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동생이 군 입대를 예정하고 있던 그 해 가을,
어느 일간지 주최로 제1회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 열린다는
광고에 애독자 00명을 초대하니 원하는 사람은
엽서를 보내달라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초대였기에 같이 살던 우리 4남매
모두의 이름으로 엽서를 네 장 보냈습니다.
그래도 한 두 장은 오려니 기대하면서...
가을이 깊어가면서 기다림의 나날도 흘러가고
시월 이십 며칠인가로 예정된 동생의 군 입대 날짜도
다가오는데 가곡의 밤 초대장이 날아들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동생의 이름으로 된 초대장만 빠지고
세 명 모두 초대되었습니다.
가곡의 밤은 시월의 마지막 날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군대 가고 없을 줄 알고 빠뜨렸을까?'
정말 신기했습니다.
동생이 입대하는 날은 凋落의 깊은 아름다움과
시월 특유의 청명함이 어우러진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왕십리 역 부근 어디에선가 모였던 그 어설픈 예비신병들이
줄을 서서 역으로 향할 때 배웅을 나간 우리도 모두 따라 갔습니다.
햇살이 환한 정거장엔 떠나는 젊은이들과 배웅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대열을 열심히 따라가 기차에 오른 동생의 손에는
아침에 만들어준 김밥 꾸러미가 터진 채 들려 있었고
차창으로는 서로 얼굴을 내밀어 친지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청년들의 모습이 꽃송이처럼 가득했습니다.
출발신호음이 길게 들리자 기차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플랫홈에 서있던 사람들의 팔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듯 일제히 차창을 향하고
차창 안에서도 수많은 팔들이 내밀어져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팔들이 서로 붙잡고 흔드는 모습만
시야에 가득하여 눈이 시려왔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떠나버렸습니다.
남아있는 어머니들, 친구들, 형제들 그리고 여자친구인 듯 싶은
고운 소녀들이 서로 품에 기대어 울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마음은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가득 차서
누가 말만 시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집안이 텅 빈 것 같은 며칠이 지나고
가곡의 밤이 열리는 날이 돌아왔는데 거짓말처럼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그 날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첫 번째 가곡의 밤은
그 해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던 첫 추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추위에 훈련받으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싶은 걱정과
우리만 아름다운 가곡의 밤을 즐기게 된 일이 미안해서
동생 생각이 많이 났었던 기억과 더불어...
그 날 혼자 빠졌던 그 동생은 지금
가곡이 좋아서,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내마노'에서 행복해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일간지 주최로 제1회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 열린다는
광고에 애독자 00명을 초대하니 원하는 사람은
엽서를 보내달라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초대였기에 같이 살던 우리 4남매
모두의 이름으로 엽서를 네 장 보냈습니다.
그래도 한 두 장은 오려니 기대하면서...
가을이 깊어가면서 기다림의 나날도 흘러가고
시월 이십 며칠인가로 예정된 동생의 군 입대 날짜도
다가오는데 가곡의 밤 초대장이 날아들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동생의 이름으로 된 초대장만 빠지고
세 명 모두 초대되었습니다.
가곡의 밤은 시월의 마지막 날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군대 가고 없을 줄 알고 빠뜨렸을까?'
정말 신기했습니다.
동생이 입대하는 날은 凋落의 깊은 아름다움과
시월 특유의 청명함이 어우러진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왕십리 역 부근 어디에선가 모였던 그 어설픈 예비신병들이
줄을 서서 역으로 향할 때 배웅을 나간 우리도 모두 따라 갔습니다.
햇살이 환한 정거장엔 떠나는 젊은이들과 배웅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대열을 열심히 따라가 기차에 오른 동생의 손에는
아침에 만들어준 김밥 꾸러미가 터진 채 들려 있었고
차창으로는 서로 얼굴을 내밀어 친지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청년들의 모습이 꽃송이처럼 가득했습니다.
출발신호음이 길게 들리자 기차는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플랫홈에 서있던 사람들의 팔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듯 일제히 차창을 향하고
차창 안에서도 수많은 팔들이 내밀어져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팔들이 서로 붙잡고 흔드는 모습만
시야에 가득하여 눈이 시려왔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떠나버렸습니다.
남아있는 어머니들, 친구들, 형제들 그리고 여자친구인 듯 싶은
고운 소녀들이 서로 품에 기대어 울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마음은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가득 차서
누가 말만 시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집안이 텅 빈 것 같은 며칠이 지나고
가곡의 밤이 열리는 날이 돌아왔는데 거짓말처럼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그 날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렸던 첫 번째 가곡의 밤은
그 해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던 첫 추위와 함께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추위에 훈련받으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싶은 걱정과
우리만 아름다운 가곡의 밤을 즐기게 된 일이 미안해서
동생 생각이 많이 났었던 기억과 더불어...
그 날 혼자 빠졌던 그 동생은 지금
가곡이 좋아서,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내마노'에서 행복해 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