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뭉게구름(수필)
김형규(뭉게구름)
햇살이 따가운 삼복의 가마솥 찜통 폭염을 피해 산촌 숲 속을 찾아 들었다.
벼가 퍼렇게 서너 뼘쯤 자란 다랑논, 두렁콩이 손바닥을 펴고 있는 논배미 옆, 옥수수 텃밭엔 뭉게구름이 일렁이고, 외양간 송아지 음매 하고 울적에 봉선화 곱게 핀 굽이굽이 돌담길을 오르는 농부의 굽은 어깨 위로 너울너울 노랑나비가 춤을 춘다. 하얗게 부서지는 여울에선 견지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 서성대고, 개울가 미루나무에서 들려오는 매미들의 합창으로 산골의 평화로운 정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곳, 한 폭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먼 옛적이 아닌 우리들 어려서만 하여도 개울은 물만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냇가에는 모래밭도, 자갈밭도 있었고 갈대밭도 있었다. 그곳은 우리들의 일터고 놀이터이며 보물창고였다. 물가의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들고 고무신짝에 잡아온 가재며 물고기들을 넣고 꽃을 따고 풀을 꺾어다 햇볕을 가려 주었다. 꽃과 풀잎사이로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내려앉으면 맑은 개울물과 함께 우리들 마음도 차고 넘치었다.
조그만 종이배를 띄우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기도 했었고, 토끼풀 반지를 나눠 끼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변치 않는 우정을 간직하자고 굳게 약속도 했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것은 뒷동산 소나무 아래 짙푸르던 녹음 속에 드러누워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펼쳐진 하얀 뭉게구름을 쳐다보면서 동심을 매달아 띄웠다.
불볕더위에 지칠 줄 모르고 솟아나는 뭉게구름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하얀 꿈을 안고 있는 품성이 무엇인지, 높은 산자락에 걸린 뭉게구름을 잡으러 산 정상에 오르려 마음먹었다.
곰실곰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어찌나 뽀송뽀송하고 폭신폭신하게 보이던지, 솜털과 솜사탕도 저런 솜털과 솜사탕이 없는 것 같다. 한 조각 떼어다가 가슴에 품고 집에 가져가 이불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어쩌면 저렇게 갖가지 모습으로 뭉게구름은 넓은 하늘에 떠 있을까. 어느새 파란 하늘에는 갖가지 물고기가 떠다니고, 어느 때는 양과 곰과 코끼리도 되었다가, 곧 바로 바람결에 나부끼는 꽃과 나뭇잎이 되고, 드디어 멋있는 꽃봉오리와 산봉우리를 만들어낸다. 뭉게구름은 하늘이 추울까 봐 온갖 무늬 조각이불을 덮어 준다. 첩첩이 일어나는 뭉게구름 속으로 휘돌아 들어가면 거기에는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새하얀 옷을 입은 선녀들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아름다운 구름꽃을 피우며 향긋한 구름향기를 내 뿜는다.
간간히 부는 실바람에도 나무 잎은 하늘하늘 흔들린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뭉게구름은 잠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곧 흘러간다. 서로 만나면 합치고, 합치면 새로운 짝을 짓는다. 어느 틈에 보드랍던 보랏빛 그늘이 검은 그늘로 변해 버리고 햇볕을 가리면서 굵은 물방울을 내리 퍼붓는 소나기가 되면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낮잠 자던 아낙네가 장독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걷고 나면 소낙비는 딱 그치고 햇볕이 뭉게구름 사이에서 반짝 내려쬔다. 뭉게구름은 미안한 듯 저 먼 산골짜기에 황홀한 무지개를 낮게 드리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한없는 변화를 부리는 것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이다. 뭉게구름은 창조주가 하늘에 펼치는 신비한 마술인가. 아니면 패션쇼나 전시회인가. 인간을 위해 베푸는 위안잔치인가.
오묘한 대자연은 갖가지 곡선들을 조화시켜 저렇게도 아름다운 걸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 앞에 하잘 것 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가보다.
풀빛 맺힌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머무르고, 잔잔한 호수에 하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던들 어찌 이 짜증스런 불볕더위를 이겨 낼 수 있을까!
저 뭉게구름 잡아타고 내 마음 두둥실 띄우면서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세속의 온갖 잡념 훨훨 털고 끝없는 먼 유랑의 길을 떠나고 싶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 뉘엿뉘엿 산등성으로 스러지는 붉게 타는 저녁노을, 뭉게구름 위로 쏟아지는 달빛과 별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하늘에서 태어나 하늘에서 살아가는 뭉게구름.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보이기는 하여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잡아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뭉게구름,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뭉게구름은 내게로 와서 나의 다정한 벗이 되어 주었다.
