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다찌를 만나러.....
도모다찌(친구)를 만나러....
2월 11일 화요일 오후 6시 나고야행 JAL비행기에 나는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서툰 나의 일본말은 얼떨결에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조 요로시꾸 오네가이시마스(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일본의 중년 여인 덕분에....
같이 인사를 나누고나니 계속 말을 건다.내가 너무 발음이 좋았는지??? ^^
내가 아는말은 겨우 몇마디의 인삿말정도라 잽싸게
와따시와 강꼬꾸진데스(저는 한국인입니다.)
스미마셍가 와따시와 니홍고데 와까리마셍(미안합니다만 저는 일본말을 잘 모릅니다.)
그렇게 몇마디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중년 여인이 알았다는듯 예쁜 미소를 건네는 모습이 참 고와보인다.
비행기의 좁은창을 통해 내어다보니 창문 바로 밑에 날개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이상의 "날개"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어깨에도 천사처럼 날개가 있다면 아마도 날아갈테지.
언제라도 새처럼 자유롭게.....
비행기는 무서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늘 아래로
펼쳐진 무채색의 산언저리에 걸쳐진 황홀한 일몰이 나를 배웅해주고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묵주기도를 하고 이해인수녀님의 "작은 위로"시집도 읽고
오랜만에 지난 세월 그애와 나의 유년과 청년시절의 추억을 띄엄띄엄
떠올려 보았다.
이제 40대, 앞서간 사람들처럼 좀은 이기적인 꿈도 사랑도 잦아들고
침묵속에서 마음을 조금씩 비워가면서 나름대로의 지혜와 경륜을
터득한 깊고 그윽한 눈빛을 닮아가는 나를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리운 사람들, 내 마음자리 깊은곳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가
가끔씩 부표처럼 떠오를때 새삼 그들에게 감사해진다.
내 인생에서 한순간이라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날이 있느냐고
누군가 넌지시 물어온다면 당연히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 저으리라.
그것은 내가 전혀 후회없고 미련없는 생을 살아서가 아니라
사랑,미움,질투,고통들의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퍼즐처럼 모여
내 삶을 기름지고 빛나게 했던 밑거름이었음을 알았으니까....
이런 여러 생각들로 1시간 20분의 비행 후 나고야 공항에 다다르니
그새 칠흙같은 어둠이 스물스물 짙게 내려 깔리고 있었고 마중나온
친구와 7개월 된 유카가 함박꽃같은 환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공항버스로 30여분 그리고 그 빠른 하얗고 삼빡한 신간센기차와
또 열차를 한번 더 번거럽게 바꿔타면서 작은 시골마을 쥬루가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있었다.
우리는 날밤 새는줄 모르고 수다 보따리를 풀다가 어느샌가 모르게
잠이 들었는지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둘이서 늦은 아침과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으례히 여자들이 잘 그러듯
통과의례처럼 백화점 쇼핑을 나섰더니 너무도 앙징맞고 어여쁜 상품들이
진열대 위에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었다.
달뜬 우리들의 소유욕에 눈이 먼 봉지꾸러미는 어느새 비누거품처럼
잔뜩 부풀어 두손으로 모자랄 즈음 회색빛 하늘을 이고 이른 저녁
운치있는 이슬비를 맞으며 부산한 하루 일과를 접기로 하였다.
고즈녁한 쥬루가 마을의 저녁 풍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니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인적 뜸한 며칠동안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집같은 암자들이 오밀조밀 즐비해있는 느낌이다.
겨울이라설까?....
짙은 회색과 뜨문뜨문 갈색의 기와를 얹은 작고 착 가라앉은 간결한
색채의 톤을 지닌 군더더기없는 상자갑같은 집들을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그저 물끄러미 시간날적마다 바라보았었다.
낮은 불록의 담장들과 블록 대신 키 작은 초록 나무의 울타리들이
낯선 이방인인 나에겐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다.
일본인들은 이웃과의 교류를 즐기지 않는다고 친구가 일러주었다.
집으로 놀러오세요 한다고 선뜻 한번만에 가면 실례라고 한다.
