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님
손 님
"얘. 조용히 해라. 손님 오셨다."
어머니는 밖에서 놀다 막 들어온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집안으로 뛰어들다 말고 우뚝 선 채로 집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집안은 어딘지 모를 엄숙함과 설레임으로 평소와는 달리 들떠 있었다. 손님으로 인한 그 새로운 소요(騷擾)는 일상에서의 벗어난 익숙치 않은 긴장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러한 긴장 속에서도 집안은 부산스러워졌다. 어머니는 손님이 와 계신 방으로 조용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다녀가셨고, 음식을 장만한다, 집안을 정돈한다 하는 통에 나는 있을 곳을 찾지 못했다.
일상에서의 벗어남, 그것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익숙한 것에서, 예견된 사건으로부터, 당연히 그러하리라고 여기고 있던 일반적 생활로부터의 일탈(逸脫)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하였지만 가벼운 흥분과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 우리를 들뜨게 한 것이 사실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리들의 삶. 원하지도 않았고, 원할 수도 없었던 우리들의 삶도, 이처럼 일상 속에 불쑥 찾아온 손님 같은 것은 아닐는지. 이제 중3에 올라가는 큰아이가 태어날 때도 집안은 흥분과 긴장, 그리고 미래로의 기대로 잔뜩 들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그 아이와 관계되어질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처음 찾아온 손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전혀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던 존재.
어머니를 바쁘게 하고, 우리를 서먹서먹하게 하였던 그 손님이 가고 나자 집안은 다시 예전의 평온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서 우리 각자의 삶은 잠시 다녀가는 손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에 나오며 던졌던 작은 파문도 우리가 되돌아가면서 시간 속에 묻혀질 것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그 손님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자극을 던져 넣었듯이, 나의 삶, 아이들의 삶도 어떤 하나의 공간과 시간에 자국을 새겨 넣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원하지도 원할 수도 없었던 출생이었지만 의미를 갖게되고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도 작용하게 된다.
이번 겨울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나의) 곁을 떠나갔다. 그만큼 새로운 생명들도 우리에게 찾아왔다. 오는 것이 축복이라면 가는 것도 축복이어야 한다. '소풍'처럼이야 살수가 있을까마는 찾아오지 말았으면 했던 손님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먼 길을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새롭게 태어날 우리들의 싱그러운 손님을 기다려보는 것이다.
(2004.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