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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樂 : 천락인가? 천악입니다

鄭宇東 0 1888
장자의 天樂은 천악으로 읽어야

음악에 관한 고대 현인들의 문헌이 많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악기>의 예에서 처럼 음악의 출발점을 마음에서부터
생긴다고 하였고(凡音之起 由人心生也),
서양의 경우에는 피타고라스의 순정률에서처럼 음악의 출발이 물
질(도구)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동양의 유심론적 성향과 정신문명적 경향과
서양의 유물론적 성향과 물질문명적 경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옛 동양인의 사색에서는 음양오행설이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철학에 연유하는 4계절, 12달, 365일 등은 모든 학문 예술과
인간의 생활을 규률하는 윤리 도덕의 준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大樂與天地同和의 세계라 하였고
장자는 天籟 : 하늘의 피리소리 음악(天樂), 地籟(地樂), 人籟(人樂)
를 포함하는 우주의 오묘한 섭리와 조화를 3才의 음악이라고 하였으
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成俔의 樂學軌範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와 음양과 양극으로 갈라져 음양설이 되고
3재(三才)에서 천악(天樂), 지악(地樂), 인악(人樂)을 설정하고
이어서 목 화 수 금 토의 5성(五星)과 5행설(五行說)을 구현하
고 12달에서 따온 12음률의 6律과 6呂에서 陰陽의 道를 완성합
니다. 음악은 결국 이렇게 하늘에서 나와서 인간세상에 깃들어
서(出於天而寓於人) 인간세상을 통할 조정한다 할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우주적 조화(Universal harmony)라고 정의
했는데 그의 에토스론에 따르면 음악은 단지 우주질서의 정연한
체계를 반영하는 수동적 영향일 뿐 아니라 우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그의 음악론에서
음악은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없는 우주음악과 인체음악,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악기음악으로 나누었습니다.
고대의 순정률과 근세의 평균률은 수학적 분석에 치우치고
한스릭처럼 음악은 음향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견해
에는 음악의 물리적 분석에 치우친 감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진동수의 영역은 대략 16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까지로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진동수가 빚어내는 소리는 사람
의 청각으로는 포착이 되지 않으므로 인간의 음악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류문명의 기틀이 잡히던 시절만해도
음악의 개념이나 의미망과 범주는 형이상학적이고 우주론적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그 같은 예술행위를 통해서 궁극적
으로 인간이 지향하는 바를 고려하면 음악의 목적은 논어에서 말한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이라는 구절에서 "음악에서 인간만사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더불어 노자의 大音稀聲
과 장자의 至樂無音의 주장은 서양과 현대의 즉물적이고 실증적인
음악관이 얼마나 평면적이고 지엽적인 단견인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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