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바람 갈잎의 노래 - 제2회 가곡의 날 기념 -
* 갈바람 갈잎의 노래 - 제2회 가곡의 날 기념 -
2006. 11. 13. 대구.C.C. - 사진 조화복 -
박범철 가곡교실 지도 교수님
2006. 11. 13. 대구.C.C. - 사진 조화복 -
이정숙님 내외분(뒷모습). 권선옥 시인. 정우동 선생님. 홍양표 교수님 내외분.
-*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 *-
권선옥(sun)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서는 박수 소리부터가 다르다.
테너 박범철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해 겨울 방학 때이다.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에 시작을 잘 하지 본인으로서는 김형규(뭉게구름) 교수님의 열정적인 이끌림에 따라 영남이공대학 평생교육원의 가곡교실을 방문한 것이다.
이항구 작시 이수인 작곡의 ‘불타는 강대나무’를 부르신 분으로 이수인 선생님으로부터 ‘불타는 강대나무는 박범철 선생이, 제일 잘 불렀어.’란 말을 들은 터이고, 같은 대구에 사시는 분이란 생각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평일 오전이라 인원수가 가장 적다는 김형규 교수님의 사전 정보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비실비실 졸면서 갔던 터라 잠이 확 달아났다. 예상과는 달리 강의실을 꽉 메운 인원에 그만 위축이 된 것이다. 주로 어르신네들이었지만 40대의 젊은 분들도 그 인원에 비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가곡수업이 진행되었다.
박범철 선생님께서는 다섯 개 반의 가곡교실을 운영함과 동시에 대구 북구합창단 지휘를 맡은 탓에 피로하신 듯 목소리가 약간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전공은 다르지만 학번이 다섯 해 정도는 빠른 대학 선배님들과 곱게 차려 입으신 교장 퇴직하신 선생님들께서 작시자를 직접 만나서 돼서 영광이라고 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셨다. 평소 철딱서니 없이 촐싹거리던 나로서는, 표정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영 체질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날 느낀 점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부르는 가곡 작시를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수도 있다는 소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던 그 날의 깨침도 일상에 휩쓸려서 곧 망각해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던 터에, 다시 박범철 가곡교실 회원님들을 만난 것은 대구어린이회관 꾀꼬리 극장에서였다.
<황홀한 기다림>과 아직 음반 출시도 안 된 <팔공산>을 연주하신다는 연락을 받고는 마산에 계시는 황덕식 선생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박범철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월요일반>, <목요일반>, <금요일반>, <시지반> 그리고 <나토얀반>의 다섯 개 반 중에서 두 개 반의 합동 발표회라고 했다. 그런데 연주회장인 ‘꾀꼬리 극장’이 가득 메워졌다.
옆자리에 앉으신 황덕식 선생님께서는 연이어 뒤돌아보시면서, “아~따, 사람 많다!”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박수소리도 우렁찼다.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인파와 박수 소리만으로도 기분이 상승한 터였다. 연주회가 끝나자, 작곡가와 작시자 소개하는 이름을 듣고는, 옛날 알고 지내던 어떤 부부가찾아왔다. 벼리엄마 맞지 싶었다며, 쭉쭉 뻗어나가 유명해지라는 인사말을 하고 갔다.
정성어린 선물과 엽서까지 받은 두 번째의 만남 이후, 지난 달 10월 13일 북구합창단의 제 11회 정기연주회가 <대구시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그리고 11월 9일 <나토얀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1주년 기념음악회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 근처의 <대구시서구문회회관>에서 열렸다.
두 연주회 모두 인파와 꽃물결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최근 몇 년 동안(2003년 이후) 우리 가곡이 연주되는 공연장을 가면 왠지 허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박범철 가곡 교실 회원>들이 모인 곳에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허전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가곡 축제가 열리는 곳이었다.
2006년 11월 13일 대구C.C.에서 박범철 가곡교실 회원 중심으로 ‘제2회 가곡의 날(11월 13일)’ 기념 <갈바람 갈잎의 노래>행사가 열렸다.
