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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그리고 외로움

碧嶽 5 1528
사십은 어디를 향해서, 붙잡는 이 하나도 없건만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바람 부는 날이면 가슴 시리게 달려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친 듯이
가슴이 먼저 빗속의 어딘가를 향해서 간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 버리는 줄 알았는데
겨울의 스산한 바람에도 온몸엔 소름이 돋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육체는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 가지만
시간을 초월한 내면의 정신은
새로운 가지처럼 어디론가로 새로운
외면의 세계를 향해서 자꾸자꾸 뻗어 오르고 싶어 한다.

나이를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나이.
체념도 포기도 안 되는 나이.
나라는 존재가 적당히 무시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시기에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와 버린 나이.

피하에 축적되어 불룩 튀어나온 지방질과
머리 속에 정체되어 새로워지지 않는 낡은 지성은
나를 점점 더 무기력하게 하고,
체념하자니
지나간 날이 너무 허망하고,
포기하자니 내 남은 날이 싫다 하네.
하던 일 접어 두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머무른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꿈을 먹고 산다거나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난 싫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받아 들이고 싶지가 않다.

사십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
그것은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젊은 날 내 안의 파도를
그 출렁거림을 잠 재우고 싶었기에
사십만 넘으면 더 이상 감정의 소모 따위에

휘청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기에.
이제 사십을 넘어 한살 한살 세월이 물들어 가고 있다.

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기력하기만 한데...
아마도 그건 잘 훈련되어진
정숙함을 가장한 완전한 삶의 자세일 뿐일 것 같다.

마흔이 지나 이제야 어떤 유혹에든
가장 약한 나이가 사십대임을 비로서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더없이 푸른 하늘도
회색 빛 높게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 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
끝없는 내 마음의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이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사소한 것 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아쉬움이 되어 버리는 거
결코 어떤 것에도 만족과 머무름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슬픔으로 남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이제 나는 꿈을 먹고 사는게 아니라 꿈을 만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내 진심으로 사랑을 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그런 나이로 진정 사십대를 보내고 싶다.

사십대란 불혹이  아니라 흔들리는 바람이고,
끝없이 뻗어 오르는 가지이다.


누가 사십대를 바람이라 했는가?  오십대의 외로움.
      - 책 (아버지) 에서 -
5 Comments
미리내 2002.12.08 07:47  
  안녕하세요^^
그러네요,,40대는 바람 50대는 외로움,,,,,,,,,,,,,,,,,보다는 그리움이 좋을것 같습니다^^
불혹에 나이라고들 하는 이싯점이,,
어쩌면  제일 멋지게 살수있는  적절하기 시기는 아닌지요^^

나도 젊은시절이 있었건만,
어느새 머리는 호호 은파로 변하여가고,,  옛말씀이 하나 틀리것 같지않습니다,

젊다고 자랑마라는 .
사람은 때기 오면 누구나  맞아야하는  늙음이 있지요,,

벽악님^^
가객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젠틀하시고,, 그러나 너무 말씀을 아니하셔셔,,

이번에도 얼굴을 내밀여 주시려나(??) 바램을..
음악친구 2002.12.08 10:21  
  어쩌면 좋아요~
이제 나도 사십대에 점어 들텐데~

오는 바람을 다 맞아야 하나~
바람불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야 하나~

10년전 스물 어홉때~
혼자가 싫어서 짝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서른 아홉~
짝도 있고 , 그 짝하고의 사이에 날 엄마라고 부르는 애들이 셋이나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난 10년동안 애만 낳았나봅니다.
ㅎㅎ~

가끔은 친구가 그립고,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립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어 있었던 내 한 구석이 사랑하고 싶어 집니다.

내 사십대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

10년뒤에 말씀 드릴께요.

부처님 미소같은 벽악님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 미소 이번에도 볼수 있겠죠?
碧嶽 2002.12.08 13:30  
  미리내님 
그리움......      그것은 60대로 아껴두었죠. 
구직난, 명예퇴직등 사회적 분위기인지, 과도한 현대인의 스트레스인지 
요즈음 중장년층의 구분이 없어지는것 같습니다.층이 넓어지는 만큼 
겉 늙은이가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죠. 혹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송년모임은 일정이 빠듯해서, 그러나 최대한 시간을 맞추려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기 바라며.
평화 2002.12.08 16:13  
  벽악님! *^-^*
글이 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두번이나 읽어보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임은 저도 어쩔수없는 불혹이라선가봅니다.
공자처럼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유혹에 초연할수 있으리라
감히 저 자신을 믿었는데 인생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결코 무어라
말할수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벽악님!
2002년 남은 시간들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향기로운 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선물로 서정윤의 시 한수 놓습니다.

바람이여.

바람이고 싶어라
그저 지나가 버리는
이름을 정하지도 않고
슬픈 뒷모습도 없이
휙하니 지나가버리는 바람
아무나 만나면
그냥 손잡아 반갑고
잠시 같은 길을 가다가도
갈림길에서
눈짓으로 헤어질 수 있는
바람처럼 살고 싶어라
목숨을 거두는 어느날
내 가진 어떤것도 나의것이 아니고
육체마저 벗어두고 떠날때
허허로운 내 슬픈 의식의 끝에서
두손 다 펴보이며 지나갈 수 있는
바람으로 살고 싶어라
너와 나의 삶이 향한 곳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슬픈 추억들 가슴에서 지우며
누구에게도 흔적 남기지 않는
그냥 지나는 바람이어라
바람이어라.
수선화 2002.12.09 00:33  
  벽악님!..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그리도 말씀 없으시던 벽악님께도 이런 마음이 드셨나 해서요..

그런데 끝까지 디 읽어보니 저도 읽었던 책 ' 아버지'  중에서
옮겨 놓으신 글 이었더군요.
제가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IMF로 고개숙인 아버지가 많았던
5~6년 전 삼십대 후반이어서 였는지..

그땐 그리 가슴에 와 닿지 않던 글들 이었는데
이제 사십대~  그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 다시 이 글을 대하고 보니
왜 이리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걸까요..

친구와 한번은 우스개소리로 이런 농담을 했었는데..
누가 사십대를 '불혹' 이라 말했던가..
불혹이 아니라 온통 '유혹'으로 넘치는 것을..

그만큼 사십대엔 보다 '열린가슴'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벽악님께서도 분명 많은 부분 공감하고 지나셨기에
이 글을 올리셨으리라..  제 나름대로 추측해도 괜찮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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