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신요칼럼
신요칼럼
 

영화 <카핑 베토벤>

鄭宇東 0 2380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2006)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 같은 인물입니다.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베토벤이 누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클래식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에 가면 어
디에서나 특유의 산발 머리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토벤
의 초상화나 데스마스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 투영된
베토벤의 모습은 고뇌하는 예술가의 초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
렇게 시대의 고통을 짊어진 채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의
이미지는 어느새 진정한 예술가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카핑 베토벤]에는 안나 홀츠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옛날에는 작곡가가 마구잡이로 휘갈겨 쓴 악보를 연주자들이
보기 쉽게 깨끗하게 베껴적는 카피스트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안나 홀츠는 바로 베토벤의 카피스트입니다. 마지막 교향곡
[합창]의 초연을 앞두고 있던 베토벤은 자기 악보를 카피할
유능한 카피스트를 찾던 중 우연히 음대 우등생인 안나 홀츠
를 소개받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녀가 여성이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잘못 적은 음을 안나가 고쳐서 그려 넣는 것을
보고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일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성격과 생각의 차이로 마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음악을 통한 예술적 공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안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합창교향곡]의
초연을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예전에 베
토벤의 카피스트였던 슐레머는 안나에게 제발 베토벤이 [합창교
향곡]의 초연에서 지휘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 후 베토
벤의 지휘로 [합창교향곡]의 리허설이 진행되는데, 여기서 소리
를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확실
해집니다.

드디어 [합창교향곡]의 초연날이 다가왔습니다. 관객의 자격으
로 연주회장에 들어온 안나는 급히 슐레머의 부름을 받습니다.
베토벤의 지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나에게 대신
지휘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지휘대에는 베토벤이
서고, 안나가 그 맞은 편에서 지휘를 하기로 합니다. 안나의 지
휘를 베토벤이 카피하도록 한 것입니다.

드디어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전곡은 아니지만 영화
에서는 이 장면에서 음악을 상당히 길게 들려줍니다. 1, 2, 3악
장의 주요 대목이 나오고, 이윽고 [합창교향곡]의 하이라이트라
고 할 수 있는 4악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나와 베토벤은 서로
의 몸짓에 집중합니다. 안나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베토
벤의 손끝으로 전달됩니다. 안나와 베토벤은 연인 사이는 아니
지만, 하나의 음악을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이 장면은 두 사람이
인간적인 사랑 이상의 사랑을 나누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음악
을 통해 육체의 결합이 아닌, 그 보다 한 단계 높은 정신과 영혼
의 합일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나의 도움으로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끝나고, 베토벤은 교향곡
에 처음으로 합창을 집어넣음으로써 음악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補註]
--------------------------------------------------------------------------------------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교향곡에 처음으로 합창을
집어넣음으로써 음악사의 새 장을 연 베토벤은 그 이후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합니다. 음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대푸가]를 작곡한 것입니다. 이 현악 4중주는 아름답지 않다.
너무 자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추하기까지 하다. 안나 홀츠 역
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자 베토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추하지만 아름답지. 미에 대한 도전이야. 추함과 본능으로 음
악을 인도하지. 인간의 창자가 신께 가는 길이야. (배를 잡으며)
신은 여기 살아. 머리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야. 신을 느끼는 건
이 창자 속이야. 천국을 향해 창자가 휘감겨 있는거야."

베토벤의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한 미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습니
다. 추한 것도 미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낭만
주의적인 발상입니다. 그런데 고전주의 시대의 베토벤이 이렇
게 시대를 앞서 가는 생각을 한것입니다. 베토벤은 생의 말년에
고전주의의 관습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음악을 많이 썼는데,
[대푸가]도 그런 음악 중 하나입니다.

사실 푸가는 고전주의 이전 시대 즉,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양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복잡한 돌림노래 정도가 되는데,
매사에 도전적인 베토벤이 왜 푸가라는 옛 양식에 관심을 돌
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과거의 양식을 빌
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미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혁명적이었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