여유가 없는 하층민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처음 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지각대장이지만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경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자, 찾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우리나라의 5대 컨트리클럽인 40만평의 27개 홀이 있다는 대구C.C.로 들어서는 숲 속 길에 이르자 가을의 정취와 도시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시원스러움을 동시에 느낀 탓일까. 함께 탄 딸과 딸의 친구들이 환호를 했다.
한 테이블에 10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박범철 가곡 교실 회원들이 모인 곳에 가면 박수소리부터 다르다,’는 본인의 소감 피력에 정면 맞은편에 앉은 목요반 여미량 회장님으로 추정되는 예쁘신 회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박수 소리 연습해~예.(‘연습해요’의 대구 버전) ^^*”
“......!” (수준 높은 위트로 생각하여 쳐다보는데.)
“정말이라예. 우리 수업 시간에 박수 연습합니더. ^^*”
“...... !” (농담인가 보다 했다가 정말인가 보다 해서 눈이 더 커졌다.)
“맞시임더. 이렇게 손바닥에 홈이 파이게 해서 공명이 생겨서 울리도록...... .”
(실제 시범을 보이는 남자 회원님의 말씀에 정말인가 보다 해서 안 죽을 만큼 웃어대는 별헤아림.- 위의 사진-)
2층과 3층에서 식사를 마친 200명 가까운 인원들이 모두 1층 로비로 모이자 행사가 진행되었다.
*박범철 지도 교수님의 '가곡의 날 기념' 인사
*장소와 식사를 후원하신 대구C.C. 우기정 회장님의 축사
*‘산들바람’, ‘고향의 노래’를 비롯한 우리 가곡 함께 부르기
*이동균님(동호회원)과 오아현(경북대4년)의 독창
*‘애모’, ‘팔공산’의 또 다시 함께 부르기
*내빈 소개
*박범철가곡교실 준비위원 소개
(회장단- 여미량님, 김수경님, 이정숙님, 서정숙님. 이경자님)
추가하여 박범철가곡교실 회원이신 정사랑양 어머님의 인사 시간도 있었습니다.
정사랑양은 이번에 만 13세의 나이로 계명대 러시아어과에 입학하는,
배우고 싶은 학문 더 일찍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이랍니다.
행사가 끝나고, ‘가곡에 너무 빠지지 말자’란 주제로 서로 견제하기 위해서 다시 모인 사람들.
새벽 3시 10분이 넘어도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밖에서 날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신 ‘범철 교주님(?)’ 해산할 것을 종용하자, 어떤 분이 화장실 가신다며 시간을 더욱 연장시켰다. 나도 따라 나섰다.
화장실 다녀와서 ‘저는 내일 3학년 기말고사 감독 2시간만 하면 된다.’고 여유만만 하니까,
김경선 원장선생님께서 ‘시험 감독하면서 졸아라.’고 하시길래,
‘아그들 좋크로...... , 그런데 학모님 부감독 한 명 더 있지요.’했다.
속으로 ‘흐흐, 그러시는 선생님은 내일 진료 안 하시남요. 그리고 이동균 선생님은 수능대책회의 있담시롱, 상당히 여유들 있으시구먼요 .흐흐.’
결국 네 시 가까운 시간에 왔던 장소로(집으로) 되돌아가면서, 이동균 선생님의 ‘가곡에 적당히 미칩시다. (빙그르르르 퍼포먼스.)’에 이어,
박범철 교수님 손을 내밀며 멘트를 날렸다.
“앞으로 좋은 인간관계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네. 좋은 인간 관계로~!”
아무리 훌륭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준비해도 함께 들어 줄 관중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듣고 자기네들끼리만 좋아하는 예술은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탄탄한 조직력으로 뿌리 내린 박범철 가곡교실은 10년을 하루 같이 처음 같은 마음으로 가꾼 터전입니다. 지휘관이 아무리 훌륭해도 받쳐 주는 병사가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 날, 지휘관이신 박범철 교수님은 오직 성실과 겸손으로 일관하시고, 사회 각계의 훌륭하신 회원님들은 한 마음이 되어 참모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했습니다.
대구에서 '한국 예술가곡의 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압력 단체' 하나가 탄생한 거라고.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서는 박수 소리부터가 달랐다고.
