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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록

테너 이상춘(李相春, 191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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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서양음악이 들어온 초창기, 음악적인 여건이나 일반의 서양음악에 대한 인식이 미흡할 때, 이상춘 선생은 일찍이 음악에 뜻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성악에 대한 수련을 쌓은 후 고국에 돌아와 이땅에 서양음악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 왔고 특히 성악의 발성법과 창법의 체계화에도 선구자로서의 커다란 업적을 이루었다.

이상춘 선생은 1910년 10월 24일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30년 20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下八川圭祐, 平問文壽, 그리고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로 타르쟈코모 여사, 독일의 네토, 게레베 여사등에게 사사하였으며, 1936년 동경중앙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해 이상춘 선생은 전일본 음악콩쿠르에 입상을 하고 1940년 동경군인회관에서독창회를 가졌으며 오페라 '로자리오 부인'등 오페라 분야에서도 크게 활약하여 당시 일본성악계에서 주목받는 유능한 테너로 평가받기도 했다.

해방 후, 1946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부임하면서 1975년 학장직을 퇴임할 때 까지, 약 30년동안 후진들의 교육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국내는 물론 일본.마국등지에서 11회에 걸친 독창회를 가졌으며 '춘향전'. '파라아치' 등 많은 오페라에도 출연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발성법과 창법을 몸소 창안하며 이를 체계화하기도 했다.

또한 그 문하에서 배출된 많은 유능한 성악인들은 이미 오늘날 우리성악계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예술인의 최고 명예인 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이상춘 선생은 합리적인 발성법과 짜임새있는 독특한 창법으로 시원하고 유창한 노래로 유명하지만, 특히 우리의 토속적인 감각과 구수한 민족적인 멋의 표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유한 창법을 가지고 있다. 선생이 우리 성악계에 끼친 영향과 특히 창법개혁애 공헌한 업적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수 있도록 기록될 것이다.

그는 1946년 부터 1975년 까지 서울대 음대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1년 5월 9일 밤9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부아파트 8동1301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이상춘 선생의 프로필


동경중앙음악학교 성악과 졸업, 동 학교 교수 역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역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장
11회 독창회 개최
1960. 1 소성훈장
1969. 7 예술원상
1974.11 서울시 문화상
1974. 5 국민훈장 동백장
1976. 6 한국성악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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