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행 성악가의 촌스러운 발성이
저의 학창 시절이던 1970-1980년대 테너 엄정행 교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주로, 대중가요를 틀어주던 다방에서도 엄정행 교수의 노래는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악 전공자들 중에는 엄정행 교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좀 이상하고 과장스럽다, 발성이 촌스럽다 등등.
심지어 엄정행 교수가 비(非)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비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구적이고, 세련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저 역시도 이러한 비판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를 했었습니다.
경상도 출신인 엄정행 교수는 말 할 때는 물론 노래할 때도 경상도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그대 음성]을 [거대 엄성]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바이브레이션도 참 특이 합니다.
대중들은 그 특이한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전문 성악가들은 별로 좋은 바이브레이션이 아니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는 제가 엄정행 교수의 그런 특이한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부르는 이태리 가곡은 한국가곡처럼 주체적으로 부른 것 같아서 좋고,
또 그런 식으로 부르는 한국가곡은 구수한 고향의 토속 민요같아서 좋습니다.
무조건 유학을 갔다와야하고, 또 서양 음악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대접해주는,
서양 사대주의적인 음악 풍토에 빠져 있는 한국의 음악계에 엄정행 교수 같은 성악가는 참으로 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유명 대학 교수로, 또 스타 성악가로 그토록 오랫 동안 생활했지만,
여전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엄정행 교수의 애향적인 주체성,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 2016년 새해 첫날,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를 통해 엄정행 교수가 부른 저의 애창가곡 김대현 선생 작곡의 [들국화]를
들어 보았습니다.
엄정행 교수의 한국적이고 경상도적인 꿋꿋한 음악 지조가
가을 언덕에 피어 있는 한 떨기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향기롭게 느껴졌습니다.
주로, 대중가요를 틀어주던 다방에서도 엄정행 교수의 노래는 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악 전공자들 중에는 엄정행 교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좀 이상하고 과장스럽다, 발성이 촌스럽다 등등.
심지어 엄정행 교수가 비(非)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비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구적이고, 세련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저 역시도 이러한 비판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를 했었습니다.
경상도 출신인 엄정행 교수는 말 할 때는 물론 노래할 때도 경상도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그대 음성]을 [거대 엄성]식으로 발음을 합니다.
바이브레이션도 참 특이 합니다.
대중들은 그 특이한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전문 성악가들은 별로 좋은 바이브레이션이 아니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는 제가 엄정행 교수의 그런 특이한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부르는 이태리 가곡은 한국가곡처럼 주체적으로 부른 것 같아서 좋고,
또 그런 식으로 부르는 한국가곡은 구수한 고향의 토속 민요같아서 좋습니다.
무조건 유학을 갔다와야하고, 또 서양 음악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대접해주는,
서양 사대주의적인 음악 풍토에 빠져 있는 한국의 음악계에 엄정행 교수 같은 성악가는 참으로 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유명 대학 교수로, 또 스타 성악가로 그토록 오랫 동안 생활했지만,
여전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엄정행 교수의 애향적인 주체성,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 2016년 새해 첫날,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를 통해 엄정행 교수가 부른 저의 애창가곡 김대현 선생 작곡의 [들국화]를
들어 보았습니다.
엄정행 교수의 한국적이고 경상도적인 꿋꿋한 음악 지조가
가을 언덕에 피어 있는 한 떨기 들국화처럼 청초하고, 향기롭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