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
친구
임정숙 (소렌)
'물푸레나무 그림자같던 여자, 해 저물녘이면 관악캠퍼스 음대 건물 쪽으로부터 악보며 책을 가슴에 안고 걸어 나오던 그 여학생은 늘 혼자였고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삼삼오오 떼지어 즐겁기만 한 그 나이 또래의 분위기와는 어딘지 다른, 음지식물처럼 보이던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 문화 기획면에 화가이며 미대 교수가 옛 친구 J를 소개한 일부분이다.
예술가가 자기공간 속에 깊이 침잠하여 숨어 작업하기엔 베를린만한 곳이 없어서 훌쩍 먼 이국 땅으로 날아가 작곡가로서의 둥지를 틀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반이었던 그 친구와 난 비슷한 키로 대부분 앞뒤로 앉게 되었다. 여학생 치고 과묵하기로는 나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아이 역시 말수가 적었고 수업 시간, 쉬는 시간엔 별일 없으면 거의 잠으로 때웠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단지 악보 들고 음악실에 갈 때만 생기가 넘쳐 보였지만 성적은 의외로 상위권을 맴돌았다.
그저 데면데면했던 그 친구와 가까워진 동기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도 아닌데 도시락을 미리 까먹던 J가 도중에 불쑥 최인훈의 ‘광장 ’이라는 낡을 대로 낡은 책을 어깨 너머로 툭 던졌다.
철학과의 대학생이던 남자 주인공, 운명적으로 겪게 되는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의 시대적인 고뇌,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나는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 심한 고독으로 인해 바다를 푸른 광장이라 생각하며 자살을 선택한다.
그 책의 주인공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철없던 십대에 한동안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학기초, 반 아이들을 서로 파악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임에도 쉽게 그 애가 아는 척을 했던 건 교내 백일장에서 심심찮게 입상한 유명세 때문이라 짐작을 했다.
걸핏하면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와야만 하던 과민증도 잊고 깊이 빨려 들었던 추억의 책, '광장'에서 왠지 모를 그 친구와의 동질감을 발견하고 쉽게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웃어도 J의 얼굴은 언제나 음영이 드리워진 늪처럼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한 떨기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그늘임을 안다.
친구의 오랜만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녀의 긴장감이 반갑고도 고마웠다. 베를린의 초콜릿가게에서 찍었다는 그녀의 분위기는 예술의 도시 자양분을 흠뻑 머금은 탓인지 이국적인 샤프함의 매력을 한껏 풍겼다.여전히 윤기나는 긴 머리에 남아 있는 옛 얼굴의 흔적은 세월을 훨씬 뛰어 넘어 우리가 사십 줄에 선 중년임을 잊게 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분식집을 함께 가거나 킬킬대며 전화를 자주 했던 살가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눈빛이 부딪히면 말이 없어도 따뜻한 교감이 오갔다. 스스로 외로움을 잘 타던 난, 그 아이와 한 교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러다 각자 다른 여고에 다니면서 이따금 몇 통의 편지가 오갔고 어느 겨울방학 처음으로 가 본 김포의 그 애 집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던 것 같다.
부친이 목사님이셨던 친구의 형편은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 한 번 가 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음감에 대한 비상한 감각은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었을까, 중학교 때부터 그 친구의 재능에 대한 평판과 조짐은 남달랐다. 대학 시절 이미 명성 있는 국제 작곡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통해 간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이상에 이어 베를린에서 또 한번 한국 작곡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는 친구의 오랜만의 소식은 가슴이 벅찼다. 이미 세계의 작곡계를 이끌 다섯명의 차세대 작곡가에 올라 위촉받은 작곡만으로도 2006년까지 스케줄이 잡혀 있을 정도라니 진심으로 뜨거운 포옹과 한아름의 꽃다발을 안긴다.
지금 난, 명색이 부끄러운 '작가'이지만 친구의 화려한 명성을 결코 시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예전 그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쪽지 편지 중 '독일의 뮌헨 거리를 걸으며 슈바빙족의 자유로운 인식을 만끽하고 싶노라' 는 막연한 동경을 꿈꾸었던 기억이 새롭다.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며 우리는 독일의 하늘을 얼마나 그리워 했든가. 하나의 예술이 곰삭아 숙성하기까지 끈기있게 기다려 준다는 베를린, 그 곳에서 갈망하던 어릴 적 꿈을, 예술 혼을 고스란히 불태우고 있는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보다 친구의 죽음이 왜 더 허망하다 했는지 이제야 알 듯 싶다. 사랑하던 친구가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비록 그것이 지독한 고뇌의 작업이더라도 삶의 존재가치를 느끼며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시대를 공존하는 내게도 삶의 힘을 더해 준다.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여자' 그녀의 광장에 축복을 빈다. 그것이 곧 나의 축복이므로...