여러번 그 소리를 듣고 방문한 연후에도 차만 마시고 금새 와야지
아니면 밥까지 먹고갈래라는 말이 나온다고하니 참 씁쓸하여져서
한국인의 풋풋한 정서가 새삼 그리워져왔다.
다음날은 친구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잘된 식당에서
불고기 세트를 (돼지고기 여러부위,소고기 여러부위)와 술을 한잔 하였다.
그런데 홀써빙하는 아가씨는 음식을 날라올때마다 연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를 지칠줄 모르고 읊조린다.
손님을 맞이할때 90도로 몸을 숙이고 이라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치더니...
친절 하나만은 본받아야 할 큰 장점이지 싶었다.
또 다음날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온천엘 갔다.
이 온천은 작년 12월에 터널 공사를 하다가 온천수가 발견되어 세워져서
터널온천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편안한 자세로 넓은 탕속에 지긋히 몸을 담그고 벽을 대신한 넓은 유리창문을 통해
비 내리는 낮은산의 초목들을 바라보니 기분이 무척 상쾌하였다.
바로 옆에는 노천탕이 있었는데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선지 신기하게도
추위를 전혀 느낄수가 없었고 김이 모락모락 안개처럼 피어 오르는 온천수가
시냇물처럼 졸졸 실로폰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비젖은 대숲의 무리들이 참 아름다웠다.
12월 15일 토요일 집으로 오는날!
아침 창문을 열고 상큼한 풀잎 향기와 며칠만에 모처럼 습기없는 건조하고
투명한 공기를 마시며 코발트빛 하늘에 흰 뭉게 구름을 보았다.
이번 여행은 늦은 출산에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심약해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것이라 좀 더 멋진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그애와 내가 며칠동안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우정이 죽는날까지 서로의 가슴 깊은곳에서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는
불빛으로 언제라도 서로의 영혼을 송두리째 보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는
사이로 남을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친구야!
너 아니? 넌 나의 영원한 연인이라는것을....
도모다찌야! 아이시떼마스.(친구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
2월 11일 화요일 오후 6시 나고야행 JAL비행기에 나는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서툰 나의 일본말은 얼떨결에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조 요로시꾸 오네가이시마스(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일본의 중년 여인 덕분에....
같이 인사를 나누고나니 계속 말을 건다.내가 너무 발음이 좋았는지??? ^^
내가 아는말은 겨우 몇마디의 인삿말정도라 잽싸게
와따시와 강꼬꾸진데스(저는 한국인입니다.)
스미마셍가 와따시와 니홍고데 와까리마셍(미안합니다만 저는 일본말을 잘 모릅니다.)
그렇게 몇마디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중년 여인이 알았다는듯 예쁜 미소를 건네는 모습이 참 고와보인다.
비행기의 좁은창을 통해 내어다보니 창문 바로 밑에 날개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이상의 "날개"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어깨에도 천사처럼 날개가 있다면 아마도 날아갈테지.
언제라도 새처럼 자유롭게.....
비행기는 무서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르고 하늘 아래로
펼쳐진 무채색의 산언저리에 걸쳐진 황홀한 일몰이 나를 배웅해주고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묵주기도를 하고 이해인수녀님의 "작은 위로"시집도 읽고
오랜만에 지난 세월 그애와 나의 유년과 청년시절의 추억을 띄엄띄엄
떠올려 보았다.
이제 40대, 앞서간 사람들처럼 좀은 이기적인 꿈도 사랑도 잦아들고
침묵속에서 마음을 조금씩 비워가면서 나름대로의 지혜와 경륜을
터득한 깊고 그윽한 눈빛을 닮아가는 나를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리운 사람들, 내 마음자리 깊은곳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가
가끔씩 부표처럼 떠오를때 새삼 그들에게 감사해진다.
내 인생에서 한순간이라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날이 있느냐고
누군가 넌지시 물어온다면 당연히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 저으리라.
그것은 내가 전혀 후회없고 미련없는 생을 살아서가 아니라
사랑,미움,질투,고통들의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퍼즐처럼 모여
내 삶을 기름지고 빛나게 했던 밑거름이었음을 알았으니까....
