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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왕산에 다녀와서 <수필>

송인자 13 1411
발왕산을 다녀와서

  지난 토, 일요일 세미나참석차  발왕산 용평스키장엘 다녀왔다.
  원고 교정, 타자하는 “알바” 때문에 못갈 줄 알았는데. 마침 글 쓰시는 선생님께서 원고가 덜 되었다고 하셔서 그 참에 다녀올 수 있었다.

  목적은 세미나 참석이었지만, 모처럼 언니와 떠나는 여행이어서 몹시 들떴다. 나이 들수록 자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토요일에 강의가 없는 큰 딸애에게 집안일을 당부해 놓고선 아침 일찍부터 부산히 서둘렀다. 설레는 마음에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갈 뜨고, 발 편한 운동화를 꺼내 신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날씨도 내 편이었다. 골목을 내려갈 때는 아주 신이 나서 곁을 지나가는 도둑고양이조차 밉지 않았다. 출발지에서는 세미나 참석 인원이 버스 2대에 타고도 넘쳐서 승용차가 몇 대 따라가야 한다고 법석이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와서 겨우 내 자리를 잡아놓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언니에게 한 소리 들어야했다. 그래도 좋았다.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은 언니와 노닥대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자 그때서야 차창 밖을 내다보니 멀리 보이는 산들이 계절을 잊지 않고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서 용평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푸짐한 산나물과, 돌솥 밥, 두부와 버섯을 듬뿍 넣은 시원한 황태 국에 점심을 먹었다. 세미나 장소인 스키장은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첫날은 두 시간 정도의 강의를 들었다. 세미나는 안보에 관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곳 4층 콘도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땐, 찬란한 햇살과 맑은 공기로 발코니에 나서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나란히 서서 깊은 호흡으로 숲의 향기를 들이마시던 우리는 아예 삼림욕을 하자며 밥 먹기 전에 산책을 하기로 했다. 7시에는 일행들과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야 한다. 산책을 하자면 서둘러야 했기에 대충 샤워를 끝내고 6:30분쯤 방을 나섰다.

  4층에서 2층까지 엘리베이터로 내려오자 앞이 탁 트인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기분이 좋아져서 앞으로 죽 걸어 나갔다가 1층으로 가기위해 다시 한 번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기에서는 사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좌측에 버젓이 “손님용”이라고 써진 것을 두고 우측에 “종업원 전용”이라고 써진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쪽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둘이는 1층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문이 열린 곳은 컴컴한 지하실로 보일러실인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대는 그런 곳이어서 기겁을 했다.
“이게 뭐야?” 놀라서 아예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이번엔 2층을 눌렀다. 원래 우리가 탔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쪽 문이 열리며 (양쪽으로 문이 달려있었다) 또 컴컴한 창고가 나타났다. “아니,,.. .이거 왜 이래 ? ”하면서 이번에는 우리가 처음 묵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4층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창고. 우리는 겁이 더럭 나서 일단 나가서 계단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비상구도 층마다 잠겨있었다.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내려가도 어두운 창고인 것이다. 천정과 밑을 쳐다보니 마치 소용돌이의 구멍처럼 높고도 깊어보였다. 덜덜 떨렸지만, 내가 그런 내색을 하면 언니에게도 전염될까봐 불안한 마음을 입 밖에 내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이거 왜 이래....... 왜이래.......” 만 연발하며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때 “아, 휴대폰!”
  그 순간 참으로 기특하게도 난 휴대폰 생각을 해냈다. 내 말에 언니도 안심을 하고서는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휴대폰을 기다렸다. 언니는 휴대폰을 방에 두고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얼굴을 내민 휴대폰은 캄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니.. 어떡해! 약이 떨어졌나봐 ”
  “뭐?”
  도깨비에 홀린 것같이 막막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언니와 둘이었으니 망정이지, 혼자였으면 얼마나 암담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계속 오르내리다. 아마도 우리가 6층을 누른 모양이다. 문이 열리고 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복도가 있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옆 칸은 주방이었고 사람이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사람이 그렇게 반갑기는 난생 처음이다.
  “7층을 누르고 올라가십시오,  거기가 2층입니다”

