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가곡 작품에 대한 쓴 소리 한 마디
요즘, 가곡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는 예전만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의 가곡 창작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서
최근에 많은 창작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창작 열기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창작 가곡 작품 하나 하나를 전문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솔직히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양에 비해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홍난파, 현제명으로 상징되는 서양음악 1세대 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작곡 기술적 수준은 정말 눈 부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가곡으로 손꼽힐 만한 창작 가곡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작곡 기술이라는 게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가곡 작품들은 현란한 기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자 특유의 독창성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작곡자만의 독특한 음악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곡이 그 곡 같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 하자면, 모두 같은 성형외과에서 같은 방식으로 성형을 한 무개성한 얼굴 같습니다.
게다가 가곡 작곡가들의 문학적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詩에다 곡을 써도 거의 같은 스타일의 가곡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詩가 어떻든 이미 굳어진 내 작곡의 틀에다가 찍어 내겠다는 식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위 좀 잘 뜨는 가곡은 작품 그 자체보다 작곡자나 성악가의 명성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썩 좋은 가곡이 아니더라도 조수미처럼 유명 성악가가 부르면 거품이 낀 명가곡이 되는 식입니다.
가곡 애청자들의 음악적 이해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무개성한 가곡이라도 적당히 감미롭고, 화려하면 대부분 좋다고 합니다.
전문 성악가들의 한국가곡에 대한 가창력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한국가곡을 마치 이탈리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처럼 부릅니다.
한국어 딕션도 아주 엉망입니다.(특히 여자 성악가)
조수미의 한국어 딕션, 정말 엉망입니다.
조수미보다 명성은 훨씬 못한 소프라노 박순복이 딕션도 더 정확하고, 한국가곡도 잘 부르는 것 같습니다.
바리톤 윤치호 선생같이 한국어 딕션이 좋은 성악가분도 계시지만, 아무튼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가 생각합니다.
결론은, 가곡 작품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가곡 작품은 요즘 너무 많이 생산이 되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요즘 창작 가곡들, 너무 상투적이고, 과장스럽고, 현란하고, 무개성한 것 같습니다.
피아노 반주 처리도 한결같이 비슷비슷하고, 화성 처리도 엄격한 화성학 법칙에 갇혀 교과서적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작곡 매뉴얼적으로 볼 때, 아주 완벽하지만 무개성한 작품보다는
조금 서툴고 어설픈 것 같아도 독창성이 있는 가곡 작품이 차라리 한국 가곡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의 가곡 창작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서
최근에 많은 창작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창작 열기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창작 가곡 작품 하나 하나를 전문가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솔직히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작품의 양에 비해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홍난파, 현제명으로 상징되는 서양음악 1세대 시절에 비하면,
요즘의 작곡 기술적 수준은 정말 눈 부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가곡으로 손꼽힐 만한 창작 가곡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작곡 기술이라는 게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가곡 작품들은 현란한 기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자 특유의 독창성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작곡자만의 독특한 음악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가곡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곡이 그 곡 같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 하자면, 모두 같은 성형외과에서 같은 방식으로 성형을 한 무개성한 얼굴 같습니다.
게다가 가곡 작곡가들의 문학적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詩에다 곡을 써도 거의 같은 스타일의 가곡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詩가 어떻든 이미 굳어진 내 작곡의 틀에다가 찍어 내겠다는 식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위 좀 잘 뜨는 가곡은 작품 그 자체보다 작곡자나 성악가의 명성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썩 좋은 가곡이 아니더라도 조수미처럼 유명 성악가가 부르면 거품이 낀 명가곡이 되는 식입니다.
가곡 애청자들의 음악적 이해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무개성한 가곡이라도 적당히 감미롭고, 화려하면 대부분 좋다고 합니다.
전문 성악가들의 한국가곡에 대한 가창력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한국가곡을 마치 이탈리아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처럼 부릅니다.
한국어 딕션도 아주 엉망입니다.(특히 여자 성악가)
조수미의 한국어 딕션, 정말 엉망입니다.
조수미보다 명성은 훨씬 못한 소프라노 박순복이 딕션도 더 정확하고, 한국가곡도 잘 부르는 것 같습니다.
바리톤 윤치호 선생같이 한국어 딕션이 좋은 성악가분도 계시지만, 아무튼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가 생각합니다.
결론은, 가곡 작품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가곡 작품은 요즘 너무 많이 생산이 되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요즘 창작 가곡들, 너무 상투적이고, 과장스럽고, 현란하고, 무개성한 것 같습니다.
피아노 반주 처리도 한결같이 비슷비슷하고, 화성 처리도 엄격한 화성학 법칙에 갇혀 교과서적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작곡 매뉴얼적으로 볼 때, 아주 완벽하지만 무개성한 작품보다는
조금 서툴고 어설픈 것 같아도 독창성이 있는 가곡 작품이 차라리 한국 가곡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