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홍 교수님 소식
참으로 오랜만에 박찬홍 교수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어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려고 광화문역으로 내려갔는데 저 앞에서 걸어오시는 분...
'얼굴'의 신귀복 선생님이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박찬홍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2007년도 봄에 박찬홍 교수님을 처음 만난건 서울시민대학 가곡교실에서였습니다.
가곡을 좋아하시면서도 동시에 저처럼 동요를 참 좋아하시는 교수님이 호감이 갔었습니다.
어느날 교수님을 모시고 종로 2가 YMCA에서 있었던 동요행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박교수님은 옛날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신귀복 선생님과 이웃학교의 정영택 선생님을
30년만에 만났습니다. 벌써 7년전 일입니다.
어제 신귀복 선생님을 넓고 넓은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만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
동시에 박찬홍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전화기 저편에서 박교수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
"작년에 거의 다 죽다가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살아 있어요."
"저 어제 신귀복 선생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래... 신귀복 선생님은 건강이 어떠시던가요 ?"
"아주 좋으시던데요. 여전하셨습니다."
박교수님은 아홉번의 암 수술로 체중은 빠질대로 빠져서 지금 40kg이라고 했습니다.
몇 년전만 해도 덕양구 노인복지회관에서 100 여명의 수강생들에게 동요를 지도하시던
박교수님이었는데 이제는 문밖 출입을 못하신다고 합니다.
"남들은 9m 창자 길이로 사는데 저는 죄다 떼어 내고 겨우 3m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먹으면 그대로 줄줄 나와요."
"교수님, 자서전을 한 번 써 보시면 어떨까요 ?"
"앞으로 10년이나 살 자신이 있다면 쓰겠는데... 이런 몸으로 무엇을 자랑하겠다고..."
"아닙니다. 교수님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입니다.
제 선친이 옛날 즐겨 보시던 딱지본 이야기 책 제목이 '십생구사'였습니다.
제목이 마치 교수님의 삶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십생구사' 책 표지 그림과 제목만 떠오르지 내용은 읽어보지 못해서 모릅니다.
그러므로 박교수님께 '십생구사' 운운 했지만, 아전인수격 적용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상상되는 것은 아홉번 죽었다가 마지막 열번째 산다는 뜻으로 어렷을적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김포공항 옆 방화동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박교수님댁은 행주대교만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 건너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 사십니다.
"한 번 놀러와요. 얼굴 좀 보게..."
사람이 그리울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생겼습니다.
가곡과 동요를 좋아하시고 즐겨 부르시는 박찬홍 교수님이 좀 더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설명 : 아주 오래 전 2008년 6월 5일 서울시립대학교 자작마루에서 찍은 단체사진입니다.
김영선 선생님의 가곡교실반에 초등학교 5학년인 박재진 어린이가 와서 '어느 봄날'이라는 동요를
부르고 몇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맨 오른편에 박교수님의 모습이 함께 있어서 올립니다.
어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려고 광화문역으로 내려갔는데 저 앞에서 걸어오시는 분...
'얼굴'의 신귀복 선생님이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박찬홍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2007년도 봄에 박찬홍 교수님을 처음 만난건 서울시민대학 가곡교실에서였습니다.
가곡을 좋아하시면서도 동시에 저처럼 동요를 참 좋아하시는 교수님이 호감이 갔었습니다.
어느날 교수님을 모시고 종로 2가 YMCA에서 있었던 동요행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박교수님은 옛날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신귀복 선생님과 이웃학교의 정영택 선생님을
30년만에 만났습니다. 벌써 7년전 일입니다.
어제 신귀복 선생님을 넓고 넓은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만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
동시에 박찬홍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전화기 저편에서 박교수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
"작년에 거의 다 죽다가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살아 있어요."
"저 어제 신귀복 선생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래... 신귀복 선생님은 건강이 어떠시던가요 ?"
"아주 좋으시던데요. 여전하셨습니다."
박교수님은 아홉번의 암 수술로 체중은 빠질대로 빠져서 지금 40kg이라고 했습니다.
몇 년전만 해도 덕양구 노인복지회관에서 100 여명의 수강생들에게 동요를 지도하시던
박교수님이었는데 이제는 문밖 출입을 못하신다고 합니다.
"남들은 9m 창자 길이로 사는데 저는 죄다 떼어 내고 겨우 3m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먹으면 그대로 줄줄 나와요."
"교수님, 자서전을 한 번 써 보시면 어떨까요 ?"
"앞으로 10년이나 살 자신이 있다면 쓰겠는데... 이런 몸으로 무엇을 자랑하겠다고..."
"아닙니다. 교수님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입니다.
제 선친이 옛날 즐겨 보시던 딱지본 이야기 책 제목이 '십생구사'였습니다.
제목이 마치 교수님의 삶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십생구사' 책 표지 그림과 제목만 떠오르지 내용은 읽어보지 못해서 모릅니다.
그러므로 박교수님께 '십생구사' 운운 했지만, 아전인수격 적용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상상되는 것은 아홉번 죽었다가 마지막 열번째 산다는 뜻으로 어렷을적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김포공항 옆 방화동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박교수님댁은 행주대교만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 건너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 사십니다.
"한 번 놀러와요. 얼굴 좀 보게..."
사람이 그리울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생겼습니다.
가곡과 동요를 좋아하시고 즐겨 부르시는 박찬홍 교수님이 좀 더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설명 : 아주 오래 전 2008년 6월 5일 서울시립대학교 자작마루에서 찍은 단체사진입니다.
김영선 선생님의 가곡교실반에 초등학교 5학년인 박재진 어린이가 와서 '어느 봄날'이라는 동요를
부르고 몇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맨 오른편에 박교수님의 모습이 함께 있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