  종업원의 설명이 거기는 건물의 앞쪽이며 본관과는 달리 지하로 많이 내려간 곳이라는 것이다. 본관의 2층이 그곳의 7층 이었으니....나중에 들으니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분 4명은 전날 저녁에 그 소동을 벌였단다. 그래도 그 분들은 우리보다는 훨씬 현명했나보다. 인터폰을 눌러서 도움을 요청했단다. 언니와 난 왜 그것도 생각 못했을까? 둘 다 사는 집도 단독주택이고 사무실 등 일상생활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 층수 표지판에 표기를 해놓았으면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되어서 관리자들에게 말해준다는 게 그만 깜박 잊고 왔다. 전화로라도 건의해 봐야겠다.

  오후엔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의 정상에 올랐다. 가져간 워크맨으로 멋진 바이올린 곡을 들으며 산들산들 부는 바람 속에 멀고 가까운 능선들을 바라보노라니 기분이 아득해졌다.

내려올 때는 공중에 높이 달려있는 곤돌라위에서 주변의 콘도들을 내려다보니 지붕들이 어찌나 예쁜지 마치 유럽의 휴양지에라도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녹색의 골프장과 각양각색의 예쁜 꽃들도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꽃 잔디처럼 보였다.

  스키장은 철이 아니라 휴장이었지만. 휴게실 내부가 무척 넓었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성수기에는 종업원이 500명이라는 설명에는 다소 놀라웠다. 그 많은 인원의 월급을 어떻게 챙겨줄까? 싶은 생각에 괜한 걱정도 되었다.

  산을 내려와서 좀 이른 출발을 위해 집합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날씨가 어찌나 쾌청한지 하얀 구름 몇 조각 떠있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자 세상걱정 하나 없는 사람처럼 행복했다., 거의 객기를 부리고 싶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잔디 옆에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형형색색의 마사토를 깔아 놓은 길 위를 걸어봤다. 난 뭐 하러 그 길 위로 걸었을까? 괜스레 색다르게 만들어 놓은 곳을 걸어보려다 벌 받았다.

  내가 그곳에 한 발을 딛고 또 한발을 내디디려는 찰나 동글동글한 마사토가 죽 밀리면서 100근을 상회하는 내 몸뚱이는 잠시 0.0603초 동안 공중부양을 했다가 그 무게에 상응한 중력의 작용을 받고 (잠시 팔을 버둥거려 중력에 반하는 동작을 하긴 했지만...)그대로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야.... 아야!......아이고......아이고.......

  곁에서 맨땅을 걸으며 한사코 나를 말리던 언니는 내 비명소리에 허리를 다친 줄 알고 엄청 놀랬다. 그러나 언니의 염려와는 달리 다행히 내 허리는 탈이 없었고 팔꿈치만 까졌다. 구르는 돌멩이가 마찰력을 감소시켰는지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팠다. 벗어서 들고 있던 흰 챙 모자는 빨간 돌가루를 짚어서 엉망이 되었다. 아파서 징징대며 화장실에서 모자를 빨아야했지만 그것조차도 즐거웠다.

  뭔가 뒤죽박죽 되는 날은 무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날은 그냥 얌전한 강아지처럼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수다.

<문예사조> 2005년 12월 사화집 수록.
13 Comments
sarah* 2006.09.02 09:53  
  ㅎㅎ  인자님의 출중한 묘사가 그려내는 대로 따라가며...  저도 즐겁게 발왕산엘 다녀 왔네요...
사이 좋은 자매와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푸근할 것이며...  쾌청한 날씨도 도운  여행에 에피소드까지 곁들여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나 봅니다

