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술
마 술
거실에 조용히 홀로 앉아 있노라면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어떤 까마득한 기억을 회상케 해 주는데, 도대체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아주 막막하고 막연한 가슴의 울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이 순간, 아주 미세하지만 어느 날의 그때와 같은 젖은 냄새가 나는 바람이 내 코를 스치고, 또 그 어려운 인연의 마주침이 도래하는 순간 내 눈이 바라보는 그곳의 햇빛이 그 어떤 회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반사광을 발밑에 드리우고 있을 때, 나의 심정은 전혀 뜻하지 않는 어느 때로 돌아가 그 순간의 희노애락을 불러오게 되는데, 아쉬운 것은 그 순간이 지극히 찰나와 같아 미세한 바람이 조금이라도 강도를 더하여 살을 스치는 순간에는 마치 필름을 바꿔 끼우듯이 다른 세계로 인도되는 것이어서 동화 같은 신비감을 놓치게 되는데, 이러한 꿈속의 정경 같은 몽환은 어느 때든지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달콤한 환상은 미세한 바람이나 새소리처럼 아름다운 매개물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혹은 파리든지, 모기라 하더라도 지워져 있던 이미지를 불러내기에는 충분한 것이어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어김없이 찾아와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심적 상태가 오래 계속되거나 자주 와주지 않는다는데 나는 갈증을 느낀다. 특히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흰 벽에 석양이 비추어 초라하고 비스듬한 햇빛이 황금색으로 빛날 때이다. 한 줌의 햇빛이 이제 막 사라지려 할 때, 그 하얀 벽은 얼마나 고즈넉이 사연을 간직한 듯 보이는가 말이다. 물론 그러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흰 벽을 본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마술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주위가 아무런 방해 없이 일치를 이루어 무념하고 무상할 때일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나도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로 인도되어 마음의 희열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회상이 아니다. 사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나갔거나, 찾아 올수 있는 마음의 상태와 같은 ‘마음의 흔들림’일 것이다. 강변의 갈대가 달빛에 흐느끼듯이 나는 주위의 떨림에 반응한다. 그 반응이 민감하고 빠르며 정확할수록 나의 희열은 순수할 것이다. 지나간 날들의 회상만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이 이상한 놀이는 창조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이 놀이는 모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은 아니다. 단순한 창조이다. 고요했던 심적 상태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사한 심적 상태의 복사’는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마음의 흐름’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니겠는지...
거실에 조용히 홀로 앉아 있노라면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은 어떤 까마득한 기억을 회상케 해 주는데, 도대체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아주 막막하고 막연한 가슴의 울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이 순간, 아주 미세하지만 어느 날의 그때와 같은 젖은 냄새가 나는 바람이 내 코를 스치고, 또 그 어려운 인연의 마주침이 도래하는 순간 내 눈이 바라보는 그곳의 햇빛이 그 어떤 회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반사광을 발밑에 드리우고 있을 때, 나의 심정은 전혀 뜻하지 않는 어느 때로 돌아가 그 순간의 희노애락을 불러오게 되는데, 아쉬운 것은 그 순간이 지극히 찰나와 같아 미세한 바람이 조금이라도 강도를 더하여 살을 스치는 순간에는 마치 필름을 바꿔 끼우듯이 다른 세계로 인도되는 것이어서 동화 같은 신비감을 놓치게 되는데, 이러한 꿈속의 정경 같은 몽환은 어느 때든지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달콤한 환상은 미세한 바람이나 새소리처럼 아름다운 매개물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혹은 파리든지, 모기라 하더라도 지워져 있던 이미지를 불러내기에는 충분한 것이어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어김없이 찾아와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심적 상태가 오래 계속되거나 자주 와주지 않는다는데 나는 갈증을 느낀다. 특히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흰 벽에 석양이 비추어 초라하고 비스듬한 햇빛이 황금색으로 빛날 때이다. 한 줌의 햇빛이 이제 막 사라지려 할 때, 그 하얀 벽은 얼마나 고즈넉이 사연을 간직한 듯 보이는가 말이다. 물론 그러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흰 벽을 본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마술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주위가 아무런 방해 없이 일치를 이루어 무념하고 무상할 때일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나도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로 인도되어 마음의 희열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회상이 아니다. 사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나갔거나, 찾아 올수 있는 마음의 상태와 같은 ‘마음의 흔들림’일 것이다. 강변의 갈대가 달빛에 흐느끼듯이 나는 주위의 떨림에 반응한다. 그 반응이 민감하고 빠르며 정확할수록 나의 희열은 순수할 것이다. 지나간 날들의 회상만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이 이상한 놀이는 창조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이 놀이는 모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은 아니다. 단순한 창조이다. 고요했던 심적 상태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사한 심적 상태의 복사’는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마음의 흐름’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