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문학> 12월 호에 - <내 마음의 노래>에 띄우는 편지 -
<스토리문학> 12월 호에
권선옥(sun)
부족하고 아쉬운 나의 옛 마음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려는 마음에
시를 쓰는 시간도 노랫말 쓰는 마음도 그저 한 켠으로 미루고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의 학교 업무 외에는 손을 놓고 있는 요즘이었습니다.
그저 한없이 떠도는 방황하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어제는 방학이었지만 오후 느직이 3시 쯤 해서 학교엘 갔었습니다.
방학이지만 2층 교무실엔 15명이 넘는 선생님들께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 방학인데도 이렇게 많은 선생님이...ㅎ.ㅎ." 목례와 미소로 눈을 맞추고 나니,
일이라는 것이 때때로 주는 그 신성함에 나태함에서 깨어나 마음이 맑아지는 듯했습니다.
연말정산용 서류 제출과 실력 향상반(부진아) 문서 정리를 위해서 학교로 향하기 전에
잠시 컴을 열었다가 오랜만에 받아보는 김경선 원장님의 쪽지에 답장을 보내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김경선 원장님 진료실에 故 홍난파 선생님의 조카분이 오셔서 일전에 제가 올린
<가곡의 날 제정> 제1회 행사(2005. 11. 11.) 로 *홍난파 선생 옛집 작은 음악회* 글을 찾는 중이었는데,
답장 쪽지를 읽고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말씀에 어째 동생이란 말이 빠진 것하며
왠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혹시 하는 생각에 <보낸 쪽지함>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25일 크리스마스날에 동생이 결혼하는 관계로 이리저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라는
멘트에 간단히 쓴다고 줄인 것이 '동생'이란 말을 빠뜨린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는 바 없이 늘 덤벙대며 실수를 연발하는 저의 성격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김경선 원장님께서 찾으셨다는 *홍난파 선생 옛집 작은 음악회* 글에다
그날 참석자 분들의 명단과 홍난파 선생님의 친일 여론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내용이
몇 문장 추가되어 <스토리문학> 12월호(주간 김순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저의 졸작이지만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티브로 쓴
<부고장(訃告狀)>과 <아버지> 그리고 <무용수의 시선>도 함께.
새삼 <내 마음의 노래>에 옛것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감사의 연하장을 띄워 봅니다.
3년 전 정확히 2002년 8월 14일... .
이 곳 <내 마음의 노래>에 회원 가입 후 두 줄의 첫 멘트를 남기면서 저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일상의 잡문을 한두 편 올리다가 장난처럼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왜 글 안 쓰느냐?>는 회원들의 말에 장난처럼 웃기만 했었는데,
그 장난이 제 인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사이트<내 마음의 노래>에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그 알게 된 분들의 배려로 없는 실력에 얼떨결에 노랫말을 써 보았습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단상(短想)들을 시 인양 올리다 보니까.
주제 파악도 않고 산문보다는 시간 관계상 시가 손 쉬우니까.
그저 국어 교사란 직업과 같은 과(科)니까.
<꿈꾸는 마음>이란 노랫말이 한 편 발표되면서 시인도 아니면서 시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저 시인 아니에요.>라는 말 하느라고, 시달렸다면 시달렸고 고통 받았다면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노래 부르라는데 무지 들볶이고 시달리다 못해
<남행열차>와 <개똥벌레>를 선곡함으로서 고통에서 해방 되었듯이,
지난 10월 창간 17년인 월간 <문학공간>을 선택하고
선택 당함으로써 정말 시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인이 되었다고 해서 시가 나아질 리도 없고,
시인이 되지 않았다고 좋은 시를 못 쓰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저 중요한 것은 시인으로서 만나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그 소중한 사람들로 인하여 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따분하게 일상을 보내던 <게으른 자유주의자> 권선옥이
평탄하고 안락한 것이 행복한 삶은 될지언정 진정 가치로운 삶은 아니라는 사실를
배울 곳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치기만 해도 가치로운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경선 원장님 같으신 분을 알게 된 것도 행운입니다.
최영섭 선생님을 음악적으로 만난 것도 제게는 축복입니다.
늘 조건 없이 배려해 주시는 고진숙 선생님 그래서 늘 감사드립니다.