<2006. 11. 18.>
2006. 11. 13. 대구.C.C. - 사진 조화복 -
박범철 가곡교실 지도 교수님
2006. 11. 13. 대구.C.C. - 사진 조화복 -
이정숙님 내외분(뒷모습). 권선옥 시인. 정우동 선생님. 홍양표 교수님 내외분.
-*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 *-
권선옥(sun)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서는 박수 소리부터가 다르다.
테너 박범철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해 겨울 방학 때이다.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에 시작을 잘 하지 본인으로서는 김형규(뭉게구름) 교수님의 열정적인 이끌림에 따라 영남이공대학 평생교육원의 가곡교실을 방문한 것이다.
이항구 작시 이수인 작곡의 ‘불타는 강대나무’를 부르신 분으로 이수인 선생님으로부터 ‘불타는 강대나무는 박범철 선생이, 제일 잘 불렀어.’란 말을 들은 터이고, 같은 대구에 사시는 분이란 생각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평일 오전이라 인원수가 가장 적다는 김형규 교수님의 사전 정보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비실비실 졸면서 갔던 터라 잠이 확 달아났다. 예상과는 달리 강의실을 꽉 메운 인원에 그만 위축이 된 것이다. 주로 어르신네들이었지만 40대의 젊은 분들도 그 인원에 비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가곡수업이 진행되었다.
박범철 선생님께서는 다섯 개 반의 가곡교실을 운영함과 동시에 대구 북구합창단 지휘를 맡은 탓에 피로하신 듯 목소리가 약간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전공은 다르지만 학번이 다섯 해 정도는 빠른 대학 선배님들과 곱게 차려 입으신 교장 퇴직하신 선생님들께서 작시자를 직접 만나서 돼서 영광이라고 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셨다. 평소 철딱서니 없이 촐싹거리던 나로서는, 표정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영 체질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날 느낀 점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부르는 가곡 작시를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수도 있다는 소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던 그 날의 깨침도 일상에 휩쓸려서 곧 망각해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던 터에, 다시 박범철 가곡교실 회원님들을 만난 것은 대구어린이회관 꾀꼬리 극장에서였다.
<황홀한 기다림>과 아직 음반 출시도 안 된 <팔공산>을 연주하신다는 연락을 받고는 마산에 계시는 황덕식 선생님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박범철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월요일반>, <목요일반>, <금요일반>, <시지반> 그리고 <나토얀반>의 다섯 개 반 중에서 두 개 반의 합동 발표회라고 했다. 그런데 연주회장인 ‘꾀꼬리 극장’이 가득 메워졌다.
옆자리에 앉으신 황덕식 선생님께서는 연이어 뒤돌아보시면서, “아~따, 사람 많다!”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박수소리도 우렁찼다.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인파와 박수 소리만으로도 기분이 상승한 터였다. 연주회가 끝나자, 작곡가와 작시자 소개하는 이름을 듣고는, 옛날 알고 지내던 어떤 부부가찾아왔다. 벼리엄마 맞지 싶었다며, 쭉쭉 뻗어나가 유명해지라는 인사말을 하고 갔다.
정성어린 선물과 엽서까지 받은 두 번째의 만남 이후, 지난 달 10월 13일 북구합창단의 제 11회 정기연주회가 <대구시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그리고 11월 9일 <나토얀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1주년 기념음악회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 근처의 <대구시서구문회회관>에서 열렸다.
두 연주회 모두 인파와 꽃물결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최근 몇 년 동안(2003년 이후) 우리 가곡이 연주되는 공연장을 가면 왠지 허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박범철 가곡 교실 회원>들이 모인 곳에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허전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가곡 축제가 열리는 곳이었다.
2006년 11월 13일 대구C.C.에서 박범철 가곡교실 회원 중심으로 ‘제2회 가곡의 날(11월 13일)’ 기념 <갈바람 갈잎의 노래>행사가 열렸다.
