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체' 하는 자가 '잘난' 자를 훈계한다
세상은 가지각색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서 세상살이가 피곤
할 때도 있지만 조미료 또는 감초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깨소금 맛 나는 재미가 있을 때도 있다. 물론 그것은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농담을 하고, 분위기를 돋굴 때만 그러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고한다는
생각보다는 애처럽고 가엾다. 더 나아가서는 구역질이 날 때도 있다.
잘 난 사람은 잘 난 맛에 살고, 그보다 못난 사람은 또 자신에
맞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 그다지 잘나지 못한 사람이 잘난척 하는
것을 보면 참 그것도 안타깝고 보기가 딱하다. 그저 있는 대로 살지,
왜 '잘난 체'를 하는 걸까. 잘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해도 봐주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그리 잘나지도 않은 사람이 노상 그러고 있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하긴 자신이 잘났는지 못났는지 알기도
그리 쉽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한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에게는 지혜가 풍부하게 갖추어지기 어렵다.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잘난 맛에 산다'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난체 하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뿐이리라. 잡음을
낼 필요가 과연 있는가. 잘난체 하는 사람에게 훈계하려다간 된통
당할 가능성도 있다. 잘났다고 폼 재는데 거기에 재 뿌리는 식이다.
차라리 진정 잘난 이에게 조언을 하라. 잘난 이는 체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자신감도 있고,
정서적 안정도 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정신적
여유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가려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다른 이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오해하면 괜히 좋았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고, 서로 감정만 상해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는 보기 흉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잘난 척하고픈 사람들은 많이 있다. 나도 때론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할 때도 더러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다. 정도의 문제이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잘난 체
하는 것을 받아 줄 수 있지만 너무 도가 지나치면 사람들이 그리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잘난 사람도 욕을 먹을 텐데
척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가능하면 잘난체를 하지말자. 잘난
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알아 보게 마련이다.
못난 자가, 볼 품 없는 자가 자꾸 '아는 체', '잘난 체'를 하면
언젠가 된통 당할 수도 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지혜도
출중한 이들에게 아는 체하다간 혼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는 체, 잘난 체, 배운 체, 있는 체... 이런 것들 가능하면 삼가하고
서로 잘 어울리고자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죽이거나 감추고 살면
어떨까. 정말 잘났다면 입증해 보이라. 인정을 받으리라. 아님
아주 혼나고 말 것이고. 문제는 잘난 체 하는 이는 그런 낭패를
당해도 또 잘난 체를 하게 될 것이다. 고로 이는 지혜의 문제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없이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서 세상살이가 피곤
할 때도 있지만 조미료 또는 감초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깨소금 맛 나는 재미가 있을 때도 있다. 물론 그것은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농담을 하고, 분위기를 돋굴 때만 그러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고한다는
생각보다는 애처럽고 가엾다. 더 나아가서는 구역질이 날 때도 있다.
잘 난 사람은 잘 난 맛에 살고, 그보다 못난 사람은 또 자신에
맞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 그다지 잘나지 못한 사람이 잘난척 하는
것을 보면 참 그것도 안타깝고 보기가 딱하다. 그저 있는 대로 살지,
왜 '잘난 체'를 하는 걸까. 잘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해도 봐주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그리 잘나지도 않은 사람이 노상 그러고 있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하긴 자신이 잘났는지 못났는지 알기도
그리 쉽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한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에게는 지혜가 풍부하게 갖추어지기 어렵다.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 잘난 맛에 산다'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난체 하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뿐이리라. 잡음을
낼 필요가 과연 있는가. 잘난체 하는 사람에게 훈계하려다간 된통
당할 가능성도 있다. 잘났다고 폼 재는데 거기에 재 뿌리는 식이다.
차라리 진정 잘난 이에게 조언을 하라. 잘난 이는 체를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자신감도 있고,
정서적 안정도 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정신적
여유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가려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면 다른 이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오해하면 괜히 좋았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고, 서로 감정만 상해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는 보기 흉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잘난 척하고픈 사람들은 많이 있다. 나도 때론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할 때도 더러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다. 정도의 문제이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잘난 체
하는 것을 받아 줄 수 있지만 너무 도가 지나치면 사람들이 그리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잘난 사람도 욕을 먹을 텐데
척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가능하면 잘난체를 하지말자. 잘난
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알아 보게 마련이다.
못난 자가, 볼 품 없는 자가 자꾸 '아는 체', '잘난 체'를 하면
언젠가 된통 당할 수도 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지혜도
출중한 이들에게 아는 체하다간 혼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는 체, 잘난 체, 배운 체, 있는 체... 이런 것들 가능하면 삼가하고
서로 잘 어울리고자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죽이거나 감추고 살면
어떨까. 정말 잘났다면 입증해 보이라. 인정을 받으리라. 아님
아주 혼나고 말 것이고. 문제는 잘난 체 하는 이는 그런 낭패를
당해도 또 잘난 체를 하게 될 것이다. 고로 이는 지혜의 문제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