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분 가신 높고 환한 길 따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했던 시간, 님이 가신 지 일년이 넘었다.
예상도 하지 못한 때에 가신 님이라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과연 본인에겐 잘 된 것인가.
'나 좀 아파!'
하고 원장으로 근무하시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가
구급차로 옮겨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신 지 2, 3일 만에 가셨었다.
78세 이셨으니 호상이라고들 했다. 얼마 아프지도 않으셨으니
본인도 편했고, 식구들도 고생 안 시켰다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셨다.
'남 죽은 것이 그리 기뻐할 일인가!
게다가 그토록 의인과 같은 분이 가셨는데 말이다'
절대로 안 잊어버리겠다고 자신에게 굳게 약속했었는데 벌써 님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죽은 자만 서럽지'
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님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내 자신에게도 말하고,
또 그분의 가족에게도 말했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이토록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존재였던가. 책 제목으로 '팔복
장로님'이라는 가칭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최근에는 '팔복 장로님,
놀부 장로'라고 제목을 바꾸긴 했지만. 과연 그 책을 쓸 수 있을까 이젠
의문 부호가 붙어가고 있다. 집중을 해서 매달려야 하는데 이것 저것
내 마음을 붙잡는 것들이 많은 데다가 몸과 정신이 아직도 시달림을 받고
있어서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변명이자 이유이다. 사실 책을 쓰는 데에는 내게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게으르게 만들고 있는 걸까.
아무리 세상에서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그 분처럼 그토록 착하고
진실된 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겉으론 진실되고 믿음성 있고,
인격자인양 싶어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짓 투성이이고,
비인격적인 삶을 사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와서일까, 이젠 사람에
대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비록 다시 속더라도 인간을 믿어야 하는데...'
그냥 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물론 내 기억 속에서
그분이 떠나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1년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이토록 희미해지니 과연 내 연약한 머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님을 받들 수 있을 것인가. 그분이 묻히신 곳에 찾아가면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 날 것이다. 그분이 일하셨던 강화도에 가고, 그분이
나를 데리고 가셨던 장소들을 찾아가면 또 다시 강한 기억으로
떠오르리시리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님이 다시 나를 찾아와
자상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부드러이 손을 내미시며
'그동안 잘 있었어요!'
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절제할 수가 없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았으면 내 맘 속에서
그리움의 흔적만으로 남아 흐르지 않는 웅덩이 처럼 아픔의 사슬되어
나를 얽어매었을 것이다. 나는 슈바이처박사를 존경한다. 하지만
나의 역할 모델을 그렇게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내게는 정말 닮고 싶은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내 삶에서 살아 숨쉬던 나의 스승이며 친구였던
그들로 인해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에 빠져 우울한 상태에 머무르려
할 때에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세상의 사람들과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그다지 별다른 취미도 없으셨던 그 분, 허나 남들 처럼 가끔 골프도 치시고,
이미 교수직에서 정년을 하신지 오랜데도 불구하고 학회 모임에도 계속
나가시고, 병원에서 진료도 하시고, 실험도 계속 하셨었다. 또한 매일 아침
마당을 쓰셨다. 아직도 원장선생님께서 직접 병원 마당과 병원 앞길을
쓰시는 모습이 내 기억에 생생하다. 의사라면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직업이고,
또 그로 인해 허리가 좀 뻗뻗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분의 허리는 거의 문어
허리와 같이 부드러우셨다. 이분처럼 겸손하고 자상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늘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하셨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시는 것을 단 한 번도 없다.
그토록 그분의 인격은 출중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인격이 훌륭하실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분은 아무리 자기가 젊었을 때
하신 일들을 내게 말씀하실 때에도 전혀 자랑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그 분이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시는 것을 나는 본적이 없다. 늘
다른 이들을 먼저 배려하시고 나서 자기를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내 남은 여생은 고향인 이북에 가서
봉사를 했으면 해요.'
