. 나이는? 70대 셋,
60대 둘, 40대 하나. 내가 속한 age group은? 에이, 건 privacy에요. 허나
완전 묻지마 노래방 방문은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비록 가끔은 껴안기도
하고, 가끔은 solo로 또는 duet으로 춤을 추기도 했지만. 여하간 오랜만에
가는 노래방이었지만 엄청 즐거운 시간이었다. 뒤풀이 겸 해서 벌어진
헤프닝이어서 그럴까. 평상시 같으면 함께 노래방 갈 엄두를 못 내었을
그런 관계의 사람들, 일단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들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고 듣고 즐겼다. 호호! 그러니 내 몸이 아직도 노래방 분위기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다 그렇지 않은가. 뭔가 즐거운 일을 했으면 또 다시
그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 시간이 좀 흐르면 또 다른 무언가가 나를 꼬셔서
노래방을 잊게 할 것이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을 또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 평상시에는 남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노래방에 가면 의외로 스스럼 없이 즐겁게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나를 깜짝 깜짝 놀래킨다. 어, 저 사람에게 저런 끼가
숨어 있었네.

다음 번엔 노래방 갑시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노래 잘 하면 어떻고
못 하면 또 어떤가 좁디 좁은 공간에서 친한 이들과, 아님 미래에 친해
졌으면 하는 어떤 분들과 더불어 그 좁은, 허나 약간은 더럽고 침침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스릴을 가져다 주지 않는가. 꼭 노래방을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비원을 가면 더 좋겠다. 이젠 단풍도 낙엽도
다 바람이 쓸고 간 쓸쓸한 초겨울 누군가와 체감온도가 훨씬 떨어진 추위를
느끼면서 걸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가. 아무리 따스한 관계라도 기온이
낮은데 어쩌겠는가. 둘이 걸어도 각각이고, 셋이 걸어도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혼자 걷는 것 보단 낫고, 의지가 되지 않을까. 물론 가을에 함께
걸었다면 좋겠지만 이미 지나간 계절을 탓하면 무엇하리.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 처럼 그 계절을 잊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난 지금은 12월과 함께 가련다.

비원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길거리를, 아님 작거나 큰 공원을, 그것도
아님 춘천에 갈까. 소양강 처녀의 가사를 모두는 못 외우지만 그러면 어때.
그저 갈대가 반겨주는 어느 강머리에 가서 멍 하니 앉거나 서 있다 오면
되지. 누군가 함께 갈 이가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 아닐까. 안됨 혼자라도
가지 뭐. 영화관은 어떠냐고? 고것도 꽤 괜찮은 시간 때움이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어떤 즐거운 일? 건 상상에
맡기렵니다. 아, 거 있잖아요. 어둠컴컴한 곳에서 가끔 발생되는 것.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뭔가를 해봐. 이부자리 걷어 치우고, 맘 속에 찌든 때 훔치고,
나무에서 가지 하나 뚝 떼어보고, 길에 너부러져 있는 돌멩이 하나 뻥
걷어차고, 깊지 못한 주머니 타령도 하지 말고, 얼굴 하늘로 쳐들고
이 세상을 다 소유한 인간처럼 자신있게 팔자 걸음으로 세상을 누벼봐.
그것이 가장 좋은 삶 아냐. 무전이면 어때 친구놈 하나 불러내어 밥 얻어
먹고, 열나게 기분 잡친 상태로 집에 들어온들 말야. 그러다가 전 생기면
열 번 사줌 되지. 아프다고 핑계대지만 말고, 어서 일어나 돌아다녀.
혹시 알아 길바닥에서 동전 주울지. 물론 그러다가 개의 그것을 밟을 수도
있고, 어디서 날아오는 주먹이나 자동차의 세례라도 물씬 어이구 미치겠네.
그래도 걸어봐, 걷다 보면 사는 이유 알 수 있을지, 예쁜 다리 한 번 더
훔쳐 볼 수 있을지, 그대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좋은 친구 하나 건질지
누가 알어. 기어 나와야 뭔가 일이 진행되는 거지. 허나 여전히 방구석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이들 많은 것 우리 잘 알 잖아. 세상은 지 멋대로 사는 거지.
누가 그걸 말려. privacy라는데 말야. 소유와 무소유를 떠나 폼 나게 살아
보세요. 때 되면 짙은 안개 속으로 다들 걸어들어가야 하니까...
8 Comments
바 위 2006.12.06 03:40  
  용암에 풍덩빠져 살고 말리 기원한다

한 가슴 여한없을  약속같은 한 둘 평생

안 쓰런  한숨소리 가  띠워날아 가더니다
이종균 2006.12.06 10:10  
  그날 밤
그 좁은 공간 귀천은 우리들에게
드넓은  천국이었습니다

거기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정이 있고 뜨거움이 있고
마음이 있고 진실이 있었습니다

그 좁은 공간 귀천
드넓은 하늘나라에
석양의 계절 황금빛 태양따라
또 한 번 가봅니다.

