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바다/박원자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가 이번 장마에도 꿋꿋이 잘 견뎌내고 이제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 어서 오라한다. 그 연약한 가지에 몇 십 개씩 열린 탐스러운 고추를 보며 늘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찌하여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자기를 다 내어주는가...
잘 익은 고추를 따면서 농부들이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면서도 이 일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해마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지 바로 이런 기쁨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본가지는 어느 것이며 곁가지로 난 것들은 왜 다 따주어야 하는지도 이번에 배워 알게 되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바구니 가득 따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동네 어른들에게 곧잘 들었던 질문
"원자야, 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정식이가 따 갔어요."
언제나 죄 없는 두 살 위의 뒷집정식이가 범인이 되곤 하였다
너만 아들이 되었어도...
고추와 아들...
귀에 못이 밝힐 정도로 듣곤 하여 어린 아이였지만 은연중에 사내아이에 대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을 땐 쉬하는 모습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하였다.
우리어머닌 늦은 나이 마흔 한 살에 날 세상에 내어 놓을 때까지 이번에도 딸이면 아무도 몰래 들밭에서 낳아 감쪽같이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컸으면 막 태어난 죄 없는 어린 생명을 버리고자 하셨을까?
어머닌 그 때까지 내리 딸만 넷을 낳으셨고 그 당시 아들이 없다는 이유 또 아버지의 바람끼까지 합해 이미 작은 부인을 얻어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날 임신하였으니 심리적 불안감이 얼마나 크셨을까... 산통이 오자 차마 들밭에는 못가시고 안방에서 낳았는데 딸이어서 속치마로 둘둘 말아 윗목에 놓아두셨다고. 근데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아랫집에 사는 작은 어머니가 큰 오빠와 함께 왔는데 큰오빠가 아기를 풀어놓자고... 해서 차마 못 버리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키우셨다고 한다.
노후에 우리 어머닌 큰언니네가 모셨는데 큰언니는 나와 스물 한 살의 차이가 나 마치 친정어머니 같은 분으로 큰언니처럼 효녀도 없건만 내가 아들이면 우리어머니를 이렇게 모시겠느냐 나는 동생들에게 죄인이라고 죄송해 했고 우리어머닌 딸집에 사시는 당신의 처지가 사위에게 늘 죄송한 마음으로 건강하실 땐 언니집의 상머슴처럼 일을 해주시며 지금이라도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낳겠다고 눈물 반 한숨 반으로 사셨던 우리어머니..
하마터면 바리데기가 될 뻔한 내 막내딸이 이렇게 효도를 한다고 단 한 번도 효도를 해본 적이 없는데 몇 푼의 용돈을 어쩌다 한 번 드리면 하시던 말씀이 생생이 귓전을 맴돈다 .
빨갛게 익은 고추 밭에 무형의 향기로 오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금년에 태양초고추로 담근 겨울김장김치와
고추장을 드리련만...
2006.8.4
우리 큰언니는 실제로 군청에서 주는 효도상을 수상하였음
바다/박원자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가 이번 장마에도 꿋꿋이 잘 견뎌내고 이제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 어서 오라한다. 그 연약한 가지에 몇 십 개씩 열린 탐스러운 고추를 보며 늘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찌하여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자기를 다 내어주는가...
잘 익은 고추를 따면서 농부들이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면서도 이 일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해마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지 바로 이런 기쁨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본가지는 어느 것이며 곁가지로 난 것들은 왜 다 따주어야 하는지도 이번에 배워 알게 되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바구니 가득 따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동네 어른들에게 곧잘 들었던 질문
"원자야, 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정식이가 따 갔어요."
언제나 죄 없는 두 살 위의 뒷집정식이가 범인이 되곤 하였다
너만 아들이 되었어도...
고추와 아들...
귀에 못이 밝힐 정도로 듣곤 하여 어린 아이였지만 은연중에 사내아이에 대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을 땐 쉬하는 모습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하였다.
우리어머닌 늦은 나이 마흔 한 살에 날 세상에 내어 놓을 때까지 이번에도 딸이면 아무도 몰래 들밭에서 낳아 감쪽같이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컸으면 막 태어난 죄 없는 어린 생명을 버리고자 하셨을까?
어머닌 그 때까지 내리 딸만 넷을 낳으셨고 그 당시 아들이 없다는 이유 또 아버지의 바람끼까지 합해 이미 작은 부인을 얻어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날 임신하였으니 심리적 불안감이 얼마나 크셨을까... 산통이 오자 차마 들밭에는 못가시고 안방에서 낳았는데 딸이어서 속치마로 둘둘 말아 윗목에 놓아두셨다고. 근데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아랫집에 사는 작은 어머니가 큰 오빠와 함께 왔는데 큰오빠가 아기를 풀어놓자고... 해서 차마 못 버리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키우셨다고 한다.
노후에 우리 어머닌 큰언니네가 모셨는데 큰언니는 나와 스물 한 살의 차이가 나 마치 친정어머니 같은 분으로 큰언니처럼 효녀도 없건만 내가 아들이면 우리어머니를 이렇게 모시겠느냐 나는 동생들에게 죄인이라고 죄송해 했고 우리어머닌 딸집에 사시는 당신의 처지가 사위에게 늘 죄송한 마음으로 건강하실 땐 언니집의 상머슴처럼 일을 해주시며 지금이라도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낳겠다고 눈물 반 한숨 반으로 사셨던 우리어머니..
하마터면 바리데기가 될 뻔한 내 막내딸이 이렇게 효도를 한다고 단 한 번도 효도를 해본 적이 없는데 몇 푼의 용돈을 어쩌다 한 번 드리면 하시던 말씀이 생생이 귓전을 맴돈다 .
빨갛게 익은 고추 밭에 무형의 향기로 오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금년에 태양초고추로 담근 겨울김장김치와
고추장을 드리련만...
2006.8.4
우리 큰언니는 실제로 군청에서 주는 효도상을 수상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