여행은 언제라도 좋지만.... 
아...  일탈의 홀가분함으로 떠나는 가을여행에 비할 수 있을까...
가을은 잃음과 비움의 계절이라는데...
뭉게구름 2006.09.02 11:49  
  송인자님!
좋은 수필 잘 감상했습니다. 이제는 열렬한 펜이 되었네요.
저도 용평 발왕산을 다녀 왔습니다.
      언제: 지금 이 시간.  교통편: 송인자님의 위 글.
시간의 강 위에 피어오른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지요.
계속 좋은 글 쓰시는데 정진하십시요. 감사합니다.
별헤아림 2006.09.02 12:35  
  송인자 수필가님을 찾아
<우리가곡애창본부>를 거쳐, <내 마음의 노래>합창단 홈의<게시판>을
찾았었는데..ㅎ..ㅎ
이제 몸소 나오셨군요!
거침없이 이어지는 수필가다움을 다시 확인합니다.^^*
세라피나 2006.09.02 12:50  
  호호~^^
인자언니! 이젠 저 기억 해 주시나요?^^  아님^^ 아직두요?^^;;
수필가이시다는 걸 알고서는 쬐끔 긴장되네용~^^  글 올리기가..^^

찬찬히~^^  세심히~^^ 다정히~^^  코믹히~^^
버라이어티^^한  읽는, 글! 글!마다  뽀로록^^ 미소 끌어내는^^
*왕 글 재주꾼* 송인자언니님!
발왕산  여행기행  맛깔나게  읽었습니다.^^
수패인 2006.09.02 13:49  
  송인자님 글을 읽다보면 풍경이 저절로 보여요.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은 댓글을 달리게 합니다.
송인자 2006.09.02 14:02  
  sarah*언니//히히 ....온냐 .....재밌쪘쪄?....
나도 가을 속으로 떠나고 시포요 ㅠ.ㅠ

뭉게구름(김형규교수님)// 저희 제부도 경북대 의대 교수 인데요.. (이 다음에 전화 드릴게요^^) 오늘에야 정보 보기를 봤습니다. ^^ 저희 내마노 합창단 정기 공연에는 오실거죠? 너무 멀어서 무리일까요? ^^

별 선생님// 아고고....황송해라.  제가 그렇게나 돌아 댕기게 만들었습니까? ^^
별 선생님이야말로 반듯한 글쓰기를 보여 주시니 많은 공부가 됩니다.^^

세라피나님// 왜 님을 모르겠어요?  재미있게 읽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이다음 가곡교실에서 뵙시다. ^^
송인자 2006.09.02 14:06  
  수패인선생님// 이궁 ! 댓글 올리는 사이에 또 글을 올리셨네요. ^^ 수패인선생님은 환자 보랴...트럼펫 배우시랴.. .. 글도 쓰시랴 바쁘시겠습니다. ^^
바다 2006.09.02 19:24  
  송인자님!
 그런 일이 ㅎㅎㅎ
 근데 그 날  그런 일이 없었으면 어찌 이리 재미있는 글이 나왔겠나요?
참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을 보여주셔서 더불어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재미난 글 자주 읽게 해주시길 ^.*
장미숙 2006.09.02 21:35  
  긴장이 되다가, 웃습기도하다가..
수필의 묘미를 가감없이 펼쳐주시는 송인자 작가님!
굉장히 친한 마음을 전합니다~^^
자 연 2006.09.03 12:34  
  송 선생 손 보다도 글 빛이 더 곱다면

인자 함 화 낼 걱정 둬 보라 사통팔달

하늘이 가을 속이라 어련히도 웃으리라
최효은 2006.09.04 01:57  
  남편근무처가용평이라자연스레클릭되네요
날좋은날은발왕산정상에서바다도보인다고하던데요
좋은추억만들었네요.서비스가좋았다니더불어기분좋읍니다
송인자 2006.09.04 08:49  
  바다선생님// 재미있으셨다니 고맙습니다.
어떤 분이 왜 공중부양을 0.0603초 동안 했느냐고 묻더군요.
내..참. 제 생일입니다. 그랬지요. ^^::

장미숙님시인님// 네,..저도 유난히 친한 마음을 전합니다.
올리시는 시 보면서 시인들은 참 남다르구나! 싶답니다. ^^

자연님// 선생님 글은 한참을 생각하면서...고민해가면서 읽어야 합네다.^^

최효은님// 그곳에서 바다도 보인답니까?
그날 참 화창했는데.... 모르니 못본 모양입니다
자 연 2006.09.08 04:08  
  송선생님 要

발왕산 전국에서
발 제일커 산중에 마당발 맞나요 ?
얼른 맞나 알려주시오

고맙습니다 ~~~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