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2)
우리 예술가곡의 문제점(2)
제2장 정확한 화성(1)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2009년 6월경 우리가곡의 전도사를 자처하시던 성악가 한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신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속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이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분이 안식년으로 독일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의 이야기다. 독일에서도 평소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어 그 딱딱한 독일 사람들에게 우리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정하고 연습도 충분히 해두었다. 그러나 그 연주회는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께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 독일에 있는 한국 제자들이 극구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곡으로 연주회를 열면, 화성도 맞지 않는 어설픈 우리가곡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한국을 망신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어느 성악과 교수에게 교과과정에 이태리가곡, 독일가곡, 프랑스가곡, 영미가곡은 넣으면서 왜 정작 우리가곡은 넣지 않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이태리가곡은 우리가 이태리 사람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고, 독일가곡은 독일 사람이 제일 잘할 터인데 우리는 우리의 혼과 얼이 깃든 우리가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화성도 엉망이고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도 문제지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우리 작곡가들도 문제다. 이제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도 100년이 훌쩍 지났다.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작곡가들에게 사명이 떨어졌다.
이미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영혼으로나마 독일에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리가곡이 교과과정에 당당히 들어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보면 자기 나라 말로 된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불행한 성악가들에게 정서에도 맞지 않고 그저 흉내만 내는 외국가곡에서 벗어나 우리의 정서로 작곡된 우리 것을 하게 한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화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 있다 하더라도 문법이 엉망이라 무슨 뜻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글을 좋은 글이라 하겠는가. 화성은 문법과 비슷하다. 그래서 작곡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장 기초인 화성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후기낭만시대까지의 어법, 즉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이 아닌 현대음악을 한다고 해서 이것을 모르고 한다면 과연 올바른 음악이 나올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하루아침에 어디에서 뚝딱 떨어지는 순간의 쇼가 아니라 적어도 천년을 넘게 흘러온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1) 이론과 실제,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를 다루고 다음호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이론과 실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을 모시고 동료학생들과 함께 그룹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께서 어떤 한 동료의 작품을 가리키면서 왜 화성법대로, 이론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썼느냐며 책망하신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어떻게 곡을 쓰는데 화성법대로만 쓰느냐며 이론은 이론이고 실제는 실제 아니냐며 항변을 하였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그럼 내기를 하자며,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집을 보시고 이 소나타집 속에 이론에 맞지 않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한부분이라도 있다면 내가 오늘 저녁을 내고, 만약 한부분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 동료학생에게 저녁 살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자 동료학생은 한참이고 소나타집들을 뒤지고는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모차르트 소나타집에 있는 아래의 부분을 지적하였다. (악보 1)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두 번째 마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그냥 보기에는 베이스의 A음이 오른손 선율 G#음과 엄청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어 아무렇게나 씌어져 화음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이 부분이 얼마나 정교하게 씌어져 있는지 설명해주셨다. 베이스에 쓰인 A음은 첫 번째 마디와 세 번째 마디에 I도 화음의 A음과 연결되는 비화성음인 저속음(Organ Point)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따라서 화음은 V7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 하시는 말씀이 대가들은 이렇게 많은 곡을 쓰면서 이론에 어긋나는 화음이 한 군데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짧은 곡 하나를 쓰면서 어떻게 이론과 상관없는 부분이 그렇게도 많은가 라고 말이다. 그 날 저녁식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나는 그 때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면 안 되는 거구나. 이론을 배우는 목적은 실제에도 그대로 적용하기위한 것이지 이론 따로, 실제 따로가 아니구나!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
우리가 낭만시대 이전까지의 화성을 이야기할 때 기능화성이라는 말을 쓴다. 기능화성이란 으뜸화음은 으뜸화음의 기능을 하고 딸림화음은 딸림화음의 기능을 하고 버금딸림화음은 버금딸림화음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같은 화음일 경우와 프레이즈가 끝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각자의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화음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손가락을 예로 든다면 손가락은 뼈는 뼈대로, 핏줄은 핏줄대로, 신경은 신경대로, 살은 살대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서 움직이고 자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연결되지 않고 끊어져 있다면 그 손가락은 살아서 움직이는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화음과 화음은 서로 연결되어야 살아서 움직이며 서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한마디로 대답한다. 클래식은 화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화음의 나열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만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작곡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아니겠는가. 