딸의 학교 앞 서점에 꽂혀 있던 빨간 기본 영어의 저자 정치근 시인님
이름만이 유명한 것이 아닌 그 분들의 삶의 태도에 숙연해지고 고개 숙여지는 분들을
제가 어디에 가서 쉽사리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글을 쓰면 몇 분이라도 진심으로 읽어 주시는 분이 있고,
노랫말을 쓰면 몇 분이라도 들어 주시는 분이 있음에 저의 삶도 풍요로워집니다.
지난 마음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2005년의 끝자락에서
<내 마음의 노래>에 띄우는 감사의 연하장에 기억 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사이트를 만드신 정동기 운영자님!
놀 곳(?)을 만들어 주심에 감사 드리지요.
운님 요들님 정우동님 우지니님 바다님 문상준님 유랑인님 송문헌님 하늘곰님 해야로비님
서들비님 산처녀님 장미숙님 아까님...... .
좋은 음악 보내 주시는 황덕식 작곡가님.
모든이에게 골고루 밝은 미소를 나누어 주시는 오숙자 교수님.
엎어질 정도로 음악 홍보대사역을 맡아 주시는 김형규 교수님(뭉게구름님).
여고 시절 이웃 학교에 다니셨다는 정덕기 교수님.
대구에 계셨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눌 수 있었던 김천수 교수님(지범님).
삶의 열정을 몸소 실천하시는 홍양표 교수님...!
김관식 님은 다른 사이트에서 알았지요. 그 외에도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많은 분들... .
이미 만난 분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제게는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이 삶의 스승님이시고, 생각을 이어가게 하시는 분들입니다.
... 그래서 감사드립니다.
... 그래서 경제적인(?)... 연하장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1> - 지난 12월 23일 50%세일로 산 크리스머스 트리 -
<사진2> - '내 마음의 노래'에 보내는 2006년 연하장 -
*종로구 홍파동 '봉선화의 집'에서 (2005. 11. 11.) <사진: 김필연 >
<스토리문학 2005. 12월호> 수록
우로부터 김순진님(스토리문학 주간).KBS이문태 국장님.**님(종로구청근무?).작곡가 한지영님.시인 한여선님.시인 송문헌님.권선옥.
권선옥(sun)
부족하고 아쉬운 나의 옛 마음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려는 마음에
시를 쓰는 시간도 노랫말 쓰는 마음도 그저 한 켠으로 미루고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의 학교 업무 외에는 손을 놓고 있는 요즘이었습니다.
그저 한없이 떠도는 방황하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어제는 방학이었지만 오후 느직이 3시 쯤 해서 학교엘 갔었습니다.
방학이지만 2층 교무실엔 15명이 넘는 선생님들께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 방학인데도 이렇게 많은 선생님이...ㅎ.ㅎ." 목례와 미소로 눈을 맞추고 나니,
일이라는 것이 때때로 주는 그 신성함에 나태함에서 깨어나 마음이 맑아지는 듯했습니다.
연말정산용 서류 제출과 실력 향상반(부진아) 문서 정리를 위해서 학교로 향하기 전에
잠시 컴을 열었다가 오랜만에 받아보는 김경선 원장님의 쪽지에 답장을 보내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김경선 원장님 진료실에 故 홍난파 선생님의 조카분이 오셔서 일전에 제가 올린
<가곡의 날 제정> 제1회 행사(2005. 11. 11.) 로 *홍난파 선생 옛집 작은 음악회* 글을 찾는 중이었는데,
답장 쪽지를 읽고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말씀에 어째 동생이란 말이 빠진 것하며
왠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혹시 하는 생각에 <보낸 쪽지함>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25일 크리스마스날에 동생이 결혼하는 관계로 이리저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라는
멘트에 간단히 쓴다고 줄인 것이 '동생'이란 말을 빠뜨린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는 바 없이 늘 덤벙대며 실수를 연발하는 저의 성격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김경선 원장님께서 찾으셨다는 *홍난파 선생 옛집 작은 음악회* 글에다
그날 참석자 분들의 명단과 홍난파 선생님의 친일 여론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내용이
몇 문장 추가되어 <스토리문학> 12월호(주간 김순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저의 졸작이지만 저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티브로 쓴
<부고장(訃告狀)>과 <아버지> 그리고 <무용수의 시선>도 함께.