김형규(뭉게구름)
햇살이 따가운 삼복의 가마솥 찜통 폭염을 피해 산촌 숲 속을 찾아 들었다.
벼가 퍼렇게 서너 뼘쯤 자란 다랑논, 두렁콩이 손바닥을 펴고 있는 논배미 옆, 옥수수 텃밭엔 뭉게구름이 일렁이고, 외양간 송아지 음매 하고 울적에 봉선화 곱게 핀 굽이굽이 돌담길을 오르는 농부의 굽은 어깨 위로 너울너울 노랑나비가 춤을 춘다. 하얗게 부서지는 여울에선 견지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 서성대고, 개울가 미루나무에서 들려오는 매미들의 합창으로 산골의 평화로운 정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곳, 한 폭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먼 옛적이 아닌 우리들 어려서만 하여도 개울은 물만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냇가에는 모래밭도, 자갈밭도 있었고 갈대밭도 있었다. 그곳은 우리들의 일터고 놀이터이며 보물창고였다. 물가의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들고 고무신짝에 잡아온 가재며 물고기들을 넣고 꽃을 따고 풀을 꺾어다 햇볕을 가려 주었다. 꽃과 풀잎사이로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내려앉으면 맑은 개울물과 함께 우리들 마음도 차고 넘치었다.
조그만 종이배를 띄우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기도 했었고, 토끼풀 반지를 나눠 끼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변치 않는 우정을 간직하자고 굳게 약속도 했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것은 뒷동산 소나무 아래 짙푸르던 녹음 속에 드러누워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펼쳐진 하얀 뭉게구름을 쳐다보면서 동심을 매달아 띄웠다.
불볕더위에 지칠 줄 모르고 솟아나는 뭉게구름의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하얀 꿈을 안고 있는 품성이 무엇인지, 높은 산자락에 걸린 뭉게구름을 잡으러 산 정상에 오르려 마음먹었다.
곰실곰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어찌나 뽀송뽀송하고 폭신폭신하게 보이던지, 솜털과 솜사탕도 저런 솜털과 솜사탕이 없는 것 같다. 한 조각 떼어다가 가슴에 품고 집에 가져가 이불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어쩌면 저렇게 갖가지 모습으로 뭉게구름은 넓은 하늘에 떠 있을까. 어느새 파란 하늘에는 갖가지 물고기가 떠다니고, 어느 때는 양과 곰과 코끼리도 되었다가, 곧 바로 바람결에 나부끼는 꽃과 나뭇잎이 되고, 드디어 멋있는 꽃봉오리와 산봉우리를 만들어낸다. 뭉게구름은 하늘이 추울까 봐 온갖 무늬 조각이불을 덮어 준다. 첩첩이 일어나는 뭉게구름 속으로 휘돌아 들어가면 거기에는 신선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새하얀 옷을 입은 선녀들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아름다운 구름꽃을 피우며 향긋한 구름향기를 내 뿜는다.
간간히 부는 실바람에도 나무 잎은 하늘하늘 흔들린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뭉게구름은 잠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곧 흘러간다. 서로 만나면 합치고, 합치면 새로운 짝을 짓는다. 어느 틈에 보드랍던 보랏빛 그늘이 검은 그늘로 변해 버리고 햇볕을 가리면서 굵은 물방울을 내리 퍼붓는 소나기가 되면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낮잠 자던 아낙네가 장독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걷고 나면 소낙비는 딱 그치고 햇볕이 뭉게구름 사이에서 반짝 내려쬔다. 뭉게구름은 미안한 듯 저 먼 산골짜기에 황홀한 무지개를 낮게 드리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한없는 변화를 부리는 것이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이다. 뭉게구름은 창조주가 하늘에 펼치는 신비한 마술인가. 아니면 패션쇼나 전시회인가. 인간을 위해 베푸는 위안잔치인가.
오묘한 대자연은 갖가지 곡선들을 조화시켜 저렇게도 아름다운 걸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 앞에 하잘 것 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가보다.
풀빛 맺힌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머무르고, 잔잔한 호수에 하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던들 어찌 이 짜증스런 불볕더위를 이겨 낼 수 있을까!
저 뭉게구름 잡아타고 내 마음 두둥실 띄우면서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세속의 온갖 잡념 훨훨 털고 끝없는 먼 유랑의 길을 떠나고 싶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 뉘엿뉘엿 산등성으로 스러지는 붉게 타는 저녁노을, 뭉게구름 위로 쏟아지는 달빛과 별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하늘에서 태어나 하늘에서 살아가는 뭉게구름.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보이기는 하여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잡아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뭉게구름,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뭉게구름은 내게로 와서 나의 다정한 벗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