대중음악은 C코드 G코드는 있어도 그저 그것을 나열할 뿐이고 코드를 연결하는데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클래식음악은 물론 코드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연결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화음의 연결이 몇 가지 이유로 이해되지 못하여 방치되고,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곡을 쓸 때 항상 화성법풀이에서처럼 4성부로 작곡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4성으로 되어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단성부로, 또는 2성, 3성으로 작곡하기도 한다. 4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을 쓰거나 36성부 합창곡이라 하더라도 대위법 음악이 아니고는 4성부 이상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성부가 많은가. 36성부가 있다고는 해도 4성부만 독립적인 성부이지 나머지 성부는 다 중복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음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병행과, 병행이 아닌 중복을 혼동하는 것이다. 중복이란 독립성이 없다는 뜻이다.
단성부란 독립적인 성부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악기를 동원하고 중복하여도 독립적인 선율이 하나뿐이면 단성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단성부로 시작한다. (악보 2)
전체 현악기의 합주와 클라리넷으로 위 선율을 함께 연주하지만 이 베토벤의 선율은 단성부이다. 병행1도, 8도가 아니라 그냥 중복인 것이다. 병행1도, 5도, 8도는 다른 성부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성부에서 병행1도, 5도, 8도로 쓰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이미 같은 성부로 독립성이 없는 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끔 피아노곡에서 습관적으로 왼손을 옥타브로 중복하여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두고 학생들이 나에게 이것도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을 한다. (악보 3)
그러나 이 경우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같이 연주하면 옥타브 연주가 되는 것처럼 2개의 독립된 성부가 아니고 단순히 한 성부의 중복이므로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성으로 작곡되어 있는 부분이라면 2성만 독립적이면 된다. 4성에서는 4성부만 독립적이면 된다. 나머지는 1도와 8도로 중복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가들도 다 이론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병행1도, 5도, 8도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여, 독립적인 성부임에도 불구하고 병행1도, 5도, 8도를 함부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곡을 쓰는 사람은 우선 지금 쓰고 있는 곡 부분의 형태가 단성인지, 2성인지, 4성인지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4성부로 작곡하는 부분에서 그 4성마저 서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화성법에서 금했던 병행1도 5도, 8도가 나온다면 화음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나열만 되어 본래 화음의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곡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성부침해와 화음의 길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왜냐하면 이것도 화음의 연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몇 가지 예외조항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성부침해를 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화음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는 펼친화음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가 없다.
(악보 4)
(악보 4)에서처럼 I도 화음에서 V7도 화음으로 진행하는데 있어 (a)처럼 진행하면 성부를 침해하고 화음의 길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화음도 서로 연결도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b)처럼 V7화음에서 화성법에서 배운 대로 5음을 생략하고 진행하면 음형도 앞의 I도 화음의 모방이 되고 성부를 침범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제일 밑음부터 차례로 보면 Db은 Ab으로, Ab은 제자리에, Db은 C로, F는 Gb으로, Ab은 제자리에 화음의 길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펼친화음도 (b)처럼 화음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여기까지 제2장 정확한 화성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다음호에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제 “제발 바르게 작곡하여”우리가곡이 독일에서, 혹은 우리나라 성악과 교수들에게 조차 무시당하여 대학교과과정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음악저널 2011년 5월호)
제2장 정확한 화성(1)
정덕기(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2009년 6월경 우리가곡의 전도사를 자처하시던 성악가 한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신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속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이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분이 안식년으로 독일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의 이야기다. 독일에서도 평소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어 그 딱딱한 독일 사람들에게 우리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정하고 연습도 충분히 해두었다. 그러나 그 연주회는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께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 독일에 있는 한국 제자들이 극구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곡으로 연주회를 열면, 화성도 맞지 않는 어설픈 우리가곡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한국을 망신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어느 성악과 교수에게 교과과정에 이태리가곡, 독일가곡, 프랑스가곡, 영미가곡은 넣으면서 왜 정작 우리가곡은 넣지 않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이태리가곡은 우리가 이태리 사람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고, 독일가곡은 독일 사람이 제일 잘할 터인데 우리는 우리의 혼과 얼이 깃든 우리가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화성도 엉망이고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도 문제지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우리 작곡가들도 문제다. 이제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도 100년이 훌쩍 지났다.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작곡가들에게 사명이 떨어졌다.