여유가 없는 하층민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처음 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지각대장이지만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경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자, 찾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우리나라의 5대 컨트리클럽인 40만평의 27개 홀이 있다는 대구C.C.로 들어서는 숲 속 길에 이르자 가을의 정취와 도시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시원스러움을 동시에 느낀 탓일까. 함께 탄 딸과 딸의 친구들이 환호를 했다.
한 테이블에 10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박범철 가곡 교실 회원들이 모인 곳에 가면 박수소리부터 다르다,’는 본인의 소감 피력에 정면 맞은편에 앉은 목요반 여미량 회장님으로 추정되는 예쁘신 회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박수 소리 연습해~예.(‘연습해요’의 대구 버전) ^^*”
“......!” (수준 높은 위트로 생각하여 쳐다보는데.)
“정말이라예. 우리 수업 시간에 박수 연습합니더. ^^*”
“...... !” (농담인가 보다 했다가 정말인가 보다 해서 눈이 더 커졌다.)
“맞시임더. 이렇게 손바닥에 홈이 파이게 해서 공명이 생겨서 울리도록...... .”
(실제 시범을 보이는 남자 회원님의 말씀에 정말인가 보다 해서 안 죽을 만큼 웃어대는 별헤아림.- 위의 사진-)
2층과 3층에서 식사를 마친 200명 가까운 인원들이 모두 1층 로비로 모이자 행사가 진행되었다.
*박범철 지도 교수님의 '가곡의 날 기념' 인사
*장소와 식사를 후원하신 대구C.C. 우기정 회장님의 축사
*‘산들바람’, ‘고향의 노래’를 비롯한 우리 가곡 함께 부르기
*이동균님(동호회원)과 오아현(경북대4년)의 독창
*‘애모’, ‘팔공산’의 또 다시 함께 부르기
*내빈 소개
*박범철가곡교실 준비위원 소개
(회장단- 여미량님, 김수경님, 이정숙님, 서정숙님. 이경자님)
추가하여 박범철가곡교실 회원이신 정사랑양 어머님의 인사 시간도 있었습니다.
정사랑양은 이번에 만 13세의 나이로 계명대 러시아어과에 입학하는,
배우고 싶은 학문 더 일찍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이랍니다.
행사가 끝나고, ‘가곡에 너무 빠지지 말자’란 주제로 서로 견제하기 위해서 다시 모인 사람들.
새벽 3시 10분이 넘어도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밖에서 날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신 ‘범철 교주님(?)’ 해산할 것을 종용하자, 어떤 분이 화장실 가신다며 시간을 더욱 연장시켰다. 나도 따라 나섰다.
화장실 다녀와서 ‘저는 내일 3학년 기말고사 감독 2시간만 하면 된다.’고 여유만만 하니까,
김경선 원장선생님께서 ‘시험 감독하면서 졸아라.’고 하시길래,
‘아그들 좋크로...... , 그런데 학모님 부감독 한 명 더 있지요.’했다.
속으로 ‘흐흐, 그러시는 선생님은 내일 진료 안 하시남요. 그리고 이동균 선생님은 수능대책회의 있담시롱, 상당히 여유들 있으시구먼요 .흐흐.’
결국 네 시 가까운 시간에 왔던 장소로(집으로) 되돌아가면서, 이동균 선생님의 ‘가곡에 적당히 미칩시다. (빙그르르르 퍼포먼스.)’에 이어,
박범철 교수님 손을 내밀며 멘트를 날렸다.
“앞으로 좋은 인간관계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네. 좋은 인간 관계로~!”
아무리 훌륭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준비해도 함께 들어 줄 관중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듣고 자기네들끼리만 좋아하는 예술은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탄탄한 조직력으로 뿌리 내린 박범철 가곡교실은 10년을 하루 같이 처음 같은 마음으로 가꾼 터전입니다. 지휘관이 아무리 훌륭해도 받쳐 주는 병사가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 날, 지휘관이신 박범철 교수님은 오직 성실과 겸손으로 일관하시고, 사회 각계의 훌륭하신 회원님들은 한 마음이 되어 참모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했습니다.
대구에서 '한국 예술가곡의 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압력 단체' 하나가 탄생한 거라고.
‘갈바람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서는 박수 소리부터가 달랐다고.
<2006.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