이런 여러 생각들로 1시간 20분의 비행 후 나고야 공항에 다다르니
그새 칠흙같은 어둠이 스물스물 짙게 내려 깔리고 있었고 마중나온
친구와 7개월 된 유카가 함박꽃같은 환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공항버스로 30여분 그리고 그 빠른 하얗고 삼빡한 신간센기차와
또 열차를 한번 더 번거럽게 바꿔타면서 작은 시골마을 쥬루가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있었다.
우리는 날밤 새는줄 모르고 수다 보따리를 풀다가 어느샌가 모르게
잠이 들었는지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둘이서 늦은 아침과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으례히 여자들이 잘 그러듯
통과의례처럼 백화점 쇼핑을 나섰더니 너무도 앙징맞고 어여쁜 상품들이
진열대 위에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었다.
달뜬 우리들의 소유욕에 눈이 먼 봉지꾸러미는 어느새 비누거품처럼
잔뜩 부풀어 두손으로 모자랄 즈음 회색빛 하늘을 이고 이른 저녁
운치있는 이슬비를 맞으며 부산한 하루 일과를 접기로 하였다.
고즈녁한 쥬루가 마을의 저녁 풍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니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인적 뜸한 며칠동안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집같은 암자들이 오밀조밀 즐비해있는 느낌이다.
겨울이라설까?....
짙은 회색과 뜨문뜨문 갈색의 기와를 얹은 작고 착 가라앉은 간결한
색채의 톤을 지닌 군더더기없는 상자갑같은 집들을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그저 물끄러미 시간날적마다 바라보았었다.
낮은 불록의 담장들과 블록 대신 키 작은 초록 나무의 울타리들이
낯선 이방인인 나에겐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다.
일본인들은 이웃과의 교류를 즐기지 않는다고 친구가 일러주었다.
집으로 놀러오세요 한다고 선뜻 한번만에 가면 실례라고 한다.
여러번 그 소리를 듣고 방문한 연후에도 차만 마시고 금새 와야지
아니면 밥까지 먹고갈래라는 말이 나온다고하니 참 씁쓸하여져서
한국인의 풋풋한 정서가 새삼 그리워져왔다.
다음날은 친구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잘된 식당에서
불고기 세트를 (돼지고기 여러부위,소고기 여러부위)와 술을 한잔 하였다.
그런데 홀써빙하는 아가씨는 음식을 날라올때마다 연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를 지칠줄 모르고 읊조린다.
손님을 맞이할때 90도로 몸을 숙이고 이라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치더니...
친절 하나만은 본받아야 할 큰 장점이지 싶었다.
또 다음날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온천엘 갔다.
이 온천은 작년 12월에 터널 공사를 하다가 온천수가 발견되어 세워져서
터널온천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편안한 자세로 넓은 탕속에 지긋히 몸을 담그고 벽을 대신한 넓은 유리창문을 통해
비 내리는 낮은산의 초목들을 바라보니 기분이 무척 상쾌하였다.
바로 옆에는 노천탕이 있었는데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선지 신기하게도
추위를 전혀 느낄수가 없었고 김이 모락모락 안개처럼 피어 오르는 온천수가
시냇물처럼 졸졸 실로폰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비젖은 대숲의 무리들이 참 아름다웠다.
12월 15일 토요일 집으로 오는날!
아침 창문을 열고 상큼한 풀잎 향기와 며칠만에 모처럼 습기없는 건조하고
투명한 공기를 마시며 코발트빛 하늘에 흰 뭉게 구름을 보았다.
이번 여행은 늦은 출산에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심약해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것이라 좀 더 멋진 곳으로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그애와 내가 며칠동안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우정이 죽는날까지 서로의 가슴 깊은곳에서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는
불빛으로 언제라도 서로의 영혼을 송두리째 보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는
사이로 남을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친구야!
너 아니? 넌 나의 영원한 연인이라는것을....
도모다찌야! 아이시떼마스.(친구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