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렬
이흥렬을 가리켜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부르는 것은 깨끗하고 담백하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가곡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로 시작되는 가곡 <바위고개>는 그가 25세 때 만든 작품으로 일제의 탄압 속에서 신음하던 조국 산천을 바위고개로, 무궁화꽃을 진달래로 비유한 민족의 울분을 담은 가곡이다. 이흥렬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끼친 공로에는 비단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그리고는 진실로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서의 체취를 진하게 남김으로써 음악가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전에 스스로 음악을 통해 감동하고 그 속에 사랑을 배우며 실천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1909년 7월 17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이흥렬은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두 분의 누이도 일찍 죽어 형님과 함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손에 의해 자라게 되었다. 이흥렬의 술회에 의하면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 이유 중에는 첫째, 고향 원산의 자연 풍광이 아름다워 ‘한국의 나폴리’라 불렸는가 하면 항구에는 세계 각국의 군함들이 들어와 해군군악대들이 시가 행진을 하며 멋진 군악을 연주,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 들 수 있었고, 둘째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종교적 가정 교육을 받아 교회의 종소리와 선교사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가 음악의 씨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경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푼푼이 돈을 모으며 피아노에 매달렸던 그는, 피아노에 정열을 쏟는 정성이 갸륵했던지 고향의 어머니가 매달 30원씩을 부쳐주어 겨우 돈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없던 그는 졸업 연주에서는 기필코 A급이 모여있는 3부에 나가기 위해 피아노를 반드시 사야 했고, 결국 어머니에게서 피아노값 400원을 송금받아 야마하 100호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흥렬은 졸업연주회에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동경생활을 마감했다.
1931년 일본동경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귀국한 그는 독일 유학을 생각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피아노를 가지고 고향으로 귀향했다. 이때부터 1957년까지 원산 광명학교, 경성보육학교, 배재중학교, 풍문여자중·고등학교 등지에서 보통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동요작곡을 시작했다. 1932년부터는 본격적인 작곡활동에 들어가, <자장가>를 비롯하여 <코스모스를 노래함>, <봄이 오면>, <아리랑노래>, <창백한 마음> 등의 가곡을 한 해 동안에 작곡하기도 했다.
1933년 이흥렬은 원산 루씨여고를 졸업하고 보혜여자관의 교사로 있던 임호선과 결혼했고, 1935년 바리톤 김문보의 귀국 독창회 반주를 맡게 되면서 고향 원산을 떠나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이흥렬은 이 때 경성보육학교 전임으로 취임, 홍난파를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활동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일제가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는 음악유치원 설립을 총독부에 신청하기도 했었다.
음악유치원 설립에 실패한 그는 모교인 광명보통학교를 찾아 한호석 교장에게 그의 포부를 밝히고 음악을 전담, 전교생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몇 달 후 이 학교는 음악학교로 변모했다.
그는 '국어시간의 노래', '산수시간의 노래' 등 학과마다 노래를 만들어 수업 시작전에 아이들에게 제창하도록 했다.
또한, 피아노 3중주단을 조직했고 그 외에도 홍난파와 함께 경성방송관현악단과 성서피아노3중주단을 조직하고 그 외에도 아폴로합창단, 고려음악협회, 대한음악협회를 조직했다. 1972년에는 숙명여대로부터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80년 11월 17일 오후 5시, 자택에서 별세하기까지 그는 북아현동에서 20여 년을 살았고 교회의 장로직을 맡고 있던 부인과 함께 슬하에 7남매를 키우면서도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주위를 즐겁게 해주었다.
