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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록

한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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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3.11~]

【생애와 활동】
경남 밀양 출생. 만주 영안초등학교를 다녔고, 밀양에서 농업고등학교를 나왔다.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후 신과대학을 마쳤ㅌ으며, 다시 교육 대학원에 입학해 음악과를 졸업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부산진초등학교 교사를 지냈고, 1958년에서 1968년까지는 환일중.고교를 교사로, 1968년에서 1990년까지 신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부회장과 한국교회음악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목록】
○ 가 곡
1. <이별> (1948)
2. <금잔디> (김소월 시, 1958)
3. <나그네> (박목월 시, 1968)
4. <진달래> (이영도 시, 1972)
5. <청노루> (조지훈 시, 1986)
6. <서시> (윤동주 시, 1989)
7. <소곡> (한순분 시, 1990)

○ 동 요
1. 동요 <꼬부랑할머니> (1964)

○ 찬 송 가
1. <그리던 본향> (차조운 시, 1966)
2. <바람 속의 주> (유경환 시, 1978)
3. 성가합창 <주의 기도> (1983)
4. <주여 날보내소서> (1986)
5. <사막> (유경환 시, 1987)
6. <충만하게 하소서>
7. <주여 어서오소서>
8. <기원> (이상윤 시, 1994)
9. <오 놀라운 그 사랑> (엄창업 시, 1994)
10. <축혼가> (1995)
11. <이 영원 속의 한 목숨을> (유경환 시) -외

○ 교 성 곡
1. <기쁘다 구주오셨네> (1994)
2.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편 23편, 이상윤시, 1995)
3. <십자상의 칠언> (1996)

【작 품 집】
1.『한태근 성가작곡집』 (기독교음악사, 1988)
2.『크리스마스 칸타타:기쁘다 구주 오셨네』 (미완성, 1994)
3.『성구찬송가1』 (아가페, 1994)
4.『성구찬송가2』 (로고스, 1995)
5.『시편 칸타타:여호와는 나의목자』 (1995)
6.『부활절 칸타타:십자가상의 칠언』 (아가페, 1996)

**** 관련기사****

한태근(75)은 4월의 작곡가다.봄이면 산과 들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의 곡을 쓴 이다.“눈이 부시네 저기/난만히 멧등마다/그날 스러져간/젊음 같은 꽃사태가/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1절) 이 노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대학생 등 운동권을 중심으로 불려온,아침이슬 등과 더불어 이른바 ‘운동권 가요’의 고전으로 꼽힌다.유신의 칼날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던 당시 대학가와 공장,교회 등지에서 젊은이들은 몰래몰래 이 노래를 부르며 1960년 4월19일 스러진 젊은 넋을 기리고,민주와 자유를 갈망했다.
‘진달래’란 원곡명보다 ‘4·19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이 곡의 작사자는 유명한 여류문인인 고 이영도 시인.청마 유치환과 주고 받은 편지를 묶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펴낸 이다.이씨는 1968년 펴낸 시조집 ‘석류’에 ‘다시 4·19날에’라는 부제와 함께 이 시조를 담았다.한씨는 1973년 강원룡 목사가 이끌던 크리스천아카데미의 문인모임 ‘시곡동우회’에서 이 노랫말을 건네받아 곡을 썼다.한씨는 누나의 친구인 이씨의 시조를 보는 순간 4·19혁명 당시 음악교사로 있던 균명고(현재 환일고)의 제자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학교 밖으로 내닫던 광경이 또렷이 떠오르는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그렇듯 너희는 지고/욕처럼 남은 목숨/지친 가슴위엔/하늘이 무거운데/연련히 꿈도 설워라/물이 드는 이 산하”(2절)
한태근은 이렇듯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는 알지만,지은이는 잘 모르는 작곡가다.가령 그는 누구나 아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의 노랫말과 곡을 지은 이다.한씨의 대학 때 전공은 신학.하지만 한씨는 연세대에 진학하기 전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에게 음악을 배웠다.경남 밀양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한씨는 광복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중국 옌볜에서 돌아와 밀양농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부산진초등학교 교사가 됐다.당시 예능교사가 태부족하던 부산교육위원회는 ‘중등음악교원양성소’를 개설했는데 한씨는 여기서 윤이상을 만나 “어설픈 서양 흉내 집어던지고 한국적인 리듬으로 작곡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교 음악교사,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장,음악목사 등을 지낸 한씨는 찬송가를 비롯해 동요·가곡 등 200여곡을 작곡했다.1989년에는 연세대의 요청으로 윤동주의 ‘서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꼬부랑 할머니나 진달래나 모두 밑으로부터 번져 나갔습니다.교과서에 실린 일도 없고,단 한 차례 방송을 탄 일도 없지만,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노랫말과 리듬을 전하며,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마전 만난 한옹은 군사독재 시절 수유리 4·19묘역에서 오전의 공식행사와 별도로 오후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이 주축이 돼 열리던 비공식 행사에서 ‘묵념’구령에 이어 “눈이 부시네 저기…”하는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군중들이 고개를 숙인 채 부르던 합창에서 받은 진한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했던 4·19 정신이 갈수록 퇴색해 이제는 기념관의 ‘박제품’이 돼 버린 지 오래다.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와 자유의 시대가 열렸지만 오히려 4·19혁명 주체들은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 있고,그들을 추모한 노래는 잊혀져 가고 있다.지난해 3·1절 공식 기념식에서 운동권 가요인 상록수가 ‘삼일절의 노래’ 뒤에 가수 양희은에 의해 불렸다.또 ‘터’와 ‘꿈을 먹는 젊은이’가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에서 불렸다.오는 19일 4·19혁명 43주년 기념식은 ‘진달래’가 당당하게 울려 퍼지며 자유와 민주,정의의 4·19정신이 박제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대한매일 [200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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