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聲賦 / 歐陽修(1007~1072) 作 : : 이시환 譯
秋聲賦
내 밤에 독서를 하는데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놀라 나도 모르게 말하기를 ‘이상하도다.’
처음에는 하나 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더니
풀잎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되고,
그게 갑자기 치솟더니 물결에 돌 구르는 소리더라.
마치, 비바람이 몰아쳐서 나를 놀라게 하는
밤의 파도소리 같다.
그 파도가 물체에 닿으니
쇠붙이란 쇠붙이가 쨍그랑 쨍그랑 쇳소리를 낸다.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재갈을 물린
말을 탄 사람들이 적병을 향해 질주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내 동자에게
‘이것이 대체 무슨 소리냐? 네가 나가서 보거라.’ 이르매,
‘달과 별이 밝게 빛나고,
하늘에는 은하가 떠있고,
사방 어디에도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다만, 나뭇가지 사이 사이에서 소리가 난다.’고
동자 아뢰네.
그래, 이것이 바로 가을의 소리야.
아, 슬프고 슬프도다. 너는 어찌하여 왔는가.
무릇, 가을이 짓는 형상이란 그 빛깔이 애처롭고,
연기는 피어오르지만 구름은 사라지고,
하늘은 높고 해는 맑아 그 자태가 청명하기가 그지없네.
그 기운은 차가워서
사람의 살과 뼈를 쑤시는 것만 같고,
그 마음은 쓸쓸하여 산천이 다 적요하네.
그러므로 가을의 소리는
늘 처량하고 처량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는 없어라.
한때 초록의 풍성한 풀들이 무성함을 다투고,
좋은 나무와 파, 개여뀌가 즐거워할 만하다만
가을바람의 찬 기운을 당하여선
풀은 떨고 시들어서 그 빛깔이 변하고,
나무들은 이파리를 하나 둘 떨어뜨리네.
그렇듯 초목의 氣가 꺾이고 빠지는 것도
다 가을기운의 매서움 때문이리라.
대저, 가을은 ‘刑官’이고,
시절로 치면 ‘陰氣’이자 ‘兵象’이라.
오행으로 치면 ‘金’이어서 천지의 의로운 기운이므로
항상 ‘肅殺’로써 그 마음의 근본을 삼는다 했으니
만물은 봄에 나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고로
그 이치는 음악 속에도 있다.
‘商聲’은 서쪽 音의 주인이고,
‘夷則’은 7월의 리듬이기에, 상성은 만물에 상처를 준다.
살아있는 것들은 이미 늙어 슬프지만
결국은 다 죽게 마련.
만물의 무성함이 지나면
죽는 것이야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아, 초목은 무정한데도 때때로 비바람에 떨어지고,
사람은 생각하는, 만물의 영장이지만
백 가지 근심으로 마음을 물들이고,
만사가 몸을 수고롭게 하기에
그 가운데에서 살다보면
마음이야 늘 흔들리기 마련인 것을.
하물며,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생각하고,
지혜로써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함에랴.
짙은 단풍도 마른 나무가 되고,
반질거리는 검은 것도 희끗희끗해지는 것은 당연하네.
금석처럼 단단한 것도 아닌데
초목으로서 오래오래 살고자 함은 부질없어라.
생각하건대, 그 누가 저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가.
역시 가을소리, 가을기운인 걸
이를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동자는 대꾸도 안하고
머리를 드리운 채 잠을 자는데,
다만, 사방에서 벌레소리만 찌르르 찌르르
나의 탄식을 거들어주는 것만 같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