- 약력 -
1931년 일본 동경음악대학교 졸업
1931년~1957년 원산광명학교, 경성보육학교, 배재중학교, 풍문여중·고등학교 교사
1957년~1964년 고려대학교 촉탁교수
1957년~198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63년~1974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1969년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1972년 숙명여자대학교 명예철학 박사
- 상훈 -
서울시 문화상
대통령 문화훈장
고마우신선생님상
대한민국예술원상
- 주요작품 -
* 성악곡
<내 고향>(이흥렬 작사, 1926) <행복>(1932) <자장가>(김동환 시, 1932) <부끄러움>(주요한 시, 1932) <봄이 오면>(김동환 시, 1932) <비오는 밤>(이흥렬 시, 1932) <아랑고개>(김동환 시, 1932) <코스모스를 노래함>(이기순 시, 1932) <창백한 마을>(이기순 시, 1932) <가을 비>(최남선 시, 1932) <가신 누님>(주요한 시, 1932) <고향 그리워>(1933) <바우 고개>(이흥렬 시) 등 다수
* 동요
<꾀꼬리의 노래>(이은상 요) <소나무 노래>(이은상 요) <봉선화 노래>(이은상 요) <등산지기 노래>(이은상 요) <나비 노래>(이은상 요) <기러기 노래>(이은상 요) <단풍 노래>(이은상 요) <까치 노래>(이은상 요) <선녀 노래>(이은상 요) <매화 노래>(이은상 요) <달 노래>(이은상 요) <닭 노래>(이은상 요) <고양이 노래>(이은상 요) <길 가르치는 노래>(이은상 요) <두꺼비 노래>(이은상 요) <편지 노래>(이은상 요) <제비 노래>(이은상 요) <진달래 노래>(이은상 요) <아들 노래>(이은상 요) <종달새 노래>(이은상 요) <봄 노래>(이은상 요) <걸음마>(김철수 요) <보름달>(김철수 시, 1946) <식목일>(박은종 요) <불조심 노래>(윤석중 요) <연아 연아 올라라> <가을 바람> <아기방울>(김영일 요) <섬집 아기>(한인현 요) <새싹>(이원수 요) <귀뚜라미 우는 밤>(임인수 요) <파란 초롱>(이원수 요) <무슨 빛일까>(마해송 요) <어린이 대한>(강소천 요) <대한 어린이 행진곡>(강소천 요) <같이 같이 다니자>(윤석중 요) <봄은 언제 오나요>(이원수 요, 1964) <소년 소녀의 노래>(윤영희 요 1964) <새봄의 노래>(조훈파 요, 1964) <무궁화 새로 피네> <시냇물>(박화목 요) <여름비>(박지형 요) <겨울의 자장가>(석용원 요, 1967) <손수건>(어효선 요, 1967) <참새>(이문희 요, 1967) <새 1학년 맞이 노래>(1968) <인공위성> <가을하늘> <바다의 달에 뜬 밤>(박홍근 요, 1970) <여름의 궁성>(김요섭 요, 1970) <자장가>(한정동 요, 1970) <하얀 얼굴>(박화목 요, 1970) <서릿 바람>(장수철 요, 1972) <하늘>(윤석중 요, 1972) <고향바다>(박경종 요, 1972) <까치>(어효선 요, 1973) <우리 엄마>(박화목 요, 1973) <봄맞이>(1973) <고향>(이석현 요, 1975) <별아기들>(한정도 요, 1975) <호랑나비>(김영일 요, 1975) <하늘나라 꿈나라>(엄기원 요, 1976) <나비야>(한정동 요, 1976) <골목안의 밤>(장수철 요, 1976) <포플라>(어효선 요, 1976)
* 합창곡
<배위에서> <백로곡> <닐리리야>
* 기악곡
피아노3중주곡 <5월의 노래> 교향시 <동과 서>
- 저서 -
<음악의 종합연구>(1958) <새로운 음악통론>(1962)
참조사이트 - 대한민국예술원/내마음의 노래 편집
1909년 7월 17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이흥렬은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두 분의 누이도 일찍 죽어 형님과 함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손에 의해 자라게 되었다. 이흥렬의 술회에 의하면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 이유 중에는 첫째, 고향 원산의 자연 풍광이 아름다워 ‘한국의 나폴리’라 불렸는가 하면 항구에는 세계 각국의 군함들이 들어와 해군군악대들이 시가 행진을 하며 멋진 군악을 연주,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 들 수 있었고, 둘째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종교적 가정 교육을 받아 교회의 종소리와 선교사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가 음악의 씨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경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푼푼이 돈을 모으며 피아노에 매달렸던 그는, 피아노에 정열을 쏟는 정성이 갸륵했던지 고향의 어머니가 매달 30원씩을 부쳐주어 겨우 돈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없던 그는 졸업 연주에서는 기필코 A급이 모여있는 3부에 나가기 위해 피아노를 반드시 사야 했고, 결국 어머니에게서 피아노값 400원을 송금받아 야마하 100호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흥렬은 졸업연주회에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동경생활을 마감했다.
1931년 일본동경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귀국한 그는 독일 유학을 생각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피아노를 가지고 고향으로 귀향했다. 이때부터 1957년까지 원산 광명학교, 경성보육학교, 배재중학교, 풍문여자중·고등학교 등지에서 보통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동요작곡을 시작했다. 1932년부터는 본격적인 작곡활동에 들어가, <자장가>를 비롯하여 <코스모스를 노래함>, <봄이 오면>, <아리랑노래>, <창백한 마음> 등의 가곡을 한 해 동안에 작곡하기도 했다.
1933년 이흥렬은 원산 루씨여고를 졸업하고 보혜여자관의 교사로 있던 임호선과 결혼했고, 1935년 바리톤 김문보의 귀국 독창회 반주를 맡게 되면서 고향 원산을 떠나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이흥렬은 이 때 경성보육학교 전임으로 취임, 홍난파를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활동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일제가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는 음악유치원 설립을 총독부에 신청하기도 했었다.
