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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도의 스승 카비르

鄭宇東 0 1820
모든 교도의 스승 카비르

인도의 종교가로 브라만의 사생아로서 태어나, 이슬람 교도인 바라나시
의 가난한 직공 부부에 의해서 키워졌다고 합니다. 그의 성장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까비르는 풍요롭습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쪽에서 풍요로운 전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오쇼 라즈니쉬는 특유의 장광설과  요설로 그의 풍요로움이 다양
한 종교와 문화의 유산을 거부하지 않고 의식의 진화를 포함한 인류의 모
든 유산을 물려받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합니다.

까비르(Kabir, 1440~1518)는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여 문맹이었는데,
종교적으로 다감한 청년시대를 지내는 중에 힌두교 비시누파의 일신교적
색채가 농후한 종교가 라마난다에게 사사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렇다고 해서 힌두교도로 개종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유일한 신에 대한
바크티(절대적 신애)를 기축으로, 힌두교와 이슬람을 비판적으로 통합하고,
전혀 독자적인 일신교를 제창한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여러 가지 명칭으로서 불려도 실재로 신은 단지 하나이며,
하늘이나 사원 등이 아니라 다름아닌 각 인간의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은 신의 이름을 부르고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염하
는 것이며, 그외의 것, 예를 들면 목욕, 순례, 예배, 고행, 신분차별, 성전
의 권위 등의 일체의 것은 무용하다고 부정했습니다. 따라서 종교가로서
특별한 생활형태를 취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직공의 생활을 고수했습니
다. 만년에 권력자 시칸달로디(이슬람 교도)로부터 박해를 받았다고 하는
데, 이는 전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태생으로 보나 살아간 역정을 볼 때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까비르이지
만 그가 만든 시는 방대한 수에 이르고 있는데, 그 일부가 제자들에 의해
서『Bijak:씨앗』로서 편집되었으며, 훗날 타고르의 정신적 스승이 되고
그의 시집 기탄젤리의 모범이 되었을 정도로 그의 시는 우리들에게 큰 감
동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시크교의 개조 나나크가 그에게 큰 감화를 받았
기 때문에 이 파의 근본성전 『아디 그란트』에도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명상시 2편을 소개합니다.

 ㅡ 마음의 정원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마라
그대 몸 안에
꽃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ㅡ 그대 옆에있다

친구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느냐
보라
나는 그대 옆에 있다
나는 사원에도 없고
모스크에도 없다
나는 히말리야 산정에도 없고
카바신전에도 없다

저 거룩한 儀式 속에도
요가의 수련 속에도
그리고 출가수도의 길에도
나는 없다

그대 진정한 구도자라면
지금 여기에서 나를 보리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나 까비르는 말한다
찾는 자여
신은 모든 존재의 호흡 속에 있다
그 호흡 속의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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