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열애중
음악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우리 남편이
요즘 사랑에 빠졌어요.
오랜 세월 저만 알고 저만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사랑에 빠졌는데 왜 그렇게 좋아 보이는지...... .
질투를 안 하느냐구요?
천만에 말씀! 오히려 응원해 주죠.
제가 무슨 마음이 태평양 바다 같다고요?
그건 더더욱 아니지요.
그는 요즘 저녁만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요.
그가 그리워하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예요.
제가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내 마음의 노래를 비롯한
여러 카페나 들꽃 사이트, 문학사이트에서 기쁨을 얻어가는 동안
컴퓨터에대한 편견과 기계치인 제가 참 예외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염려를 하곤 했지요.
책보다 컴퓨터에 시간을 할애한다고 걱정하면서 별관심이 없더라구요.
자신이 맡아 있는 남성합창단 카페만 이용하구요.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상 액셀은 사용하지만
인터넷이나 타자는 아직 서툰 내 실력을 못 따라오는데
요즘은 속칭 독수리 타법으로 열심히 그 홈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한답니다.
바로 고교동문회 홈 폐이지를 알게 된거지요.
30년 전 고교 동기들과의 만남이 그를 행복한 열중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청운의 푸른 꿈을 간직했던 파란 풋사과 같았던
순수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가족을 위해 가정만 생각하며 사는 줄 알았던 그도 오랜 세월
그렇게도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고 마음에 그 친구들을 담아 두었다가
오랜 만에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만나니
그의 표현대로 눈물이 날 만큼 보고 싶은 그의 친구들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지요.
철없이 17세로만 사는 감수성 예민한 아내랑 사는 것도 버거워 그냥 사는 일에 적응도 잘하고 무엇이던 든든히 잘해주는 울타리 같은 남편이었는데 지금 그의 모습이 너무 생경해요.
무슨 기념일 한번 안 잊고 꽃다발을 내밀고 깜짝 이벤트도 잘하고 장미와 메시지 담긴 카드도 다 철없는
아내를 위한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이렇듯 저는 늘 제 감정만 중요했나봅니다. 반성하고 있어요.
바쁜 일상을 지나면서 지방에 사는 연고로 늘 있는 동창회도 가고 싶다는 내색을 안 하고
가끔 동문 모임에 가라고 하면 다음에 가겠다고 하여 별 관심도 없는 줄만 알았던 무심한 아내였네요.
요번엔 좀 가도록 도와줘야지 해도 여러 가지 바쁜 시간을 쪼개기도 쉽지 않았고
삶의 갖가지 무늬들 속에 여러 질곡을 지나오면서 언제 그리
옛 친구들을 만나볼 여유가 있었어야지 말이지요.
누구에게나 지나온 삶은 아쉽고 그리운 것이지요.
고교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50이 된 나이에도 마음 설레고 가슴 뛰는 마음이 그 만큼의 세월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잖아요.
그의 시인 친구 말대로 갈래 머리에 교복이 깨끗하던 여학생을 마음에 두고
설레다가 말도 못 부치던 연두 빛 시절도 있었겟지요.
제 남편은 절대로 마음 설레어 본적이 없대요. 사랑을 느낀 사람도 저뿐이라네요..
늘 제가 그의 첫사랑이라고 그러지요. (엄처시하라 그런지...)
그래 제가 그랬지요. 참 매력 없다고 유도 심문을 해도 언제나 안 넘어가요.
누군가 그러데요.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 사람과는 깊은 대화가 안된다고...... .
그 시절엔 남여 공학이라도 항상 존칭을 쓰고 숫기 없는 남학생들은
새침한 여학생들에게 눈도 한번 못 맞추고 말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
그런 남학생들이 제 경험엔 귀엽고 어려 보였었는데
30년 세월에 이제 그들은 이성인지 동성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웃고 애기하며
그 시절을 공유 했던 만발한 추억들로 게시판이 예쁘고 화기애애하더군요.
남편 친구 분들을 좀 알고 있는데 외국에 있는 분들도 많고 다양한 삶을
열심히 성실히 사는 분들이지요.
학교 동문 게시판엔 올빼미처럼 매일 밤을 지키는 분들도 있고
다양한 기획들도 하고 뒤돌아 본 세월이 아쉽고 남은 세월
친구들과 아름다운 삶을 나누고 살고자 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어요.
특히나 제 남편은 형제가 없는 무매독자 인데 그간 먼 타관에 와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제 배려가 모자란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오더군요.
“그래, 그래 많이 연애하세요.
컴퓨터도 양보하고 태그도 알려 드릴 테니 좋은 글도 올리고 하세요.“
하면서 속 넓은 아내인척 합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눈이 생기가 돌고 빛이 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30년간의 그리움을 잘 길어 올려 새로운 기쁨의 친구 관계를 만들라고
말할 거예요. 여름 숲의 숨소리를 밤이 되어야 느낄 수 있듯이
세월이 흐른 뒤엔 조용히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남은 생을
적당히 그리워하고 감동과 인정이 베여 있는 옛 친구들과의 만남도
삶의 빛나는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마음이 깊은 우리 남편의 열애를 보고 깨달았답니다.
아참! 남편 고등학교 동기중에 음악하는 분들이 여럿 있는데
<내 마음의 노래>를 알려줘야겠어요.
남편의 그립던 친구들과의 열애 장면 또 다른 매력인데요. 왜 제가 질투하겠어요?
저도 그이의 친구들과 같이 친구가 된 기분으로 그 동문 게시판을
자주 기웃거리거든요.
가끔은 내가 모르는 남편의 푸른 시절을 엿보는 것도
비 오는 날 엷은 커텐을 살며시 열고 안개 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듯 조용한 기쁨이예요.
저도 오늘 그이가 모르는 제 푸른 시절의 그립던 친구들과 채팅 좀하고 편지도 쓰고
옛날을 추억하고 미소 지으며 잠들려고 합니다.
내 마음의 노래 동호회원님들의 푸른 시절의 추억에 잠겨보세요.~
그리움의 강물이 흐르고 있을 거예요.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