이미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영혼으로나마 독일에서 우리가곡으로만 연주회를 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리가곡이 교과과정에 당당히 들어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보면 자기 나라 말로 된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불행한 성악가들에게 정서에도 맞지 않고 그저 흉내만 내는 외국가곡에서 벗어나 우리의 정서로 작곡된 우리 것을 하게 한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한 화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 있다 하더라도 문법이 엉망이라 무슨 뜻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글을 좋은 글이라 하겠는가. 화성은 문법과 비슷하다. 그래서 작곡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가장 기초인 화성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후기낭만시대까지의 어법, 즉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능화성에 의한 음악이 아닌 현대음악을 한다고 해서 이것을 모르고 한다면 과연 올바른 음악이 나올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음악은 하루아침에 어디에서 뚝딱 떨어지는 순간의 쇼가 아니라 적어도 천년을 넘게 흘러온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1) 이론과 실제,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를 다루고 다음호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이론과 실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을 모시고 동료학생들과 함께 그룹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께서 어떤 한 동료의 작품을 가리키면서 왜 화성법대로, 이론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썼느냐며 책망하신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어떻게 곡을 쓰는데 화성법대로만 쓰느냐며 이론은 이론이고 실제는 실제 아니냐며 항변을 하였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그럼 내기를 하자며,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집을 보시고 이 소나타집 속에 이론에 맞지 않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한부분이라도 있다면 내가 오늘 저녁을 내고, 만약 한부분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 동료학생에게 저녁 살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자 동료학생은 한참이고 소나타집들을 뒤지고는 이론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모차르트 소나타집에 있는 아래의 부분을 지적하였다. (악보 1)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두 번째 마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그냥 보기에는 베이스의 A음이 오른손 선율 G#음과 엄청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어 아무렇게나 씌어져 화음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이 부분이 얼마나 정교하게 씌어져 있는지 설명해주셨다. 베이스에 쓰인 A음은 첫 번째 마디와 세 번째 마디에 I도 화음의 A음과 연결되는 비화성음인 저속음(Organ Point)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따라서 화음은 V7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또 하시는 말씀이 대가들은 이렇게 많은 곡을 쓰면서 이론에 어긋나는 화음이 한 군데도 없는데 여러분들은 짧은 곡 하나를 쓰면서 어떻게 이론과 상관없는 부분이 그렇게도 많은가 라고 말이다. 그 날 저녁식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나는 그 때 큰 깨달음이 있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면 안 되는 거구나. 이론을 배우는 목적은 실제에도 그대로 적용하기위한 것이지 이론 따로, 실제 따로가 아니구나!
