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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사우월> 이야기

鄭宇東 0 2292
향파 구두회선생의 思友月

香坡 具斗會 (1927.8.3~  )선생은 충남 공주 태생입니다.
평양 요한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차츰 음악에 눈을 뜨게 되
어 도쿄제국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전쟁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하여 평양에서 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보통학교 교사가 된후
46∼54년 대전사범학교, 54∼57년 배재고등학교의 음악교사를
지낸후 또 국학대학 문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그후 숙명여대 음
대교수가 되어 이곳에만 줄곧 26년간 재직하고 그 대학 학장으로
1986년에 정년퇴직하였습니다.

퇴직하면서 <가곡집 사우월>을 출판하고,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
서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이때 발표된 곡은 < 길, 넝쿨타령,
(김소월詩), 머들령(정훈), 그이가 오신다기에(모윤숙), 순이 무덤
(강소천), 또 한송이 나의 모란(김용호)> 등 대표곡 19곡이었습니다.
그의 작곡은 19세부터 습작을 거친 후 도쿄 유학시절에 <봄 바람>
등 동요 몇곡을 지은데서 시작하여, 선생의 전체작품은 동요 수십곡
과 예술가곡 !00여곡, 성가 독창곡 100여곡, 성가합창곡 100여곡이
있으며 기악곡으로 소나타, 교향곡, 서곡, 조곡 등이 다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가외에도 민족감정과 리듬을 살리는 민요의 현대화 작업
의 일환으로 <새타령, 신풍년가> 등을 작곡했습니다.
또 선생은 오랜 교직생활을 통하여 화성악 연구, 대위법 연구,
작곡기법 연구 등 많은 음악-작곡관계 저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향파 선생하면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사우월(思友月)입니다.
평양신학교를 나온 그는 음악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에
유학중 2차 대전 말 유학생에 대한 징집을 피해 평양으로 가서
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당시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로서 만나 뒤에 부인이 된 김경환여사와 연애할 당시
공중에 떠있는 밝은 달을 보고 연인을 그리는 세레나데로 손수
작시까지 하여 작곡한 노래로 데뷔곡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 옛 시가문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먼저 떠오릅니다.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현왕후 沈氏의 죽음을 당하여 명복을 빌고
백성들이 불문에 귀의하도록 바란 강설문 석보상절을 지으니
이를 보고 아버지 세종이 노래로 만든 가창곡입니다. 하나의 달이
수많은 千江에 비치듯 부처의 덕이 뭇 중생에게 두루 미칩니다.
향파선생의 시와 노래는 중생을 차별없이 두루 비쳐주는 달님이
자기와 연인을 비추어 자기의 사랑을 연인에게 보여주고, 연인의
사랑도 비춰 보여주기를 바라는 애끓는 심정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노래는 해방후 1947년 국민음악연구회 주최 예술가곡 공모에
당선되어 이어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공교롭게도 아동문학가인 이주홍(李周洪) 님도 아호가
향파여서 작사자를 왕왕 이 두분을 혼동하지만
이분은 호가 向破로서 香坡 구두회선생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구두회 선생과 부인 김경환여사 사이에 2남 1녀가 있으며
김경환 여사는 동갑으로, 일본 동양음악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서 서울 YMCA 이사 등 사회활동을 많이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고마운, 가난한 선비의 음악적 동지였으며 응원자였습니다.
민족적 정서가 남달리 강하여 한복을 즐겨 입는
향파 구두회 선생은 현재 생존 음악가로서 가장 년장 원로이며
그 다음을 최영섭선생, 윤해중선생, 오동일선생이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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