그러한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님의 혼은 여전히 내 안에서
훨훨 타고 있다. 마음이 그토록 진실된 이를 이 세상에서는 만나기가 정말
힘들기에 가신 님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그와 비례하여 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커다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늘 가장 친하고 다정한 벗처럼
말하는 사이였다. 몇 년에 불과했지만 그 기간이 내게는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말로 하기는 좀 힘들다. 그처럼 좋은 동무를, 동지를,
선배를, 귀감이 되는 역할 모델을 어떻게 또 만나리. 돈, 권력 등등 많은
욕심의 세계에서 그처럼 사심이 거의 없는 이를 어떻게 또 사귀리.
'무릎 꿇고, 가신 당신 생각합니다.
더욱 더 자주 생각하지 못 한 것 미안합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사람, 당신은 따스한 사람,
하늘나라도 당신이 계셔서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당신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노래도 불러 드리고,
울기도 많이 울고, 내 아픈 몸 이끌고 장지에도 갔지만
그래도 가신 님 생각에 못내 울음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두고 싶지만 그럼 썩을까봐
다시 나 혼자 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잘 지내세요! 그리고 절 지켜 보호해 주세요.
늘 쓰러지는 못난 철부집니다. 그래도 님이 옆에서
오뚜기 처럼 일으켜 주세요.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하다가
님 계신 곳으로 가야겠지요."
"잘 지내세요!
늘 다정스레 대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가신 이는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오늘도 이 이른 시간에
나의 길을 찾아가려 애쓰고 있다. 언젠가 틀림없이 우리의 길이
다시 연결 될 것을 믿으며 당신처럼 보다 훌륭하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숨어서 이 어둔 세상을 밝히는 작고 희미한, 그러나 오래 동안
꺼지지 않고 빛을 나누어 주고 훨훨 불 타버리는 촛불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오늘도 님은 미소지으실 것이다.
'잘 지내요, 세상에 있는 동안.
때가 되면 우린 다시 만날 거에요.
그땐 헤어지지 말고 늘 가까이 지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드러운 님의 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린다.
죽음은 완전한 끝이 아니다,
다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 위한
하나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잘 지내세요!
아, 보고픈 님이시여!"
예상도 하지 못한 때에 가신 님이라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과연 본인에겐 잘 된 것인가.
'나 좀 아파!'
하고 원장으로 근무하시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가
구급차로 옮겨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신 지 2, 3일 만에 가셨었다.
78세 이셨으니 호상이라고들 했다. 얼마 아프지도 않으셨으니
본인도 편했고, 식구들도 고생 안 시켰다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셨다.
'남 죽은 것이 그리 기뻐할 일인가!
게다가 그토록 의인과 같은 분이 가셨는데 말이다'
절대로 안 잊어버리겠다고 자신에게 굳게 약속했었는데 벌써 님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죽은 자만 서럽지'
라는 말이 나온 것일까. 님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내 자신에게도 말하고,
또 그분의 가족에게도 말했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이토록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존재였던가. 책 제목으로 '팔복
장로님'이라는 가칭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최근에는 '팔복 장로님,
놀부 장로'라고 제목을 바꾸긴 했지만. 과연 그 책을 쓸 수 있을까 이젠
의문 부호가 붙어가고 있다. 집중을 해서 매달려야 하는데 이것 저것
내 마음을 붙잡는 것들이 많은 데다가 몸과 정신이 아직도 시달림을 받고
있어서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변명이자 이유이다. 사실 책을 쓰는 데에는 내게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게으르게 만들고 있는 걸까.
아무리 세상에서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그 분처럼 그토록 착하고
진실된 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겉으론 진실되고 믿음성 있고,
인격자인양 싶어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짓 투성이이고,
비인격적인 삶을 사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와서일까, 이젠 사람에
대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비록 다시 속더라도 인간을 믿어야 하는데...'
그냥 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물론 내 기억 속에서
그분이 떠나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1년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이토록 희미해지니 과연 내 연약한 머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님을 받들 수 있을 것인가. 그분이 묻히신 곳에 찾아가면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 날 것이다. 그분이 일하셨던 강화도에 가고, 그분이
나를 데리고 가셨던 장소들을 찾아가면 또 다시 강한 기억으로
떠오르리시리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님이 다시 나를 찾아와
자상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부드러이 손을 내미시며
'그동안 잘 있었어요!'