 

김형준 2006.12.06 22:09  
  귀천에서 목여사님 만나 뵙고 판화를 프린팅한 듯한
천시인님의 얼굴을 보니 시인께서 귀천하신지 오래되셨는데도
두 분의 모습에는 닮은 데가 많이 있으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제는 천시인님의 시들을 영어로 번역하신 (현재는 귀화해서 한국인이
되신) 영국 분과 오랜만에 길게 통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호암아트홀에서
하는 모짜르트 콘서트 티켓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하시는데 제가 나갈
형편이 되지 못해서 아쉽게도 'rain check'을 하고 말았습니다.

테이블이 네 개 있는 좁은 그곳은 정말 천국이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다보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음엔 꼭 노래방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생님 노래하시는 모습을 제 마음에 담아두고
싶습니다. 어떤 노래들을 하실까 궁금합니다.

다음으로 가시는 산은 어디세요? 미리 인터넷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직접 가시고, 저는 마음으로 가서 만나는 거죠 뭐.
제가 열심히 응원가 불러드릴게요. 
김형준 2006.12.06 22:13  
  태양에 풍덩 빠지더라도 석양에는 덜 뜨거울까.
그냥 바로 타 없어져 버릴까.
허나 내 영혼은 보다 순수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어느 세계로 갈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공격적이 되지 않아도 좋은 그 세상,
평화롭게 시를 쓰고, 읊조리고, 노래를 부르는 세상,
그 세상에서 가신 님들을 만나고프다.
가신 스승님과 친하셨던 어느 시인을 오늘 저녁 만났다.
절로 목이 메었다. 아, 그랬다. 오늘 만난 시인은
'팔복장로님'과도 연관이 있는 분이시다. 조카 사위라고 하셨다.
이렇게 세상은 좁다. 나의 스승과 그의 친구분, 장로님과 나
그리고 그 시인 교수님, 이것도 다 미리 주어진 인연의 고리일까.
송인자 2006.12.07 16:35  
  "귀천"은 이동원씨의 목소리로 들으면 더 애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요 중 한 곡입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찻집은 왠지 분위기가 있을 것 같네요.^^
정덕기 2006.12.08 09:17  
  목순옥여사님도 잘 계시는지요
김형준 2006.12.08 18:52  
  송인자선생님,
덕분에 '귀천'을 이동원님의 목소리로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천상병시인님의 부인이신 목순옥여사님께서 이동원님이 부른
노래를 언급하셨는데, 마침 송선생님께서 다시 말씀하셔서
잘 들업보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이동원버전과
또 가곡 버전의 '귀천(歸天)'을 함께 불러보고자 합니다.

가곡으로 나와 있는 '귀천'은 여럿 있습니다만 정덕기교수님께서
곡을 쓰시고, 바리톤박흥우님께서 부르신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너무도 여유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곡입니다.
김형준 2006.12.08 20:15  
  정교수님,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대화 중에 정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물론 '귀천'을 작곡하신 분으로 목여사님께서 기억하시고 계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목여사님께 천상병시인님의 시들을 낭송하는 낭송회를 정규적으로
하시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시들이 영어로도 (서강대
안토니 수사님에 의해) 번역이 되어 있으니 영어로도 낭송을 하고,
또 노래들도 부르고 하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까지만
이야기 하고 더 이상 아이디어들을 드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가진 별명 중에 하나가 '아이디어 뱅크'인데 아이디어들을
개인이나 단체들에게 드리다 보면 저에게 직접 행사 내지는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진행해 주는 것까지 원하시는 일들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귀천'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가수 안치환님의 CD에 곧 담겨
나올 예정이라고 목여사님께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안치환씨에
의해 발표가 되면 젊은 층에도 '귀천'이 잘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 저도 양념을 더 했답니다.

이래저래 저도 천상병시인의 열성팬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김종덕선생님께서 작곡하신 '귀천'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정교수님 곡도 열심히 연습해서 어느 모임에서 인가
부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동진선생님의 '진달래꽃'을
이번 06년 12월 모임에서 부를까 생각하고 연습하고 있는데
정교수님께서 작곡하신 '귀천'으로 바꿀까도 목하 깊이 고민하고
있답니다. (^_^)

목여사님은 얼굴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좀 더 자주 귀천을 찾아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느라 좁은 골목에 만든 '귀천'만 다녔었는데,
커다란 건물 1층에 있는 현대식 '귀천'을 가보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천상병시인의 시들을 사랑하시듯이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인사동에 있는 카페 '귀천'도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마음 속으로 바래 봅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