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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선생님...

바다 10 1208
부끄러운 선생님

새학기가 시작되어 할 일이 많아 이리저리 급히 뛰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 옮긴 교실이 시건장치를 제대로 할 수없어 다른 교실을 갈 땐 핸드백을
가지고 다니거나 교실 밖의 문을 잠그고 다녀야만 했다.

바로 어제의 오후의 일이다.
네 시에 입학식 준비를 위해 반 편성 자료를 전지에다 쓰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이라고 하여 나가는 도중에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내 교실을 기웃거리고
밖에서 서성이는 것이었다.

“너, 뭣하러 여기에 왔니? 왜 남의 교실을 내다보고 그러지? 얼른 가거라.”
그 아이는 뭐라고 말할 듯하다가  무안한 듯이 나와 반대쪽으로 사라져갔다.

부장교실에 간 나는 의기양양하게
“교실을 비울 때는 가방 단속을 잘 해야겠네요. 어떤 어리숙한 녀석이 제 교실을
기웃거리고 서성이네요.”
“그래요. 잃어버리면 자기만 손해지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  주회 때 1학년 교실을 도씨가 다 뒤져 신용카드와 현금을
잃어버린 선생님들이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오늘도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그 핸드백 단속을 꼭 하면서
따뜻한 물을 마시기 위해 교무실에 갔다가 물이 부족하여 행정실로 들어갔다.
 
거기엔 작년부터 군복무를 하기 위한 공익근무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공부도 하면서 근무하는 모습이 한가하다 못해 세상이 아주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석지로 가서 물을 따르는데

“선생님, 혹시 H초등학교에 안계셨어요?”
“그래요, 근무했었지요.”
“저는 그 학교를 나왔습니다.”
“왜요? 아! 어제 우리 교실을 내다보던 그 학생이네? 우리학교에서 공익근무를 하는가?”
“네, 선생님께서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저 수일입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노래 잘 하는 아이들을 예술제에도 내보내곤 했는데
그 아이는 광주의 이름있는 호남예술제에서 독창으로 은상을 받았던 아이였던 것이다

“ 너 노래를 잘 불렀지?”
“기억난다. 최수일...”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키가 작아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다는  그 제자가 어제 혹시 선생님인 것 같아 확인해 보려고 내 교실 주변을 서성거렸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간음하다 들킨 여자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선생노릇도 못한 주제에 제자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의심을 하게 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수일아!
이 부끄러운 선생님을 용서해다오‘


10 Comments
수선화 2003.03.05 00:41  
  저도 교실을 비울땐 가방부터 챙기는 습관이 있어요.

빈 교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도난 사건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귀찮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왜 선생님들이 학교 안에서도
가방을 챙겨가지고 다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끔은..  보는 눈이 신경쓰일때가 있지요.

바다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주변에서 본 많은 일들이
스쳐가기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얼마나 미안하셨을지도
그대로 제게 전해지는군요.

저도..
성인이 되어 찾아오는 제자 선뜻 알아보지 못해서
등에서 식은 땀이 날때가 있거든요.


음악친구 2003.03.05 00:46  
  그게 어디 바다님 잘못이겠어요~
세상이 하도 요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는 곳에서  불쾌한 일이 생길수 있기에 조심하는것은 당연한 거예요

마음속의 죄도 죄이기에 오히려 제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어린 눈으로 봤다는 바다님의 고백성사가  바다님을 더  진실된 사람으로 보이게 하네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조심할것은 조심해야~
가져간 사람보다 잃어버린 사람이 더 잘못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수일이는 앞으로 군생활이(?) 편안해 지겠는걸요~?
ㅎㅎ~
소렌 2003.03.05 02:43  
  이젠 잊지 못할 제자가 되겠네요.

바다 2003.03.05 07:18  
  수선화님!.음악친구님! 소렌님!

사실 이 글을 올리기 전까지 마음이 몹시도 무거웠습니다
.
유비무한의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제자가  공익근무를
마치는 날까지 마음으로부터 지은 죄를 다 갚으려고 합니다.
 
한 번 스치면 잊어버리기 쉬운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 10년이
지난 뒤의 담임을 알아보려고 노력한 그 제자가 이제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제자로 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평화 2003.03.05 08:24  
  바다님의 글을 읽으니 꼭 고해성사를 듣고있는 느낌이 듭니다.
천주교신자들은 이제 부활절을 맞아 곧 판공성사
(성당에서는 일년에 2번 신자로서 의무)를 보아야할터인데
저도 요즘 말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지은죄를
살피고 알아내느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볼 생각을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으이그 그러게 평소에 신경써서 좀 더 잘살껄...*^-^*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죄를 안짓고 살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변명처럼 드네요.
하지만 자신의 죄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니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
아름다운 마음의 바다님께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들공주 2003.03.05 08:26  
  왜 눈물이 날까요?

선생님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선생님의 미안함이 느껴지고,  따뜻함이 느껴지고........
수일군도 이해할겁니다.
가객 2003.03.05 09:37  
  수일이가 이상한 손님으로 오인받을 행동을 했네요.
젊은 남자가 교실 주위를 배회하면서 엿보면
영락없는 절도범으로 오해받겠지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말로 표현할 때는 신중해야 하는 점은 있겠지요.
그 게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 녀석 배회하는 대신에
자연스럽게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당당하게 물어 볼 일이지
바보같이 교실 주변을 얼쩡거려 가지고
잠시나마 은사님을 불편하게 만든 착한 바보이네요!
바다 2003.03.05 11:32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고해성사 듣기만 해도 가슴이 일렁이는 우리만이 느끼는 희열 그대는 알고 있으리!!

서들공주님~~!
그 드넓은 서녘의 들판처럼 넓은 마음을 지닌
공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가객님~!
말로 표현할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점
깨닫게 해주셔셔 감사 드리며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진정한 마음을 주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렵니다

위의 세 분 감사드립니다
신재미 2003.03.06 08:56  
  바다님은 솔직하고 자상한 좋은 선생님이세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마음 나누기를 보니 제 마음이 행복해 집니다
사회 구성에는 불신도 있지만
바다님과 제자처럼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아름다움도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바다 2003.03.06 10:36  
  신재미님!
이렇게 방문하실 때마다 고운 마음 남겨 주셔서 고마워요
서울에서 광주 멀지 않아요
오시면 반갑게 맞이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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