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절제할 수가 없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았으면 내 맘 속에서
그리움의 흔적만으로 남아 흐르지 않는 웅덩이 처럼 아픔의 사슬되어
나를 얽어매었을 것이다. 나는 슈바이처박사를 존경한다. 하지만
나의 역할 모델을 그렇게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내게는 정말 닮고 싶은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내 삶에서 살아 숨쉬던 나의 스승이며 친구였던
그들로 인해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에 빠져 우울한 상태에 머무르려
할 때에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세상의 사람들과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그다지 별다른 취미도 없으셨던 그 분, 허나 남들 처럼 가끔 골프도 치시고,
이미 교수직에서 정년을 하신지 오랜데도 불구하고 학회 모임에도 계속
나가시고, 병원에서 진료도 하시고, 실험도 계속 하셨었다. 또한 매일 아침
마당을 쓰셨다. 아직도 원장선생님께서 직접 병원 마당과 병원 앞길을
쓰시는 모습이 내 기억에 생생하다. 의사라면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직업이고,
또 그로 인해 허리가 좀 뻗뻗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분의 허리는 거의 문어
허리와 같이 부드러우셨다. 이분처럼 겸손하고 자상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늘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하셨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시는 것을 단 한 번도 없다.
그토록 그분의 인격은 출중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인격이 훌륭하실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분은 아무리 자기가 젊었을 때
하신 일들을 내게 말씀하실 때에도 전혀 자랑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그 분이
단 한 번도 이기적으로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시는 것을 나는 본적이 없다. 늘
다른 이들을 먼저 배려하시고 나서 자기를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내 남은 여생은 고향인 이북에 가서
봉사를 했으면 해요.'
그러한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님의 혼은 여전히 내 안에서
훨훨 타고 있다. 마음이 그토록 진실된 이를 이 세상에서는 만나기가 정말
힘들기에 가신 님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그와 비례하여 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커다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늘 가장 친하고 다정한 벗처럼
말하는 사이였다. 몇 년에 불과했지만 그 기간이 내게는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말로 하기는 좀 힘들다. 그처럼 좋은 동무를, 동지를,
선배를, 귀감이 되는 역할 모델을 어떻게 또 만나리. 돈, 권력 등등 많은
욕심의 세계에서 그처럼 사심이 거의 없는 이를 어떻게 또 사귀리.
'무릎 꿇고, 가신 당신 생각합니다.
더욱 더 자주 생각하지 못 한 것 미안합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사람, 당신은 따스한 사람,
하늘나라도 당신이 계셔서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당신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노래도 불러 드리고,
울기도 많이 울고, 내 아픈 몸 이끌고 장지에도 갔지만
그래도 가신 님 생각에 못내 울음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두고 싶지만 그럼 썩을까봐
다시 나 혼자 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잘 지내세요! 그리고 절 지켜 보호해 주세요.
늘 쓰러지는 못난 철부집니다. 그래도 님이 옆에서
오뚜기 처럼 일으켜 주세요.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하다가
님 계신 곳으로 가야겠지요."
"잘 지내세요!
늘 다정스레 대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가신 이는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났고, 나는 오늘도 이 이른 시간에
나의 길을 찾아가려 애쓰고 있다. 언젠가 틀림없이 우리의 길이
다시 연결 될 것을 믿으며 당신처럼 보다 훌륭하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숨어서 이 어둔 세상을 밝히는 작고 희미한, 그러나 오래 동안
꺼지지 않고 빛을 나누어 주고 훨훨 불 타버리는 촛불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오늘도 님은 미소지으실 것이다.
'잘 지내요, 세상에 있는 동안.
때가 되면 우린 다시 만날 거에요.
그땐 헤어지지 말고 늘 가까이 지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드러운 님의 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린다.
죽음은 완전한 끝이 아니다,
다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 위한
하나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잘 지내세요!
아, 보고픈 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