새삼 <내 마음의 노래>에 옛것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감사의 연하장을 띄워 봅니다.
3년 전 정확히 2002년 8월 14일... .
이 곳 <내 마음의 노래>에 회원 가입 후 두 줄의 첫 멘트를 남기면서 저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일상의 잡문을 한두 편 올리다가 장난처럼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왜 글 안 쓰느냐?>는 회원들의 말에 장난처럼 웃기만 했었는데,
그 장난이 제 인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사이트<내 마음의 노래>에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그 알게 된 분들의 배려로 없는 실력에 얼떨결에 노랫말을 써 보았습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단상(短想)들을 시 인양 올리다 보니까.
주제 파악도 않고 산문보다는 시간 관계상 시가 손 쉬우니까.
그저 국어 교사란 직업과 같은 과(科)니까.
<꿈꾸는 마음>이란 노랫말이 한 편 발표되면서 시인도 아니면서 시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저 시인 아니에요.>라는 말 하느라고, 시달렸다면 시달렸고 고통 받았다면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노래 부르라는데 무지 들볶이고 시달리다 못해
<남행열차>와 <개똥벌레>를 선곡함으로서 고통에서 해방 되었듯이,
지난 10월 창간 17년인 월간 <문학공간>을 선택하고
선택 당함으로써 정말 시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인이 되었다고 해서 시가 나아질 리도 없고,
시인이 되지 않았다고 좋은 시를 못 쓰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저 중요한 것은 시인으로서 만나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그 소중한 사람들로 인하여 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따분하게 일상을 보내던 <게으른 자유주의자> 권선옥이
평탄하고 안락한 것이 행복한 삶은 될지언정 진정 가치로운 삶은 아니라는 사실를
배울 곳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치기만 해도 가치로운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경선 원장님 같으신 분을 알게 된 것도 행운입니다.
최영섭 선생님을 음악적으로 만난 것도 제게는 축복입니다.
늘 조건 없이 배려해 주시는 고진숙 선생님 그래서 늘 감사드립니다.
딸의 학교 앞 서점에 꽂혀 있던 빨간 기본 영어의 저자 정치근 시인님
이름만이 유명한 것이 아닌 그 분들의 삶의 태도에 숙연해지고 고개 숙여지는 분들을
제가 어디에 가서 쉽사리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글을 쓰면 몇 분이라도 진심으로 읽어 주시는 분이 있고,
노랫말을 쓰면 몇 분이라도 들어 주시는 분이 있음에 저의 삶도 풍요로워집니다.
지난 마음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2005년의 끝자락에서
<내 마음의 노래>에 띄우는 감사의 연하장에 기억 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사이트를 만드신 정동기 운영자님!
놀 곳(?)을 만들어 주심에 감사 드리지요.
운님 요들님 정우동님 우지니님 바다님 문상준님 유랑인님 송문헌님 하늘곰님 해야로비님
서들비님 산처녀님 장미숙님 아까님...... .
좋은 음악 보내 주시는 황덕식 작곡가님.
모든이에게 골고루 밝은 미소를 나누어 주시는 오숙자 교수님.
엎어질 정도로 음악 홍보대사역을 맡아 주시는 김형규 교수님(뭉게구름님).
여고 시절 이웃 학교에 다니셨다는 정덕기 교수님.
대구에 계셨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눌 수 있었던 김천수 교수님(지범님).
삶의 열정을 몸소 실천하시는 홍양표 교수님...!
김관식 님은 다른 사이트에서 알았지요. 그 외에도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많은 분들... .
이미 만난 분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제게는 한 분 한 분 모든 분들이 삶의 스승님이시고, 생각을 이어가게 하시는 분들입니다.
... 그래서 감사드립니다.
... 그래서 경제적인(?)... 연하장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1> - 지난 12월 23일 50%세일로 산 크리스머스 트리 -
<사진2> - '내 마음의 노래'에 보내는 2006년 연하장 -
*종로구 홍파동 '봉선화의 집'에서 (2005. 11. 11.) <사진: 김필연 >
<스토리문학 2005. 12월호> 수록
우로부터 김순진님(스토리문학 주간).KBS이문태 국장님.**님(종로구청근무?).작곡가 한지영님.시인 한여선님.시인 송문헌님.권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