음악유치원 설립에 실패한 그는 모교인 광명보통학교를 찾아 한호석 교장에게 그의 포부를 밝히고 음악을 전담, 전교생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몇 달 후 이 학교는 음악학교로 변모했다.
그는 '국어시간의 노래', '산수시간의 노래' 등 학과마다 노래를 만들어 수업 시작전에 아이들에게 제창하도록 했다.
또한, 피아노 3중주단을 조직했고 그 외에도 홍난파와 함께 경성방송관현악단과 성서피아노3중주단을 조직하고 그 외에도 아폴로합창단, 고려음악협회, 대한음악협회를 조직했다. 1972년에는 숙명여대로부터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980년 11월 17일 오후 5시, 자택에서 별세하기까지 그는 북아현동에서 20여 년을 살았고 교회의 장로직을 맡고 있던 부인과 함께 슬하에 7남매를 키우면서도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주위를 즐겁게 해주었다.
- 약력 -
1931년 일본 동경음악대학교 졸업
1931년~1957년 원산광명학교, 경성보육학교, 배재중학교, 풍문여중·고등학교 교사
1957년~1964년 고려대학교 촉탁교수
1957년~198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63년~1974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1969년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1972년 숙명여자대학교 명예철학 박사
- 상훈 -
서울시 문화상
대통령 문화훈장
고마우신선생님상
대한민국예술원상
- 주요작품 -
* 성악곡
<내 고향>(이흥렬 작사, 1926) <행복>(1932) <자장가>(김동환 시, 1932) <부끄러움>(주요한 시, 1932) <봄이 오면>(김동환 시, 1932) <비오는 밤>(이흥렬 시, 1932) <아랑고개>(김동환 시, 1932) <코스모스를 노래함>(이기순 시, 1932) <창백한 마을>(이기순 시, 1932) <가을 비>(최남선 시, 1932) <가신 누님>(주요한 시, 1932) <고향 그리워>(1933) <바우 고개>(이흥렬 시) 등 다수
* 동요
<꾀꼬리의 노래>(이은상 요) <소나무 노래>(이은상 요) <봉선화 노래>(이은상 요) <등산지기 노래>(이은상 요) <나비 노래>(이은상 요) <기러기 노래>(이은상 요) <단풍 노래>(이은상 요) <까치 노래>(이은상 요) <선녀 노래>(이은상 요) <매화 노래>(이은상 요) <달 노래>(이은상 요) <닭 노래>(이은상 요) <고양이 노래>(이은상 요) <길 가르치는 노래>(이은상 요) <두꺼비 노래>(이은상 요) <편지 노래>(이은상 요) <제비 노래>(이은상 요) <진달래 노래>(이은상 요) <아들 노래>(이은상 요) <종달새 노래>(이은상 요) <봄 노래>(이은상 요) <걸음마>(김철수 요) <보름달>(김철수 시, 1946) <식목일>(박은종 요) <불조심 노래>(윤석중 요) <연아 연아 올라라> <가을 바람> <아기방울>(김영일 요) <섬집 아기>(한인현 요) <새싹>(이원수 요) <귀뚜라미 우는 밤>(임인수 요) <파란 초롱>(이원수 요) <무슨 빛일까>(마해송 요) <어린이 대한>(강소천 요) <대한 어린이 행진곡>(강소천 요) <같이 같이 다니자>(윤석중 요) <봄은 언제 오나요>(이원수 요, 1964) <소년 소녀의 노래>(윤영희 요 1964) <새봄의 노래>(조훈파 요, 1964) <무궁화 새로 피네> <시냇물>(박화목 요) <여름비>(박지형 요) <겨울의 자장가>(석용원 요, 1967) <손수건>(어효선 요, 1967) <참새>(이문희 요, 1967) <새 1학년 맞이 노래>(1968) <인공위성> <가을하늘> <바다의 달에 뜬 밤>(박홍근 요, 1970) <여름의 궁성>(김요섭 요, 1970) <자장가>(한정동 요, 1970) <하얀 얼굴>(박화목 요, 1970) <서릿 바람>(장수철 요, 1972) <하늘>(윤석중 요, 1972) <고향바다>(박경종 요, 1972) <까치>(어효선 요, 1973) <우리 엄마>(박화목 요, 1973) <봄맞이>(1973) <고향>(이석현 요, 1975) <별아기들>(한정도 요, 1975) <호랑나비>(김영일 요, 1975) <하늘나라 꿈나라>(엄기원 요, 1976) <나비야>(한정동 요, 1976) <골목안의 밤>(장수철 요, 1976) <포플라>(어효선 요, 1976)
* 합창곡
<배위에서> <백로곡> <닐리리야>
* 기악곡
피아노3중주곡 <5월의 노래> 교향시 <동과 서>
- 저서 -
<음악의 종합연구>(1958) <새로운 음악통론>(1962)
참조사이트 - 대한민국예술원/내마음의 노래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