2) 병행 1도, 5도, 8도의 의미
우리가 낭만시대 이전까지의 화성을 이야기할 때 기능화성이라는 말을 쓴다. 기능화성이란 으뜸화음은 으뜸화음의 기능을 하고 딸림화음은 딸림화음의 기능을 하고 버금딸림화음은 버금딸림화음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같은 화음일 경우와 프레이즈가 끝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각자의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화음의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손가락을 예로 든다면 손가락은 뼈는 뼈대로, 핏줄은 핏줄대로, 신경은 신경대로, 살은 살대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서 움직이고 자기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연결되지 않고 끊어져 있다면 그 손가락은 살아서 움직이는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화음과 화음은 서로 연결되어야 살아서 움직이며 서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한마디로 대답한다. 클래식은 화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화음의 나열로 이루어진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것만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작곡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형태가 아니겠는가. 대중음악은 C코드 G코드는 있어도 그저 그것을 나열할 뿐이고 코드를 연결하는데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클래식음악은 물론 코드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연결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화음의 연결이 몇 가지 이유로 이해되지 못하여 방치되고,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곡을 쓸 때 항상 화성법풀이에서처럼 4성부로 작곡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4성으로 되어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단성부로, 또는 2성, 3성으로 작곡하기도 한다. 4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단을 쓰거나 36성부 합창곡이라 하더라도 대위법 음악이 아니고는 4성부 이상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성부가 많은가. 36성부가 있다고는 해도 4성부만 독립적인 성부이지 나머지 성부는 다 중복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음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병행과, 병행이 아닌 중복을 혼동하는 것이다. 중복이란 독립성이 없다는 뜻이다.
단성부란 독립적인 성부가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악기를 동원하고 중복하여도 독립적인 선율이 하나뿐이면 단성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단성부로 시작한다. (악보 2)
전체 현악기의 합주와 클라리넷으로 위 선율을 함께 연주하지만 이 베토벤의 선율은 단성부이다. 병행1도, 8도가 아니라 그냥 중복인 것이다. 병행1도, 5도, 8도는 다른 성부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성부에서 병행1도, 5도, 8도로 쓰면 독립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이미 같은 성부로 독립성이 없는 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끔 피아노곡에서 습관적으로 왼손을 옥타브로 중복하여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두고 학생들이 나에게 이것도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질문을 한다. (악보 3)
그러나 이 경우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같이 연주하면 옥타브 연주가 되는 것처럼 2개의 독립된 성부가 아니고 단순히 한 성부의 중복이므로 병행8도이어서 금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성으로 작곡되어 있는 부분이라면 2성만 독립적이면 된다. 4성에서는 4성부만 독립적이면 된다. 나머지는 1도와 8도로 중복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가들도 다 이론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병행1도, 5도, 8도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여, 독립적인 성부임에도 불구하고 병행1도, 5도, 8도를 함부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곡을 쓰는 사람은 우선 지금 쓰고 있는 곡 부분의 형태가 단성인지, 2성인지, 4성인지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4성부로 작곡하는 부분에서 그 4성마저 서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화성법에서 금했던 병행1도 5도, 8도가 나온다면 화음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나열만 되어 본래 화음의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곡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성부침해와 화음의 길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왜냐하면 이것도 화음의 연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몇 가지 예외조항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성부침해를 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화음의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는 펼친화음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가 없다.
(악보 4)
(악보 4)에서처럼 I도 화음에서 V7도 화음으로 진행하는데 있어 (a)처럼 진행하면 성부를 침해하고 화음의 길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화음도 서로 연결도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b)처럼 V7화음에서 화성법에서 배운 대로 5음을 생략하고 진행하면 음형도 앞의 I도 화음의 모방이 되고 성부를 침범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제일 밑음부터 차례로 보면 Db은 Ab으로, Ab은 제자리에, Db은 C로, F는 Gb으로, Ab은 제자리에 화음의 길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펼친화음도 (b)처럼 화음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여기까지 제2장 정확한 화성의 서론에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보았다. 다음호에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 3) 비화성음의 문제, 4) 4.6화음을 포함한 불협화음 해결의 문제, 5) 다양한 화음, 6) 다양한 전조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제 “제발 바르게 작곡하여”우리가곡이 독일에서, 혹은 우리나라 성악과 교수들에게 조차 무시당하여 대학교과과정에서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음악저널 201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