임정숙 (소렌)
'물푸레나무 그림자같던 여자, 해 저물녘이면 관악캠퍼스 음대 건물 쪽으로부터 악보며 책을 가슴에 안고 걸어 나오던 그 여학생은 늘 혼자였고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삼삼오오 떼지어 즐겁기만 한 그 나이 또래의 분위기와는 어딘지 다른, 음지식물처럼 보이던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 문화 기획면에 화가이며 미대 교수가 옛 친구 J를 소개한 일부분이다.
예술가가 자기공간 속에 깊이 침잠하여 숨어 작업하기엔 베를린만한 곳이 없어서 훌쩍 먼 이국 땅으로 날아가 작곡가로서의 둥지를 틀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반이었던 그 친구와 난 비슷한 키로 대부분 앞뒤로 앉게 되었다. 여학생 치고 과묵하기로는 나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아이 역시 말수가 적었고 수업 시간, 쉬는 시간엔 별일 없으면 거의 잠으로 때웠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단지 악보 들고 음악실에 갈 때만 생기가 넘쳐 보였지만 성적은 의외로 상위권을 맴돌았다.
그저 데면데면했던 그 친구와 가까워진 동기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도 아닌데 도시락을 미리 까먹던 J가 도중에 불쑥 최인훈의 ‘광장 ’이라는 낡을 대로 낡은 책을 어깨 너머로 툭 던졌다.
철학과의 대학생이던 남자 주인공, 운명적으로 겪게 되는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의 시대적인 고뇌,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나는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 심한 고독으로 인해 바다를 푸른 광장이라 생각하며 자살을 선택한다.
그 책의 주인공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철없던 십대에 한동안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학기초, 반 아이들을 서로 파악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임에도 쉽게 그 애가 아는 척을 했던 건 교내 백일장에서 심심찮게 입상한 유명세 때문이라 짐작을 했다.
걸핏하면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와야만 하던 과민증도 잊고 깊이 빨려 들었던 추억의 책, '광장'에서 왠지 모를 그 친구와의 동질감을 발견하고 쉽게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웃어도 J의 얼굴은 언제나 음영이 드리워진 늪처럼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한 떨기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그늘임을 안다.
친구의 오랜만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녀의 긴장감이 반갑고도 고마웠다. 베를린의 초콜릿가게에서 찍었다는 그녀의 분위기는 예술의 도시 자양분을 흠뻑 머금은 탓인지 이국적인 샤프함의 매력을 한껏 풍겼다.여전히 윤기나는 긴 머리에 남아 있는 옛 얼굴의 흔적은 세월을 훨씬 뛰어 넘어 우리가 사십 줄에 선 중년임을 잊게 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분식집을 함께 가거나 킬킬대며 전화를 자주 했던 살가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눈빛이 부딪히면 말이 없어도 따뜻한 교감이 오갔다. 스스로 외로움을 잘 타던 난, 그 아이와 한 교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그러다 각자 다른 여고에 다니면서 이따금 몇 통의 편지가 오갔고 어느 겨울방학 처음으로 가 본 김포의 그 애 집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던 것 같다.
부친이 목사님이셨던 친구의 형편은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 한 번 가 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음감에 대한 비상한 감각은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었을까, 중학교 때부터 그 친구의 재능에 대한 평판과 조짐은 남달랐다. 대학 시절 이미 명성 있는 국제 작곡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통해 간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이상에 이어 베를린에서 또 한번 한국 작곡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는 친구의 오랜만의 소식은 가슴이 벅찼다. 이미 세계의 작곡계를 이끌 다섯명의 차세대 작곡가에 올라 위촉받은 작곡만으로도 2006년까지 스케줄이 잡혀 있을 정도라니 진심으로 뜨거운 포옹과 한아름의 꽃다발을 안긴다.
지금 난, 명색이 부끄러운 '작가'이지만 친구의 화려한 명성을 결코 시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예전 그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쪽지 편지 중 '독일의 뮌헨 거리를 걸으며 슈바빙족의 자유로운 인식을 만끽하고 싶노라' 는 막연한 동경을 꿈꾸었던 기억이 새롭다.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며 우리는 독일의 하늘을 얼마나 그리워 했든가. 하나의 예술이 곰삭아 숙성하기까지 끈기있게 기다려 준다는 베를린, 그 곳에서 갈망하던 어릴 적 꿈을, 예술 혼을 고스란히 불태우고 있는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보다 친구의 죽음이 왜 더 허망하다 했는지 이제야 알 듯 싶다. 사랑하던 친구가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비록 그것이 지독한 고뇌의 작업이더라도 삶의 존재가치를 느끼며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시대를 공존하는 내게도 삶의 힘을 더해 준다.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여자' 그녀의 광장에 축복을 빈다. 그것이 곧 나의 축복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